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대 입학, 독일 뭔헨으로 유학, 독문학 전공. 한국 여성 최초로 서울대 강의.. 그리고 자살.. 그녀의 이력을 보면서 여자로서 그녀를 동경하지 않는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생각에 읽기 시작한 것이 일종의 에세이 집인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란 책이다..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 돌연 문학으로 전공을 바꾸며 독일 유학을 선택할 때의 그녀의 용기, 독일 유학 길을 오를 때 낯선 세계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 그리고 독일에 도착해서 자욱한 안개 속에서 느꼈던 막막함 들은 아마도 그녀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감정들이 아닐까 한다..
안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날아 오르고 있던 그녀의 영혼을 이 땅에 묶어두는 것은 어쩜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녀가 사랑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헤르만헷세의 데미안..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이미륵..
 

그녀가 이야기하는 다른 작가나 글들은 대부분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였지만..
유독 처음 보는 낯선 이름.. 한국인 임에 분명함에도 전혀 들어본적이 없었던 이름..
그녀는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 이런 글이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음에 무척 안타까웠다고 했다..그 안타까움이 그녀로 하여금 그의 글을 번역하여, 한국에 출판하도록 하였고..그렇게 독일 교과서에도 실린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한국에서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전혜린이 극찬한 책.. 그녀로 하여금 번역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책.. 그리고 독일 교과서에 실렸으며,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그야말로 대단한 그 책을 처음 접한 느낌은 다소 실망에 가까웠다..
독일에서야 낯설고 새로웠겠지만.. 별다른 꾸밈없이 이야기하는 저자 자신의 어린 시절과 한국의 풍습같은 것은 너무 평범해서 밋밋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책의 독일에서의 평판이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일 뿐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책 마지막에 다다라서야..아~하고 짧은 탄성이 나왔다.. 그가 겪은 세월을 생각하면..(저자 이미륵은 조선 말에 태어나 일제 시대 때 의학공부를 하다가 독립운동에 참가하게 되면서 망명길에 오르고, 그 후 중국을 거쳐 독일에 머물게 된다.) 그 글에서 보여주는 담담함과 정갈함 그리고 따뜻함은 정말이지 놀랍기 그지 없다..
의과대 기숙사에서 받은 전단지를 읽고 거부할 수 없어 독립운동에 참가했고, 막상 쫓기는 신세로 망명 길에 오를 때는 자신의 행동이 후회스럽기도 했었다는 그의 고백은 영웅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한 개인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너무도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였다.
그는 글에서 아프다고 하지도 않았고 슬프다고 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글은 아프고 슬프고 또 아름다웠다.. 그건 그가 그 고통스런 역사를 피하지 않고 겪어내었고, 그가 겪어낸 그 세월을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는 죽음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의 그의 독립운동 참가가 후회스럽기도 했었다고 고백했지만, 그 후 독일에서 그는 반나치운동에 참여하였다..여전히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와 같이 두려웠했다. 하지만 두려워는 했을 망정 한 번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글처럼 소박하고 정갈하고 또 곧다.. 그의 삶이 그의 글이라는 것이 '압록강은 흐른다'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감동일 것이다.

전혜린의 글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권태와 광기.. 권태한 삶에 대한 부정과 치열한 삶에 대한 동경.. 그녀가 이미륵의 삶에게 그리고 그의 글에서 본 것은 무엇이였을까.. 그녀가 이 책을 번역하면서 여기 우리가 보고 느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이였을까.. 이미륵의 책 앞에 앉은 전혜린을 생각하고 있자면.. 너무도 다른 그 두사람의 삶이 묘하게 겹쳐진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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