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라딘 대문에 걸린 거 보자마자 주문해, 어제 하루종일 할애한 책이다. 온 식구가 순서대로 감기에 걸려 이놈 나으면 저 놈 걸려 병원 데려가 링겔맞으며 병원에서 노닥거리면서 보냈는데, 어제는 아이들도 학교 가고 해서 하루종일 한껏 책 읽을 여유가 있었다.
블로거 지인이 한번 언급한 책이라 빨리 번역되어 나왔으면 했는데, 드디어 나왔다. 사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대도해>라는 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편집부 사람들의 끈기 있는 열정과 사전을 만들기 위해 걸어온 여정을 이야기한 책이라 숨 넘어가는 클라이막스 전개나 불같은 호흡이 느껴지는 책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고 쓰고 듣는, 매일 사용하지만 그 유용성과 고마움을 모른 체 사용하는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를 채집하고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사전을 만들기 위한 편집부원들의 사전 편찬 노력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책을 읽기 전만해도 사전적 언어란 언어와 언어사이의 결합이 없다면 참 의미없는 글자 혹은 말쪼가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의 척박하고 무지한 생각을 일순간에 바꿔 놓은 책이다. 언어란 단순한 독립체의 말쪼가리가 아니라 이 소설의 조연 아라키의 입을 빌리면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을 거야," 로 말이다.
갈릴레오는 24개의 글자(letter)만으로 무한 사고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4개의 글자로 말이다. 인간이 언어가 없었다면, 원숭이에서 인간이란 종으로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어란 잇점(말하는 것, 쓰는 것)을 있는 힘껏 표현(가장 좋은 예로 문학이나 철학같은 추상적 언어)하고 살고 있지만, 종종 언어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언어가 있으므로 우리는 음악이든 미술이든 어떤 추상적인 형태로로도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사고와 표현영역은 사실 바다와 같이 넓어서 언어란 배가 없었다면 명징하게 표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는 인류의 공통 기호일뿐만 아니라 그 어떤 형태의 추상과 상징을 해석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기호이다. 문학도, 음악도, 미술도,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예술의 형태는 우리가 음성으로 표현하는 언어로 시작되었다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음악의, 미술의 즐거움은 우리 사회에서 정해놓은 언어라는 기호에서 보다 심화된 표현이 아닐런지.
그런 언어를 채집하고 기록하는 사전이야말로 우리 인류의,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가진 나라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겠다. 언어는 우리의 인간처럼 유행과 뒤처짐이, 단일어가 아닌 여러 언어가 혼합되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삶과 죽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언어라는, 사전이라는 변두리 소재로 감동과 재미를 주는 미우라 시온의 언어적 능력에 감탄스럽다. 작가의 초창기 작품부터 계속 읽어오고 있지만, 점점 그녀의 도전하는 글쓰기가 좋아진다. 마이너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작가의 사고와 세계관이 더욱 더 성숙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뭐랄까, 작가와 독자인 내가 돌계단을 나란히 한걸음씩 걸어 올라가는 느낌이랄까. 기분 좋은 올라감이다.
2. 어제 저녁, 이 책을 거의 갈무리해갈 무렵에 우리 딸이 옆에서 숙제를 하면서, 자기 선생님이 박근혜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숙제로 해가야 한다며 엄마인 나에게 박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뭐냐고 자기는 딱히 바라는 게 없어 엄마가 대신 해 주면 안되겠냐고 물어보길래.... 기분 좋게 저 책 책갈무리 하려다가 좀 짜증이 났다. 지난 달에도 박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뭐냐는 숙제를 내 준 적이 있었는데, 4월에도 그 레파토리를 또 내 주다니.... 거참.
어지간한 박통팬인가보다. 학부모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지난 번에 몰래 훔쳐보니 나이도 30대로 보이는 젊은 애기 엄마건만, 아주 열성팬 나셨다. 솔직히 애아빠나 나나 우린 좌빨팀인데, 신자유주의 신봉하는 대처팬을 자처하는 박통에게 우리가 바랄게 뭐 있겠냐고. 사실 북한이 쳐 들어온다고 지랄떠는 것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쓰라고 하려다가, 우리 모든 국민이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쓰라고 했다.
언어는 배와 같아서... 키를 잘 잡아 주어야지 울 딸에게 우리의 본심을 그대로 쓰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언어의 항해에서 우리는 좀 더 세게 노를 저어갈 때가 있고 천천히 저어갈 때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