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례(가명) 할머니를 만나던 날은 투명한 겨울 햇살이 사방에 가득했었다. 무겁지 않은 철대문을 지나면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나오고 누르스름한 잔디밭의 가장자리를 따라 키가 낮은 자두나무가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한낮에도 햇살을 시샘하는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차에서 내린 나는 소슬한 추위를 느꼈다.

 

낯선 이방인을 맞았던 건 이 집의 주인이 아닌 반려견 누리였다. 잔디의 누런 빛깔과 흡사한 털을 가진 누리는 마당 한켠에 기척도 없이 누워 있다가 이방인의 출현에 짖지도 않고 조용히 다가왔던 것이다. 나는 커다란 덩치의 누리에게 겁을 먹었던 탓에 뒤로 한 발짝 물러섰고, 때 마침 현관문을 열고 나온 김순례 할머니를 향해 어정쩡한 인사를 했던 듯하다.

 

"어서 오세요. 춥지요?"라고 묻는 할머니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답을 미룬 채 누리를 향한 경계 태세를 여전히 풀지 않고 있었다. "괜찮아요. 안 물어요. 누리야, 이리 와!" 할머니의 다정한 부르심이 반가왔던지 누리는 이방인에 대한 경계를 풀고 주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내가 누리의 뒷모습에서 발견했던 것은 뒷다리 두 개 중 하나는 쓰지 못하고 단지 누리는 세 개의 다리로만 걷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누리가 나이가 많은가 봐요?" 하고 묻자, 할머니는 "많지요. 많고 말고요. 그래도 쟤가 집을 나갔다가 3년만에 돌아온 애예요." 타령을 하듯 대답을 하던 할머니는 우리를 따라 현관에 들어서던 누리를 어루만지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내가 눈을 치켜뜨면서 "그래요?" 하고 놀랍다는 듯 묻자 할머니는 누리의 지난 삶을 조곤조곤 들려주셨다.

 

도시에서 아파트에 살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누리의 비만이 걱정이 되어 시골로 이사를 결심했다고 했다. 시골에 집을 짓고 이사를 한 후 누리가 마음껏 뛰어놀도록 목줄을 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누리가 사라졌고, 놀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백방으로 누리를 찾았지만 결국 찾을 수가 없어 반 포기 상태로 지내셨단다. 그런데 3년쯤 지난 어느 여름날 바짝 마른 체구의 누리가 집으로 돌아왔고, 심하게 하혈을 하는 누리를 살리기 위해 곧바로 동물병원을 알아보고 자궁을 들어내는 큰 수술을 했다고 했다수의사로부터 가정집에서 웬 새끼를 그렇게 많이 뽑았느냐는 잘 알지도 못하는 타박과 꾸지람을 들어가면서 누리를 살렸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누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 여파로 누리는 뒷다리 한쪽을 영영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겨울이 싫어져. 땀을 뻘뻘 흘려도 여름이 좋지 겨울은 정말 싫어. 며칠 전에는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거기는 가는 곳마다 꽃이 만발한 게 봄이야, . 그래도 거기는 섬이라 짠내가 나고 사람 살기에는 좋지 않더라. 그냥 며칠 다녀오는 건 괜찮지만 말이야." 누리의 이야기를 마친 할머니는 슬쩍 다른 이야기를 하며 방한 조끼를 꺼내 입으셨다. 자신의 얘기인 줄 아는지 현관에 턱을 괴고 누워 있는 누리는 큰 눈을 껌벅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귀를 쫑긋 세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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