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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문
길상 지음 / 푸른향기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집안이 모두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기에 태어날 때 부터 뼈속까지 천주교 신자였던 나는 당연하게 어릴적부터 성당에 다녔고 의심의 여지 없이 모든 곳,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이 계시기에 감히 나쁜일은 꿈도 꿔보지 못한 착하고 바보같은 쑥맥이었다. 사춘기 때야 비로소 고민에 빠져 방황하긴하였지만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있다. 그런 내가 스님의 저서를 읽기시작한 것은 법정스님과의 인연 때문이었고 그 후론 종교의 구분없이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도 스님들의 시집이나 법구경도 편견없이 읽게 되었다.
부천님 오신날을 앞두고 자연스럽게 길상스님과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길상스님이 누군지 어느 절에서 무슨일을 하고계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현재 포교당을 열고 ‘삶이 곧 진리’라는 생활불교를 실천하고 계시단다. 첩첩산중, 인적드문 산사의 구도승만을 떠올리던 불교가 언제부터인지 속세로 파고들어 대중과 함께하는 불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숲속의 문'이란 이 책는 길상스님이 불교에 입문할 무렵의 방황과 험난한 구도의 길의 과정을 소설로 묶었다. 명상집이나 에세이 등을 접하다 스님이 쓰신 소설은 무슨 이야기를 담았을지도 궁금했고, 스님들은 무슨 생각으로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으며 속세를 떠난 수행자의 길을 선택하였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소설이라지만 저자의 신분상 대부분의 이야기의 배경은 산사와 고즈넉한 암자, 사찰이 대부분이며 세상을 살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어봤을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 절망과 방황, 사랑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 놓고있다.
곱씹어본 사람이라면 수행자와 범부의 차이를 뛰어넘어 저자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걸어보는 동안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란 누구인가? 세상 속에서 마주한 수많은 부처들
갓 스물의 나이, 작은 암자에서 대학 입시공부를 하던 '나'는 무작정 영주 부석사로 향한다. 불교의 기초지식도 알지못할 뿐더러 불교의 진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도 갖추지 못한 채 막연한 끌림에 영주 부석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봉암사 등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행자생활을 하며 스승들과의 만남과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진리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그에게
" 행자야,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잎이 겨울에 필 수 없듯이 너 자신이 지금 혹독한 겨울 추위를 맛보아야 한다면 그 겨울이 너에게는 가장 좋은 때인 것이다. 그 때가 너를 성숙시켜줄 것이니 저항하지 마라. 그 때는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때가 오면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노스님은 그렇게 담담히 말씀하신다. 불성은 무엇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찾아 고된 체험과 방황을 통해 빛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렴픗이 깨닫게 된다.
“불성을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동안 답답했던 심정을 털어놓았다.
“야가, 지금 뭐라카노, 제 눈을 지가 어떻게 본단 말이꼬?”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너는 너 눈을 너가 볼 수 있나?”
선문답과도 같은 노스님의 답변을 어리석고 무지한 내가 어찌 알까마는 그이 또한 이해하지 못하고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였지만 어둡고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는 ‘나’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문제와 세상을 둘러싼 모순 속에서 길을 찾아 헤메는 우리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소설 속 전국 유명 사찰을 더듬어가며 고승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고 스님네들이 풀어놓는 구수한 입담, 아버지가 평생을 떠안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아픈상처와 회한, 도반 스님들과의 우정, 과거의 자락마다 상채기로 남은 추억. 스님의 글이니 고루하리란 고정관념과는 달리 삶의 지혜와 재미 그리고 잔잔한 감동까지 담긴 솔직 담백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