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행

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착잡하고 뭔가 분노의 뚜껑이 열리는 듯한 느낌... 내 나이가 이제 중년으로 내달리고 있어서일까. 이 책의 주인공의 아주 작은 소망이 보호받고 위로 받아야 할 일상이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무겁다. 그리고 타에코의 죽음이 너무 슬프다.

 

중년의 아줌마가 있다.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주부 타에코는 남편과 아이들이 나가고 나면 집안 구석구석을 반질거리게 만들어 놓고 생활비를 아껴가며 사는 전형적인 주부다. 그런 타에코가 얼굴이 화끈거리고 땀을 흘려대는 걸 보고 딸들은 쉽게 말한다. ’갱년기’...자궁적출수술을 받고 남편은 이제 여자로서 기능은 다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가족의 틀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던차에 집에서 기르던 개(포포)가 옆집 아이를 물어 죽이는 사고가 난다.

 

보건소(안락사)에 데려가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반항하면서 집 안에서 유일하게 정을 느꼈던 포포와 함께 집을 나오는 타에코. 포포를 그대로 두면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타에코가 처한 현실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더 이상 엄마의 보호나 엄마의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사회적 위치만을 따져들고 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기대고 싶었던 타에코는 그러지 못했고, 틀에박힌 생활을 박차고 나오는데 고민하지 않았다. 포포가 있었기에...집에서만 기르던 순한 개가 임대별장에서는 야성으로 변해버려 쥐와 두더지, 까마귀, 닭을 잡아먹게 되고, 통제되지 않는 개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타에코. 그런 포포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죽을때가 가까워지자 다리에 힘이 빠지고 시력도 가고 있었는데...

 

"혼자 사는 게 살벌할 때도 있지만 가족에게 둘러싸였는데도 고독한 건 더 살벌해요..."p218



중년의 시간속에 한번쯤 가족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책이었다. 가족이 보듬어야 할 시간과 대화와 사랑이 필요한 시기가 어느때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타에코의 가슴아린 그 말 속에서 주부로서의 고독감을 같이 느껴본다.

 

타에코의 이유있는 반항은 어쩌면 우리가 맞이해야 할 중년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머리가 컸다고 집안일만 하는 엄마를 등한시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바깥으로 나돌고 채워지지 않는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그런 중년의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타에코의 모습이지 않았나 싶다.

 

일상의 생활에서 한번쯤 ’도피행’을 꿈꾸는 사람들 속에 나도 있을것만 같다. 이유있든 아니든, 가끔은 나라는 존재를 귀하게 대하는 그런 날을 생각하면서...타에코의 도피행은 슬프게 끝났지만 주인공의 모습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나도 주부이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