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야생중독
이종렬 지음 / 글로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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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 하늘과 맞닿은 황금빛으로 물든 아프리카 초원이 펼쳐진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내 핏속에도 맨 처음 수렵할동을 하며 광활한 초원을 맘껏 누비던 인류의 유전자가 분명 있었구나란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우리의 세포가 긴 시간 동안누적된 조상들의 유전적 기억을 가지고 있다던 어느 학술지의 발표가, 인류의 최초 조상의 유골이 아프리카 사막 어느곳에서 발견되었다던 보도 내용이 나와는 무관하게만 들렸던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나의 조상도 이런 곳에서 생활했겠구나란 생각에 가슴 벅찰 뿐이다. 
 
아프리카에서 10년간 의 매력에 흠벅 빠진 나머지 중독되었다는 작가는 세렝게티 초원을 두고 어느 곳에서 살 수없었던 그는 급기야 온가족들을 데려다 아프리카에 살고 있으니 아프리카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졌음이 분명하다. 
 
그의 사진속 아프리카는 푸근하다. 약육강식의 치열한 삶의 현장인 그곳에선 죽거나 죽이는 것만이 존재하리라 여겼는데 생각과는 달리 그 속에는 평화로움이 있고 느긋함이 묻어 있다. 그래서인가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모두 느긋하기만 하다. 무슨 일이든 급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단다. 그저 '하쿠나 마타타(문제 없다)'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 저자는 아프리카에선 시간 마져도 느리게 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저 웃으며 기다릴줄 알게 되었다고. 그를 통해 아프리카를 바라보면 사랑스러움과 애잔함을 동시에 보게 된다. 그의 사진에서는 수많은 세렝게티 초원 위의 동물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개발과 외부 문명으로 인해 원주민내부에서 겪고 있는 갈등과 오늘날의 아프리카가 처한 정치적, 사회적인 상황과 무분별한 개발로인해 파괴되어 가는 자연환, 그리고 그곳 에서 태어나고 질병과 가난속에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이 느껴진다.
작가의 시성을 따라가며 사진 한 컷 한 컷에 담긴 아프리카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백수의 왕 사자도 새끼들의 재롱 앞에선 속수무책인가 보다. 새끼 사자는 미래에 자신이 초원을 호령 할 제왕임을 알기나 할까. 지금은 그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어미이 품에서 마냥 행복 할 뿐이다. 새끼들과 나른한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사진속 주인공이 험상 굳은 하이에나든, 커다란 몸집의 코끼리든지 상관없이 미소가 절로 번져온다. 2층집 높이만큼 큰 키의 기린의 자식사랑, 거대한 몸집의 코끼리의 곰살 맞은 지식사랑도 아프리카에서는 상대할 동물이 없다는 코뿔소의 목숨건 무모한 사랑도 아름답기만하다.
하지만 아프리카초원에 절대 강자에게도 평화만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오직 살아남는 자만이 강한 존재이다. 나이가 들어 힘이 떨어져 경쟁애게 밀려난 사자나동물의 왕 사자도 수십마리씩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하이에나에겐 당할 재간이 없다.
 
광활한 대초원을 배경으로 수만 마리의 누 떼가 이동하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육식 동물의 먹이가 될지언정 새끼를 낳고 대를 이어가는 동물들이 안스럽지만 어찌보면 그게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쓰러져 죽은 나무 옆에서 썩은 나무로 부터 양분을 얻어 어린 나무들이 자라 새로운 세대를 이어가듯 그렇게 모두가 묵묵히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야생의 식구둘을 보며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낙원이 이곳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신이 주신 선물인 자연의 보물을 함께 지켜내고 가꾸어야 함은 당연한 일일게다. 그가 아프리카와 사랑에 빠진 이유를 이젠 알것 같다. 그가 사랑한 아프리카를 다음세대에 고스란히 남겨 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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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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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소박한 꿈이 묻어있는 그녀를 닮은 책과 마주하니 문득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2009년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던 5월, 꽃같이 살다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났지요. 떠난자의 뒷모습이 이리도 아름다운 사람이 또 있을까요. '문학의 숲을 거닐며',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이야기하던 그녀는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그녀가 남긴 글들이 그녀의 올곧은 마음과 한결같음을 말해주고 있네요.  그의 글 속에는 진실함과 삶을 사랑하고 하루하루를 감사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네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으로 충만했고  문학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음을 그가 남긴 글을 통해 진한 감동으로 전해져 옵니다.

장영희 교수가 생전에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과 글을 모아 엮은 '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는 신문을 통해 만나 본 적이 있기에 더욱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맛깔스런 그녀의 글은 오래 두고 곱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보리밥처럼 구수한 단내가 나고 그리움이 배어져 나옵니다. 그의 글에는 늘 '희망'이 존재네요. 절망을 말할 때 조차도 그 뒷면에 더 강한 희망이 내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기에 우리는 그녀가 장애인이였다는 사실도 많이 아팠다는 것 조차도 잊어 버리곤 합니다. 도리어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선물과 그리움의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네요. 이 책은 장영희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이들에게 선물이 될것 입니다.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누군가가 나로 인해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장영희가 왔다 간 흔적으로 이 세상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아진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고  장영희는 말합니다.
그녀의 글의 소재는 대부분 그녀 자신이기에 글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발가벗고 대중 앞에 선 기분이라더니 그의 글 속에는 그녀의 소소한 일상과 그녀를 둘러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늘상 있는 일들과 평범함 마저도 소중하다며 일일이 글로 적어 남겼네요. 그저 담담하게 지나치던 일상의 풍경 마저도 그의 눈에 비치면 아름다운 글이되고 녹아 들어 작품이 됩니다. 무심히 지나치던 삶의 작은 일들을 돌아보게 만들고 삶이 가치를 일깨우게 합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대단한 사람인양 특별한 감정이 들게 되네요. 그게 바로 모든 것을 희망으로 바꾸어 버리는 그녀만의 마술과도 같은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무더운 날, 우연히 만난 주유소에서 일하는 젊은이와 한 여학생의 작은 선행을 통해,‘톨스토이의 행복의 이론’을 생각해 보고, 심한 뇌성마비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며 오히려 그 아이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아이보다 사랑스럽고 예쁘다며 그 아이를 통해 사랑과 기쁨을 얻게 되었다는 어느 부인의 말에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_장영희가 사랑한 영미문학

영미문학 칼럼을 통해 연재 되었던 글을 다시 봅니다. 척추암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당시에도 영미시가 그에게 바깥세상과 소통의 수단이였으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방편이였기에 끝까지 놓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녀의 갸녀린 몸뚱아리 어디서 그런 힘과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지 병원에 입원하기전까지 그토록 좋아했다던 '영미 문학'과 만나 봅니다.

그가 좋아하고 아껴 두었던 영미시와 영미문학을 들여다 보면 삶과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네요. 윌리엄 케네디의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에선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이상향, 은하수가 어디인지 알고 있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깔려서 버림 받고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통해 다시 억새풀 처럼 끈질기게 태어나는 삶을 말하고자 했다네요. 로버트 브리지스의 〈6월이 오면〉을 조용히 읊조리며 인생은 아름답고 또 살만하다고 하네요.
앨프레드 테니슨의 <사우보思友譜> 는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로  '마치 숨만 쉬면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양 살지 않고, 상처받을 줄 줄 뻔히 알면서도 사랑하는 삶을 택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 번도 살해본 적 없는 것보다
사랑해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나으리
 
그녀는 가슴저미는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군요. 위대한 개츠비, 주홍글자, 폭풍의 언덕 등 격정정인 사랑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한 적이 내게 있엇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녀에게 그 사랑의 대상은 아마도 영미문학이 아니였던가 싶습니다. '당신이 고른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글귀에 곁들인 당신의 친절한 해설을 읽으면서는 아아, 좋은 시는 당신처럼 아름다운 구도자에게나 그 진정한 속살을 드러내지 아무에게나 보여주는게 아니로구나'라던 박완서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장영희를 사랑하고 기억하며 소설가 박와서님도 그녀에게 글을 썼고, 김점선 화백과 더불어 ‘삼총사’로 늘 함께하던 이해인 수녀님도 장영희, 그녀에게 마음을 담은 시 한 수를 띄워 보냅니다. 지인들이 그녀의 픗픗했던 학창시절 사진도 담고 노래도 만들었네요.

미소와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게 일깨워 주고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차가운 무덤에 있지 않고 늘 우리곁에 영원히 함게 할 겁니다. 죽지 않았으니까요.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그리고 여전히 세상을 따뜻하게 할 겁니다.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고, 잠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리저리 부눈 바람이며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눈이며
무르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빛이며
폭촉히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습니다. 죽지 않았으니까요.
            - 어느 아메리칸 인디언의 기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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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왜곡의 역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수 왜곡의 역사 -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바트 D. 에르만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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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혀진 책은 무엇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을 절대 진리라 믿고 있기게 감히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으리라.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바트 어만은 그의 저서 '예수 왜곡의 역사'에서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우리가 일고있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상 네 복음서의 각부분들을 편집한 것일 뿐이라 말한다. 게다가 신약성경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은 8권뿐이라니. 마태복음은 마태가 루가 복음은 루가가 요한 복음은 요한이 썼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안은가. 그러나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나 그들의 동역자로 알려진 마태와 마가, 누가 등이 아니란다.

 

그러면 도대체 실제 저자는 누구일까? 

저자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네 복음서를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읽어보면, 그동안 성경을 수없이 탐독했던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모순과 불일치를 깨닫게 될거라 한다. 예수의 가계도도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 이야기, 예수가 죽은 일시에 대해서 조차 복음서마다 각각 다르게 말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초기 기독교 문헌들을에  치밀하게 분석하고 연구하여 각각의 사례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다. 또한 카톨릭에서 이단으로 여기는 문헌들과 성경을 대조하여 비교, 분석하여 다루고 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손에 의해 쓰여졌기에 성경을 역으로 추적해 나가며 성경에 담긴 인간의 해석과 실수를 밝히고 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성경을 통해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이 다를 수 있기에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은 그들이 성경을 작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당시에 그들이 의도했던 내용이 지금 해석되는 내용과 다를 가능성을 생각 본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원래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훗날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여러 부분들이 짜 맞춰지고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태신앙으로 철저한 카톨릭신자인 내게 저자의 주장이 처음에는 황당하고 이단의 주장과도 일치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믈론 성경의 해석에 관한 오래된 논란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져 왔지만 성경이 왜곡되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옆에 성경책을 두고 일일이 확인해 보고 따져본 결과 저자의 일부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잇었다. 그가 주장하는 방식대로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어 보면 그동안 생각지도 못한 모순과 오류, 잘못된 주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사적 근거와 문헌들을 통해 성경도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읽어보고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이 아닌 역사속의 예수를 만나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렇다고해서 성경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며 성경은 하느님께 영감을 받아 쓰였기에 한군데도 틀린 곳이 없다는 해석이 역사적 과정에서 확대되고 왜곡됐을 뿐이다. 성경은 하느님이 직접 쓰신 작픔이 아니라 인간이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낸 것이기에 구전이 잘못 쓰여질 수도있고, 해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에 오류 또한 있을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여전히 인류가 읽고 연구해야 만하는 책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유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교훈이 담겨있는 책이다. 나역시 이책을 읽음으로인해 믿음에 추호의 흔들림도 없으며 성경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었으며 보다 깊이있는 성경 연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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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백과사전 - 광수의 뿔난 생각
박광수 글.그림 / 홍익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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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생각해 오던 것들을 이사람의 눈에는 유독 특별하게 만 보이는 걸까, 아니면 박광수 이이에게만 일상의 평범함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남다른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광수, 광수 씨, 광수 놈', ' 광수 생각'으로 알려진  박광수의 신작 '악마의 백과사전'이 나왔다. 분명 우리 주변의 일들들 그리고 상식적인 이야기를 했음에도 특유의 해학과 입담으로 통쾌하고 신나게 그렇지만 누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백과사전은 맞긴한데 엉뚱하고 기발한 한 권의 색다른 백과사전과 마주한다. 분명 들어 본듯 한 단어와 그에 대한 사전적 해석이 담은 것에 만족치 않고 그 의미와 정의를 과감히 탈피하고, 그의 생각 대로, 경험한 바를 솔작 담백하게 적은 엽기 백과사전이다. 박광수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책 읽는 내내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나이, 인간이 세상을 나올 때 신으로부터 나눠받은 번호표.

문제는, 번호표 순서대로 철이 드는게 아니라는 것.

더 심각한 문제는, 번호표 순서대로 세상을 떠나지도 않는다는 것.

 

지금 내나이역시 박광수 그이와 다름없이 어느덧 사십줄에 들어섰다. 기발하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나이값도 못한다고 비현실적인 생각일랑 말라고 일침을 놓는다. 한 때는 말도 않되는 상상을 하며 논리나 현실과는 무관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희망을 품고 무한한 가능성을 기대했더랬는데. 기성세대에게 세상은 그리 녿록치 만은 않은가 보다. 어느덧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고 나이에 하나 둘 숫자를 더하면서 꿈을 잃어가고 점차 웃음도 잃어간다. 이 책을 읽으며 내용에 공감하며 잊혀졌던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함께 웃고 생각한다. 

박광수 식으로 풀어낸 이야기 속에는 현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끝까지 우리게 웃음을 선사 한다. 그가 바라본 명품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품에도 명품이 있다고 말한다.

" 어떤 사람의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그릇이어서 함께 있을때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속이 깊어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내가 말하는 명품 성품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

 

우리의 상식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발휘해 보자. 사물을 한 방향으로만 보지 말고 다방면으로 세심히 관찰하고 비틀어보고 때론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신 아래서 올려다 보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이 보이리라. 생각의 틀을 깨는 그의 생각이 무뎌진 상상력에 기름칠을 하고 잊혀진 꿈을 되돌아 보게한다. 사이사이의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메세지를 만화 한컷에 담았다. 수많은 단어들 사이에 말보다 깊은 뜻을 담고 짧은 이야기에 긴 여운을 남긴다.

 

후회, 아무리 일찍 해도 너무 늦어버린 과거의 잘못.

'후회'할 때는 땅을 치지만 '반성'할 때는 가슴을 친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후회를 반복하면 바보 취급을 당 할 수 있으니 너무 잦은 후회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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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죄수 -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최후의 비밀 회고록
자오쯔양.바오푸 지음, 장윤미.이종화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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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6.4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며
중국 톈안먼 광장에서 발생한 유혈사태와 그들이 꿈꾸었던 개혁과 민주주의를 되돌아 보며 6ㆍ4 운동의 희생양이 된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생각하지 않ㅇㄹ 수 없다. 우리의 5ㆍ18 광주 학생운동을 떠올리게하는 중국의 6.4운동은 중국이 개혁의 길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라지만 6.4운동의 원인과 발생 과정에 관해서는 아직도 확실히 알려진바가 거의 없다. 중국도 여전히
'학생과 시민들의 폭동'으로 여기고 대포화 총 등 무력 진압에 의해 목숨을 잃은  학생과 인민의 수가 얼마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 영원히 복직되지 못했는지, 가해자와 책임자는 누구인지 공개된 자료도 없다.
 
'국가의 죄수'는 텐안문 광장에 모인 학생들을 독려하고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 덩샤오핑에게 숙정된 당 총서기 자오쯔양이 6.4와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당과 국가를 경영해본 사람으로서 생각한 바를 써 후대에 남기기 위해 당시 톈안먼 운동을 기억하는 지식인들의 도움으로 그의 구술을 녹음한 후 문자화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게 되었다. 자오쯔양은 누구보다 오랫동안 덩샤오핑을 보필하며 중국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톈안먼 사태 후 무려 16년간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8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후야오방의 죽음으로 불붙은 6 4
자오쯔양과 함께 양쪽에서 덩샤오핑을 보필하던 후야오방의 사망으로 톈안먼 광장에 학생들이 모여 그를 애도했다. 이는 당의 부패와 개혁개방의 후퇴에 대해 쌓였던 불만을 후야오방을 추도하는 형식을 빌려 나타낸 것이였다. 일부 과격한 학생들은 공식적인 추도식이 끝났지만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평화적 시위를 벌였다. 이에
보수파는 상황을 무력 통제하지 않으면 전국적인 동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덩샤오핑에게 보고했고 덩샤오핑은 '반당ㆍ반사회주의 동란'으로 시위대를 규정짓고  4ㆍ26 사설을 발표한다. 사설 발표 후 중도 입장이었던 사람들까지도 급진적인 쪽으로 변했고, 자신들의 요구가 묵살되자 분개한 시위대는 가두시위와 연좌단식 농성에 돌입했고 이들을 지켜보던 도로변의 군중들과 가두행진을 저지할 책임을 맡고 있던 경찰조차도 사실상 이들의 가두행진을 허용하고 지지했다.

군대가 동원되다
뒤늦게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자오쯔양은 4ㆍ26 사설을 정정하는 보도를 내보내 학생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자 했으나 덩샤오핑은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내란 진압 정책을 밀어붙여 군대 동원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자오쯔양은 톈안먼 광장으로 달려가 학생들에게 단식을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갈 것을  설득했지만 학생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4·26 사설의 정정 발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5·4 연설마저 당의 비난을 받게 되자 자오쯔양은 덩샤오핑의 집에서 열린 계엄 결정 회의에서 덩샤오핑은 반대의사를 밝히며 스스로 역사적 사명 다한다. 공식적인 투표조차 없이 계엄이 결정되고 자오쯔양은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하고  덩샤오핑에게 계엄 결정을 번복해줄 것을 편지로 청원하였으나 결국 6월 4일 인민들을 향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자오쯔양은 이 책에서 6·4의 배경이 되었던 당내 정치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즉 개혁개방을 주장하며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고자 했던 자신과 보수 세력 간의 갈등에서 사태의 원인을 찾고 있다.
자오쯔양은 당과 국가가 농민과 기업에게 양보하기를 원했다. 그는 해안에 가깝고 교통인 편리한 연해 지역을 전략적으로 대외형 경제 발전 특구로 발전시키기로 결정한다. 이처럼 경제개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지지만 당내 반대세혁에 부딫치게 된다. 그러던 중 6·4 사태가 일어나고 그는 반대 세력과 덩샤오핑과도 다른 노선을 걷게 된다.

자오쯔양은 덩에게 정책의 중요사항을 통보하고 자문을 구하고, 덩의 집에서 회의를 통헤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로인해 의도적으로 자오쯔양이 학생시위의 책임을 회피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덩샤오핑을 매도했다는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자오쯔양은 비록 가택 연금되었지만 보수파와의 갈등과 대립의 순간마다 자신 편에 서주었고 자신을 지지해 주던  덩샤오핑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그는 오해를 풀기 위해 진심을 담은 편지를 수차례 덩샤오핑에게 전달하고자 했으나 답장은 없었으며 끝내 둘의 만남은 이루어 지지 않았으며 덩은 그렇게 오해를 안은 채 1997년 2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가 이러한 오해를 가지고 세상을 떠나는 것을 나는 진실로 원치 않았다.

6ㆍ4 민주화 운동 이면에 정부와 학생들 간의 이념의 갈등, 이데올로기적 논쟁, 정치적 대립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글에서 자오쯔양 총서기가 되지 않고 국무원 총리로 남아 계속해서 연해 발전을 이끌었더라면 좀더 빨리 개방 정책이 시행 될 수도 있었을것이란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중국식 사회주의’는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 사회주의국가에서 실행한 민주제도는 완전히 형식에 치우쳐 있고 인민이 주인 되지 못하며 소수, 심지어 개인이 통치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실시한 것은 이러한 의회 민주주의재도 였다. ....이는 한 국가가 근대화를 이루고 현대적인 시장경제, 햔대문명을 실현하려면 정치체제는 반드시 의회민주주의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본문 중-
 
서구식 민주주의가 인민이 주인 되는 제도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그의 솔직한 말이다. 이성적이며 간결한 그의 말 속에 그의 진심이 담겨있다. 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그는 6ㆍ4 이후 죽어서도 국가의 죄수로 남았다.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6ㆍ4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 톈안먼 사건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더불어 자오쯔양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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