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몰라도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화를 덜 내는 건 사실이다. 물론 전혀 화를 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를 덜 낸다는 것이다그럼에도 이따금 참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잘못도 아닌데 부당하게 놀림을 받는 경우이다. 그런 모습을 볼라치면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게 된다. 예컨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가난 등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들에 대해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그것을 빌미로 타인을 굴복시키려 하는 행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야비하고 저열하며 파렴치한 범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어차피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등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런 불평등을 지속적으로 배가시킨다는 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에게 뭔가 선의를 베풂으로써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그러한 불평등을 약점 삼아 자신을 드러내거나 편을 나눠 이익을 도모하려는 행위는 얼마나 비열한가.

 

최근에 숙명여대에 합격한 한 학생이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놀림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바람에 결국 입학을 포기한 사례가 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보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지 다시 한번 느꼈다. 그 학생이 이성애자로 태어나기 싫어서 그렇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성장하면서 소수자의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란 노력은 다 해보았을 터 그럼에도 소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했다면 우리 사회가 위로와 격려는 못해줄망정 적어도 그 학생을 놀리고 조롱하는 비열한 짓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심이나 도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예컨대 얼굴이 조금 못생겼거나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을 놀린다면 놀림을 받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도 다수자가 자신을 놀리고 조롱하는데...

 

내가 이따금 방문하는 도서관에도 나와 같은 애용자 중에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분이 있다. 도서관을 드나든 지 꽤나 오래된 탓에 도서관 직원이나 웬만한 애용자는 대개 낯이 익은 편인데, 그분도 내가 도서관을 들를 때마다 번번이 마주치곤 하여 우리는 서로 이름도 모른 채 가볍게 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분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그분을 위해 잠시 동안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게 고작이다. 나는 그분이 건네는 미소와 진심을 담은 인사를 받는 날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겨우 그 정도의 작은 배려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완전히 바뀔 리는 없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는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그런 비열한 짓거리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마당에 중국에서 태어나고 싶어 중국에 태어났던 것도 아니고,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싶어 그곳을 고향을 삼은 것도 아닌데 단지 그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멈춰야 한다는 둥 갖은 놀림을 일삼는 이들은 정말 인간도 아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악마'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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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0-02-0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글에서 정의로운 향기가 나는걸요~ 제가 얼마전 읽은 글에 윤회하면 자기가 어떻게 태어날지 모르니 어떤 이유에서건 타인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글귀가 있었어요. 윤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꼼쥐님을 화나게 하는 분들이 다시 태어나면 아마도 그 피해자가 되어 정신 차리지 않을까 싶네요~~

꼼쥐 2020-02-13 16:04   좋아요 0 | URL
반드시 그렇게 태어나라고 악담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번 생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함으로써 욕은 먹지 않는 게 잘 사는 삶이 아닌가 싶어요.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왜 그렇게 미워하고 못살게 굴려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