"끝이 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멋진 경치를 보아도, 한껏 흥이 올라 기분이 좋아졌을 때에도 나도 모르게 '끝내준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끝내준다'는 말은 스스로 끝을 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내가 아닌 제삼자에 의해 강제적으로 끝이 난다는 뜻이지요. 결국 우리의 삶도 누군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종료된다는 점에서 '끝내주는' 것이지요. 사해 만물이 이렇듯 끝내주는 것 투성이입니다."

 

봄 날씨처럼 산뜻한 하루였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지인 한 분을 만나 함께 점심을 먹고,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들고 가까운 공원을 찾았습니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의 향취라니... 공원 벤치에 앉아 모처럼의 여유를 즐겼습니다. 아버지뻘의 큰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그분과 나는 언제나 친구처럼 지내곤 했습니다. 몇 년 전 그분이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오전에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그분의 전화를 받고 앞뒤 재지 않은 채 흔쾌히 응했던 것도 그런 연유였습니다.

 

첫 문장은 그분이 오늘 내게 들려준 말을 옮겨 적은 것입니다. 끝이 존재한다는 건 아쉽고 슬퍼할 게 아니라 한껏 기뻐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지요. 윤석열 씨가 검찰총장직을 그만둔 것도 무척이나 잘한 일인 듯합니다. 임기 내내 그분은 자신의 처와 장모, 측근의 비위를 감싸주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듯합니다. 자신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분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렇지요. 그분은 타인에게는 충성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온 힘을 다 바쳤던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이기적인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둘러 표현하기를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는 입장문과 함께 총장직을 내려놓았지만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이 곧 자신의 가족과 측근이라고 이해했습니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도 누군가의 공익 제보에 의해 그 실체가 밝혀지고, 그들이 저질렀던 욕망의 실체도 서서히 끝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합니다. 말하자면 '끝내주는' 일이지요. 이렇듯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닌,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 의해 끝을 보게 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끝이 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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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3-0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끝내준다‘가 새롭게 다가오네요!

꼼쥐 2021-03-06 20:10   좋아요 1 | URL
늘 쓰는 말인데도 뭔가 새롭죠? 저도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