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애아빠가 늦었다길래 전철역에 차로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같은 동에 사는 우거지상 아저씨를 만남. 키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고 약간 마른 체형의 아저씨인데, 재활용때마다 오만가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재활용을 해서 내가 우거지 아저씨라 별명을 붙였다.

 

암튼, 이 우거지아저씨를 토욜 아침 재활용시간에 간혹 만난다. 우리 아파트 재활용 시간은 토요일 아침 9시까지. 솔직히 불만들이 많다. 주말에 늦잠 자는 사람이 꽤 될텐데 꼭 아침 6시에서 9시까지 재활용을 내 놓으라고 해서 주민 불만이 장난 아니지만, 부녀회에서 밀어부치고 작은 아파트 단지라 경비아저씨들이 그 시간 이후에는 각자 일을 하셔야하기에, 주민 불만이 많아도 시간을 변동할 수 없다고 한다. 규정이 그렇다는데 할 수 없지 뭐. 늦잠 자는 경우가 많아 토욜에 자명종을 맞춰 놓고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러 나간다.

 

요즘은 맞벌이 시대라 아파트 재활용시간에 보면, 남자들도 많이 하고 고등학교 아이들도 간혹 눈에 띈다. 아침 칼바람 맞으며 재활용 분류하는 거, 전업주부인 나도 나가기 싫은데, 전날 늦게까지 일하고 온 남자들이 재활욜 하려면 귀찮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우거지아저씨를 오해를 했다. 언제나 재활용 분류할 때 오만가지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서 부인에 대한 불만이 얼굴에 나타난 것인줄 알았는데, 지난 토요일 그게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 있었다.

 

지난 토요일 아침, 나는 재활용 분류를 끝마치고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그 우거지아저씨와 그 부인이 엘리베이터에서 재활용품을 함께 내리는 것이었다. 그 날따라 그 집 재활용품이 많아서 속으로 많아서 부인까지 합세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우거지아저씨 부인이 아저씨와 재활용품을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내리고, 아저씨를 따라가 도우려고 하니깐, 그 아저씨 하는 말,

 

아, 됐다니깐. 혼자 할 수 있는데 왜 내려와 가지고..빨리 올라가서 더 누워있어~ 

 

이러는거다.  아저씨 부인 멋적어서 괜찮다고 하는데도, 아저씨가 올라가 더 자라고 재촉해서 엘리베이터 지연 단추를 누르고 있던 나는 아저씨 부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저 말 듣는데, 벙~ 쩍었다고 해야하나. 저 아저씨 그동안 그 표정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사람은 겪어봐야 한다고 하더니만, 우거지 얼굴은 단순한 겉모습이었단 말인가. 왜 나는 아저씨의 우거지상 얼굴만 봤지, 그 아저씨가 매번 그렇게 재활용 분류하러 나온다는 사실을 관가했을까. 매번 그렇게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사실 말 한마디가 정말 별 거 아닌데, 나는 아저씨의 가족 사랑, 부인 사랑, 가족 내에서 자신의 희생 그리고 따스한 맘이 느껴졌고 감동스러웠다고 하면 오버일까. 기혼여성들은 천만번  남편이 입발린 소리로 사랑한다는 단 한마디의 말보다 저 말이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위하는 말인지 잘 안다. 우리나라 90%이상의 기혼남자들은 올라가서 더 누워있어라는 말보다 밥차려놔~ 라고 말을 하지 더 누워있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많은 남자들이 결혼을 하면, 여자가 무슨 슈퍼우먼인 것처럼 자신의 본가에서 처가에서 당연히 많은 일을 해야하는 것쯤으로 알고 있고, 내가 집안 일을 더 많이 하네, 마치 자신이 집안 일을 더 많이 하면 무슨 날벼락이라도 떨어지는 줄 아는 남자들이 대한민국 남자들이다. 나는 남자여서 당연히 집안일쯤은 안 한다는, 이런 생각이 아주 고깝다. 정치적으로 아무리 진보를 외치면 뭐하냐, 차라리 생활진보가 진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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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27 12:21   좋아요 0 | URL
생활 진보가 진보지.......... 완전 공감입니다!
아저씨의 우거지상은, 재활용이 아닌 다른 사유거나 타고난 모습이었던건가 보네요. ^^

기억의집님, 오늘 머 보러 가신다구요? 아 부럽다~ 부럽다~
그리고 너무 고마와하는거 아시죠? 아까도 쪽~ 해드렸지만, 다시 쪽~ 쪽~
(제가 원래 닭살 스타일이니 이해하셔염~ 호홋.)

추신. 새 글을 즐찾 공개 브리핑에 띄우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기억의집님 글이 올라왔나 보려면, 들어와서 확인해야 한단 말예염~

기억의집 2012-04-28 22:39   좋아요 0 | URL
미혼은 아저씨의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통큰 것인지 잘 모를거에요. 대부분의 남자들은 밥차려 이러는데.... 더 가서 자라는 말이 얼마나 아내분을 아끼는 것인지를요.

나이가 들수록 정치보다는 생활면에서 진보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흐흐.
전 나중에 명절, 제사, 울 아들 결혼할 때 예단이나 꾸민비같은 예식, 유교적인 잔재들 다 없앨 거에요. 아들에게도 양육과 살림 공평하게 해야하게끔 할거구요. 정치진보보다는 생활진보가로 살렵니다^^

어제 가가 공연 갔다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네시간 서 있었는데, 허리가 아파 설설 기여서 집에 왔어요. 늙긴 늙었나봐요. 그 여파 오늘까지 끼쳐서 몸이 푹 꺼지더라구요.

즐찾공개브리핑이 뭔지 모르겠어요. 한번 찾아볼께요^^

책읽는나무 2012-05-07 16:36   좋아요 0 | URL
아~ 그럼 기억님은 일부러 즐찾 공개 브리핑에 공개를 안하신 것이 아니었군요? 몰라서였었군요.ㅋㅋ
저도 한 번 찾아오려면 예전 댓글을 다시 들어가서 클릭해야되는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더라구요.^^
공개로 돌려주세요.

icaru 2012-04-30 09:25   좋아요 0 | URL
저희 집 아저씨는 그나마 훌륭한 점수를 줄 수 있긴 하지만, 그만큼 저에 대한 기대치도 높은 거 같더라고요~ 제가 그런 방면으로는 좀 무디기도 하고, 그래서 서로 상처를 줄 때가 있거든요. 여튼, 남하고 사는 게 쉬운가, 막말로 전 그런 생각도 해요~ ㅎㅎ 저 무슨 소리 한 건지..

2012-04-30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2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3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2-05-03 13:39   좋아요 0 | URL
맛있게 잘 먹으셨다니 다행~
알라딘 오랜만에 들어와 보는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12-05-07 16:41   좋아요 0 | URL
우거지상 아저씨는 원래 표정이 타고나셨던게로군요.흠~
많은 생각을 품게 해주신 귀한신 분이셨네요.^^

이곳 저곳 이사를 많이 다녀보니 재활용 쓰레기를 비울때 풍경을 살펴보면요.
그래도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재활용쓰레기를 비울때 남자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을 살펴볼 수가 있어요.(그것도 젊은 남자들요.ㅠ) 맞벌이를 하면서 또는 남자들이 알아서 집안일에 협조적인 형태로 바뀌어가는 것같은 모습이 엿보여요.
시골에선 정말 보기 힘든 풍경이거든요.남자들이 아주 권위적입니다.
울신랑도 그때 그때 분위기에 맞춰 흐름을 잘 타더라구요.ㅋㅋ
권위적인 동네에선 자기도 따라가고..순간 나자신도 동네언니들따라 사고방식이 어느새 젖어들게 되더라구요.
생활의 진보란 말씀에 정신이 번쩍 뜨이네요.ㅋㅋ

기억의집 2012-05-08 18:44   좋아요 0 | URL
도시에서는 맞벌이가 대세라 남자들이 많이 버리더라구요. 교대도 없이 그냥 남편이 버리는 것으로 정해진 것 같더라구요. 저도 아들이 있잖아요. 나무님~ 그래서 그런 모습 보면, 과연 나는 울 아들이 저렇게 하면 정말 심술이 날까?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지금부터 다짐도 하고요.

저는 생활진보자로 거듭날 거에요. 진짜로~

감은빛 2012-05-08 17:50   좋아요 0 | URL
저희 집에서도 쓰레기는 늘 제 차지입니다.
재활용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는 그래도 쌓아놓았다가 버려도 괜찮은데,
음식쓰레기는 냄새가 심해서 버릴 시기를 놓치면 곤란하잖아요.
가끔 이삼일 연속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내가 좀 버려주면 좋겠다 싶은데도 절대 손을 안대더라구요.

육아를 비롯한 집안일들이 사회생활과 그 외의 활동에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연히 함께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합니다.
재미있게도 아내는 제가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하구요.
제 주위의 사람들은 저를 거의 전업주부 수준으로 여긴답니다. ^^

기억의집 2012-05-08 18:54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아내분께 말씀하세요. 나중에 스트레스 엄청 쌓여요. 집안일은 누가 더 많이 하고를 떠나 각자 똑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분께 웃으면서, 음식쓰레기 내가 못 버리면 쫌 버려줘~라고 말을 해야지 아내분도 행동에 옮기지 않을까요?
님의 글을 읽으면 거의 집안일을 동등하게 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대부분의 여자들은 아이들 어린이집에서 데려오기 위하여 퇴근시간 부리나케 오는데 감은빛님은 님이 데리고 오시잖아요. 사실 그게 별거 아닌것 같은데도 대단한거거든요. 왜 그걸 몰라줄까요?
저는 요즘분들 보면, 서로 배려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부족하더라구요. 그게 안타까워요.가정은 어느 한 사람의 희생으로 세워지는 곳이 절대 아니랍니다. 부부가 서로 배려하고 협력해야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요. 저는 그걸 깨닫는데 10년 걸렸어요. 이젠 할말 다 하고 살아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