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낯선 인생의 길을 걸으며 몇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야만 할까. 내가 가는 이 길이 과연 옳은 길인지 수십번을 뒤돌아보며 고민하고 갈림길에서 매순간마다 갈등의 순간을 맞딱뜨리게 된다. 그러다 지치면 잠시 쉴겸 한눈을 판다. 또다른 두고온 갈림길에 대한 미련과 앞으로 닥쳐올 고난의 길에 지레 겁먹고 잠시 멈춰 나를 추스리는 방법이 일탈을 꿈꾸며 지나온 길을 벗어나는 여행이 아닐런지. 여행에도 수많은 방법과 수단이 동원된다. 여행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수준에 따라 확ㄱ연한 차이가 있겠지만 길위에서 느낀 감흥과 시원한 바람 한점일랑은 누구나에게 고르고 평등하게 주어진다. 이 글의 저자는 많은 교통 수단을 마다하고 자전거를 선택하여 출발부터 범상치 않은 여행길에 올랐을까. <마침내 그리움>은 한 달여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자전거를 타고 일주한 자전거 여행기이다. 그럼에도 사지로 균형을 잡고 주변의 차들을 경계하느라 잔뜩 두눈을 부릅뜨고 힘겹게 패달을 밟아가며 온 몸으로 길을 느낀다 평탄한 길은 평탄한대로 울퉁불퉁한 길은 엉덩엉이 근육에 전달된 길의 감촉이 고스란히 전달되옴을 느끼기도 한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만나면 여유롭게 풍광을 즐기기도 한다. 그가 만난 풍경은 길의 풍경, 자전거의 풍경, 의식의 풍경으로 구분 지을 수 있을 게다. 서로 다르지만 결국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풍경. 그는 마주한 풍경의 일부에 녹아들거나 길위의 풍경과 어울려 하나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자전거는 자연과 가장 친화적인 교통수단이며 그 자체로 풍경의 일부분이다. “때때로 나는 이제 자전거의 몸이다. 자전거 자체인 몸, 의식 자체인 자전거”라고 한 작가의 말대로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자전거는 이미 몸의 일부인 동시에 길동무이기도 하다. “기실 삶은 길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길을 간다’는 것이다.” 삶이라는 지난한 여행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모든 여행은 삶의 고통과 외로움의 기록이자 의지의 기록이다.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홀로 걷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그져 그르는 바퀴에 온몸을 맡기고 오롯이 자신의 신체의 힘만으로 그 바퀴를 굴려 어딘가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마녹하며 그는 길위로 나선다. 그가 밟고 지나온 그날 그날의 자취가 일기형식으로 때론 한 폭의 수체화처럼 펼쳐진다. 시 한 편를 음미하듯이 풍광을 그려낸 그의 문장이 맞깔스럽다. 하지만 그저 멋스런 풍경에 취할 수 만은 없는 그는 자연과 사물을 대하며 일상의 정직성을 가능한 한 끝까지 유지하려 한다. " 팔 다리는 물론 마음까지 동원해야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게 자전거 타기이다. 한 눈 팔지 않고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몰아야 쓰러지지 않는 것이 자전거 타기이다. 김수영이 시 쓰는 것을 가리켜 ‘머리나 심정으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라고 설파한 것은 ‘자전거 타기’와 정확히 동일선상에 있다. 그런 점에서 자전거 타기 역시 시를 쓰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온몸을 움직이면서 생각한다는 여행을 통해 일상서 잠시 벗어나 보지만 모든 여행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돌아오기 위한 것임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마침내 일상으로의 돌아옥 위해 여행의 끝자락에선 그는 “휘황찬란한 네온의 불빛이 발아래 펼쳐져 있다. 시간을 보니 저녁 여덟시가 넘었다. 나는 다시 생활해야 할 본거지로 진입하고 있다. 불야성으로 반짝이는 네온의 거리가 살아가야 할 내 터전이다. 저 인공의 빛 속에서 어쨌든 부나비처럼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운명이고, 길이며, 안고 가야 할 그리움이다.” 라고 한다. 재자리로 돌아온 그는 앞에 놓인 운명과도 같은 그 길을 걸어 갈 것이다. 그리곤 문득 그리움이 깊어지면 또다시 일탈을 꿈꿀런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