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첫날. 늦은 오후의 께느른한 햇살이 거실 한쪽을 겨우 밝히고 있다. 탁한 대기와 빗물 자국 가득한 유리창을 통과하여 거실 바닥에 겨우 도착한 나른한 빛으로 인해 그나마 푸근했던 하루. 초겨울 햇살과 숨바꼭질을 하듯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이국종의 <골든아워>를 읽었다. 외과 의사라는 그의 직업이 무색할 정도로 잘 다듬어진 문장. 이렇다 할 문학적 소양이라고는 없는 나에게도 독서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누나와 형으로부터 어떻게 지내느냐? 는 안부 문자를 받았다. 그냥저냥 잘 지내고 있노라며 짧은 답장을 보냈다. 최근에 나는 초겨울의 여린 햇살처럼 최소한의 온기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의욕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90대의 노인처럼 나는 도통 기운이 없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듯한 그런 나날들이 무의미하게 흐르고 있다.

 

낮에는 지인의 우격다짐으로 칼국수를 한 술 떴다. 식욕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내가 걱정이 되었던지 잘하는 칼국수집을 안다며 나를 막무가내로 끌어내는 바람에 나는 예정에도 없던 칼국수를 먹게 되었다. 지인의 말처럼 칼국수집은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맛도 모른 채 겨우 한 술 뜨고 나니 식욕은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머쓱해진 나는 아침을 늦게 먹은 탓이라며 거짓을 말해야만 했다.

 

기운 없던 햇살도 사라지고 어둑신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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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8-12-0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욕이 없으신게 이렇게 멋져보이다니.....
잘쓴 글의 힘인가봐요....
짧은 소설 한편을 읽은 듯한 느낌이네요~

꼼쥐 2018-12-07 17:55   좋아요 1 | URL
아이고, 이런~~
부끄럽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