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그 시절이 살기는 어려웠어도 이웃 간에 정도 있고 참 좋았던 것 같아. 그렇지 않은가?"와 같은 말. 돌이켜보면 특정 시점의 과거가 모든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다정하거나 살가웠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워하는 특정 시기가 대화의 상대방도 좋았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시절이 살기 어려웠다는 건 현시점의 자신의 경제력이나 부를 특정 시점의 과거에 자신의 가정이 갖고 있던 부와 절대적으로 비교해서 살기 어려웠다고 말하고 있을 뿐 그 당시의 자신의 가정이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의 재산상태였는지를 말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자신의 현재 재산이 상위 30%에도 들지 못하는 사람이 과거 자신의 가정은 상위 1% 안에 들었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소위 '금수저'로 지칭되는. 그렇지만 재산을 금액으로 환산하여 지금과 과거를 비교하면 순위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을 꺼내는고 하니 소위 보수로 지칭되는 대한민국의 상위 재력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시절이 살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절대적인 부에서는 물론 지금보다 살기 어려웠다. 자가용의 성능도 지금보다 한참 뒤떨어져 여름에도 에어컨 없는 차를 타야 했고, 매일 아침 도시락을 들고 등교해야 했고, 신발이며 옷가지도 지금에 비하면 디자인이나 품질 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집에는 도우미가 있었고, 집안의 잡일을 하는 집사가 있었으며,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운전기사가 있었다.

 

연세가 많은 지인 중 한 분도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제헌 국회의원이었던 까닭에 국민학교 시절에도 찦차를 타고 다녔다고 말하면서도 그 시절은 살기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좋았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비교로 현실을 호도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박정희를 비롯한 군부 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습관처럼 이렇게 말한다. 그 시절이 살기 어려웠다고. 그러나 나는 믿을 수 없다. 그 시절에 그들이 휘둘렀던 무소불위의 권력과 초법적인 권리 행사가 없이도 그들은 과연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사람은 그렇게 간사한 동물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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