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등대로를 얼마나 힘겹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두껍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완독하는데 일주일 넘게 걸렸고, 읽다가 침까지 흘려가며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내용은 흥미로운데, 뭔가가 나랑 맞지 않었던 것일까? 그 이후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선뜻 손이 가지 않었는데, 라로님의 올랜도에 대한 페이퍼를 읽다가, 문득 올랜도가 예전에 영화화 되었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영화 올랜도를 검색했는데, 주연이 틸다 스윈튼이어서 좀 놀랬다. 하도 오래 전 영화라 주연이 누구였는지 기억은 안 났지만, 하얀 얼굴을 클로즈업 하고 주변이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이미지만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출연진 이름에 틸다 스윈튼이 뜨자, 순간 아 그 하얀 얼굴이 틸다 스윈튼이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한테 언제나 미스터리 같었던 틸다 스윈튼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케빈에 대하여나 닥터스트레인지에서 틸다 스윈튼을 보는데, 낯선 느낌이 안 들고 어디서 봤는데 도저히 기억이 안 나는 거다. 분명 낯설지 않는 사람인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나서, 나는 내 기억력이 착오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억의 오류. 그렇게 생각할 만한 데는 개인적으로 2010년 이후 영화나 드라마를 본 게 몇 개 안 되서, 낯설지 않은 틸다 스윈튼을 내가 전에 본 영화나 드라마 출연진에 대입했을 때 역시 본 적이 없었던 배우였다.
그래서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오래 전 인 94년에 화제였던 올랜도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그 때 발행되었던 스크린이나 키노 영화 잡지에 저 강렬한 올랜드 영화 사진이 삽입되어 기억 저편 잠재의식 속에 찍혀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는 자주 까 먹고 기억을 못하는 편인데, 거의 삼십년 전의 사진 한장이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고, 그 잠재의식에 묻힌 이미지와 연관된 사람을 나중에 영화에서 봤을 때 낯설지 않다는 반응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고 웃기기도 하다.
그러면서 수사할 때 최면 수사가 쓸모 없는 수사 기법이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면 수사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과연 최면이 얼마나 정확한 기억이미지를 이끌어 낼까 싶었는데 말이다. 물론 형사들도 참고만 하는 정도지 최면 수사를 증거로 채택 하지는 않는다만,
아주 오래 전의 한 컷의 이미지가 나의 뇌 속에 남어 있는 것이라면, 뇌의 저장용량은 어느 정도 일까? 최면으로 나의 잠재의식속에 저장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