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웠던 피부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얇아지는 것인지 조금만 세게 부딪혀도 상처가 나고 멍이 들거나 자주 흉이 지곤 한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상처가 나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다 손 치더라도 예전 같으면 쉽게 아물어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만한 가벼운 상처조차 예상 밖의 더딘 회복과 회복 후에 남는 볼썽사나운 흉터로 인해 이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가뜩이나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에 툭툭 불거진 흉터가 더해지면 그야말로 가관이지 싶어서 하는 말이다.

 

지난여름에 시골에 있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텃밭의 가장자리를 따라 쳐놓은 철조망 울타리를 보지 못해 그만 철조망에 바지가 걸려 바지가 찢어졌음은 물론 왼쪽 정강이 쪽에 가벼운 상처를 입고 말았다. 낮게 친 철조망 울타리가 콩잎에 덮여 보이지 않았던 것인데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급히 걷다가 철조망에 걸린 가벼운 사고였다. 아무튼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 당한 사고인지라 주인 부부는 미안함에 발을 동동거리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하였고 나는 대수롭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랬던 게 벌써 두 달 가까이 지나 계절도 바뀌었건만 그때의 상처는 길게 그어진 흉물스러운 흉터로 남아 있다.

 

작은 충격에도 상처를 입고 오래도록 남은 흉터를 지켜보는 건 비단 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듣게 되는 섭섭한 말 한마디에도 꽁한 매듭이 지어지고 마음의 상처가 되어 오래도록 서운한 마음을 품고 지내는 걸 보면 마음도 몸을 닮아가는 듯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천성이 꽁하고 속이 좁은 사람이라고 오해하기에 딱 알맞은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수록 세포의 재생 능력이 떨어져 일단 상처가 나면 회복도 더디고 흉터도 오래가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중년을 지나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해갈수록 삶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까닭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우리는 제 몸에 오래도록 흉터를 남기기도 하고, 뒤돌아서면 까맣게 잊을 듯한 가벼운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입고 오래도록 꽁 하고 품은 마음의 흉터로 남겨두는 건 삶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닐까. 그렇게 몸과 마음의 흉터를 통해 삶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연습은 결국 죽음이라는 가장 큰 흉터를 통해 이승의 기억을 저승의 어느 빈자리에 통째로 옮겨 놓기 위한 예행연습은 아닐까. 나는 오늘도 우수수 흩어지는 가을바람에 가슴 한켠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상처를 입고 지난여름에 몸에 새긴 흉터를 보며 가물가물 잊히는 기억을 가만가만 더듬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20-09-27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흉터로 남겨두는 건 삶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한 것.
멋진 해석이십니다. 일리가 있어요.

꼼쥐 2020-10-04 12:33   좋아요 0 | URL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편협하고 속 좁은 인간으로 변해가는 듯합니다. 별것 아닌 사소한 말에도 토라지거나 섭섭해하기 일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