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꽃피는 고래...하얀 수염고래가 책 표지에 나오면서 뭔가 신비함이 묻어난다. 꽃피는 고래란 제목에 이끌려 책을 열면 곳곳에 숨어있는 세상 사는 사람들의 아픔이 보이고, 그리고 자연과 순리에 맞서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살아가면서 상처 한가지도 없는 사람은 없을게다. 그게 어떤 상처든 그걸 짊어지고 있는 당사자는 분명 아팠을테니까. 어른이 된 지금엔 그 상처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사는 것의 일부가 되겠지만 열일곱의 소녀가 부딪히기엔 너무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니은이는 엄마, 아빠를 교통사고로 멀리 보내고 아빠의 고향, 처용포에서 지낸다. 열일곱의 나이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상태의 아이로 만들었고, 매일 볼수 없는 것들이 생겨난 것에 대한 화가 몸속에서 꿈틀대는 소녀다. 엄마가 쓰던 지갑, 아빠의 시계를 차마 볼 수 없었던 니은이가 처용포에서 지내면서 상처에 새살을 만들어간다.

니은이가 만나는 사람들, 장포수 할아버지, 왕고래집 할머니, 친구 나무. 그리고  고래가 사는 바다...

상처를 토해내지 못해서 울음도 나오지 않던 니은이가 죽은 고래를 쓰다듬으며 울분을 터트리게 된다. 그리고 니은이를 찾아온 나무에게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심한 말을 하게 되고. 꼭 압력밥솥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다.

혼자 남겨진 니은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고민하던 때, 교통사고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엄마아빠가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한다. 얼마나 두려웠을까를 생각한다. 속에서 꿈틀거리는 울렁증을 다 토해내지 못했던 니은이가 조금씩 어른의 마음을 담아가게 된다.

"기억하는 일은 왜 중요해요?"

"그것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보낸 뒤 마음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

"나도 기억하는 방법을 몰라서 저 물건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내 인생을 낡은 물건들을 쌓아두는 창고로 만든 셈이지. 잘 떠나보내고서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걸." p236

고래포획이 금지되면서 장포수 할아버지는 언젠가는 바다로 나가 다시 고래를 잡을 희망의 끈을 잡고 있었지만 포경선이 박물관에 기증을 하게 되면서 다시는 그럴수 없음을 알게된다.

왕고래집 할머니는 뒤늦게 배운 한글 학교 졸업식에서 멋지게 쓴 글을 발표한다.

".....배운 사람들은 파도가 높은 이유를 어려운 말로 설명하지만 우리야 태풍도 용왕님 뜻이려니 한다. 조상 대대로 해오던 일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맘뿐인 기라."  p241

언제 어른이 될까에 고민하던 니은이는 처용포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에게서 상처로 부터 치유되는법을 배우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떠나보내야 할때는 떠나 보내야 한다는 걸 알아가게 된 니은이는 이제 압력솥처럼 뜨거운 열기는 사라지겠지.

참 따뜻한 동화같은 책이었다. 처용포의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물맑고 조개많던 바닷속이 그려지면서 한편의 영화처럼 필름이 돌아가고 있다.

".....급소를 맞은 고래는 죽기 전에 마지막 숨을 내뿜는데, 그 숨에는 피가 뿜어져나온다. 핏빛 물뿜기가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온 바다 가득 퍼진다. 그걸 꽃핀다 한다."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