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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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신작 장편소설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들떴다.
그의 새로운 작품 [공터에서]를 손에 잡고 숨을 참으며 읽어 나갔다.

 

 

 

 김훈 작가는 작가 후기에서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어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이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인 마동수와 그의 아들 마장세와 마차세의 남루한 삶에 개입하였고, 그들의 삶에 감정이입이 되어 끝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결말을 지켜 보았다.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삶 속에서 언뜻 언뜻 보여지는 한국 현대사와 그 모든 것을 함께 해온 노련한 작가의 경험치까지 담아낸 9번째 소설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현대인의 적막한 고독, 그 감정을 견디기 위해서는 거점이 필요하다.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 
소시민 마씨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시대 만주 벌판을 떠돌았던 그 현장부터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페허가 된 땅에서 살아가는 남루한 인생들이 뒤엉켜 보여진다.

 

소설은 주인공 마동수의 죽음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죽음과 대조해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언급한다. 최고 권력자의 죽음과 사회를 걷도는 존재의 죽음은 겉보기는 달라 보이지만 결국 본질은 같았다.

'아버지의 사체는 태아처럼 보였다. 죽은 육신의 적막은 완강했다. 돌이킬 수 없고, 말을 걸 수 없었다.'(p9)

 

 

 마동수는 이도순을 만나 마장세와 마차세를 낳는다. 이도순의 월남 장면은 너무나 애절했다. 흥남철수를 할때 혼자만 배를 탈 수 있었던 이도순의 비극, 그의 젓먹이 딸과 남편과의 생이별 이후 그녀는 마동수를 만나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합해지지 못했다. 마동수의 겉도는 삶과 이도순의 집을 지키는 삶 속의 괴리감은 결국 그 둘을 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김훈의 [공터에서]의 주인공 중 가장 일반적이고 보통적인 삶을 사는 인물은 마차세와 그의 부인 박상희 뿐이었다. 마동수의 거칠고 날 것 같은 삶과 마장세의 이기적이고 디아스포라적 삶, 있는 곳에서 견디며 사는 삶의 마차세까지 마씨 일가의 삶은 읽는 이로 하여금 힘겹게 했고 긴 한숨을 내뿜게 만들었다.

마동수의 죽음은 그의 가족 구성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이도순에게도 마장세와 마차세까지 모두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미는 달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 공통적으로 해방된다는 것에 대한 홀가분을 느꼈다.
마차세는 장남이 아님에도 늘 장남 노릇을 해왔던 것에서 해방을, 마장세는 장남임에도 장남 노릇을 못하는 부담감에서의 해방을, 이도순은 기다려야할 존재로부터의 해방을 맞이했다.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아버지를 한평생 끌고 온 시간과 아버지의 짐이 과연 소멸될 수 있을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p198)'

 

마차세는 대학 시절 사귀었던 박상희와 결혼을 했다. 
'마차세는 결혼이 그 막막한 세상에서 몸 비빌수 있는 작은 거점이 되어주기를 바랐다.(p199)'
이 부분을 읽으며 나에게 있어서 거점은 무엇이며 어디인지를 생각해본다.
내 이 한 몸 비빌 수 있는 작디 작은 거점은 어디일까?'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전쟁에서 동료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죄를 지은 마장세, 죽은 아버지가 죽지 않고 계속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 괴로운 마차세, 남편의 삶에 대한 고단함을 일상이라는 것이 주는 행복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박상희, 그리고 고생과 치매로만 인식되어지는 이도순의 삶까지 이 책의 주인공들이 주는 감정은 퍽퍽해서 바스러질것만 같다.

그럼에도 [공터에서]를 읽으며 내 마음이 채워질 수 있었던 것은 김훈 작가의 대단한 필력이었다. 노련한 작가의 내공이 문장마다 느껴졌고,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묘사와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입이 잘 어우러져 이야기가 탄탄하게 진행이 되었다.

적막하다고 느껴지는 이 세상, 그 가운데 이들은 비애로운 삶을 견디고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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