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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루미너리스는
세계 최고 권위가 있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엘리너 캐턴의 장편 소설이다. 볼륨감이 엄청난 이 소설을 1권과 2권을 다 읽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가 된다. 47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맨부커상은 영국의 부커사가 제정한 문학상으로 매해 영국 연방국가 내에서 영어로 씌여진 소설 중에서
수상작을 선정하는 상으로 영국 최고의 권위를 가진 상이라 말할 수 있다. 수상자에게는 영예도 주어지지만 상금이 5만 파운드나 지급이 된다. 이런
어마어마한 상을 받은 작가 엘리너 캐턴은 맨부커상의 역사도 다시 썼다. 최연소 수상 작가라는 것이 그것이다. 설명만 들어도 이 소설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 젊은 작가에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상이 수여가 된 것일까?

이 작품은 사진에서 보다시피 두 권의 영어 원서 페이지가 800 페이지가 넘는다. 최연소
작가의 맨부커상에 이어 부커상 수상작 중 가장 긴 작품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그렇다면 이 책의 줄거리는 무엇인가? 무슨 이야기를 다루고 있길래
작가는 이렇게도 할 말이 많았을까?
책은
황금을 둘러싼 암투와 시기,엇갈린 운명이 여러 주인공들을 통해 그려지고 있다. 다소 생소한 배경과 사건 아래 여러 주인공들이 얽히고 섥혀
초반부는 도대체 사건의 구성과 실마리가 잡혀지지 않아 진도가 나가기 쉽지 않았다.

우리에겐 낯선 뉴질랜드의 골드러시 당시 상황을 눈으로 보듯 섬세하고 자세하게 그려낸 작가는
미스터리같은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하여 독자로 하여금 다인칭을 경험하게 하고 사건의 요모조모를 분석하는 재미를 제공한다. 그런데 책 속에 등장하는
사건에 연류된 십수명의 등장인물들은 천체의 역학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작가는 치밀하게 책을 쓰기 전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배역을
정하고 성격을 형성해나갔던 것이다. 주요 인물은 12명인데 각각이 상징하는 황도 12궁이 존재하며, 나머지 인물들 역시 행성 속에서 이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몇 해전 지인이 별자리를 공부한다고 했을때 나의 질문은 "별자리도 공부를 해야 하는건가요?"였다. 돌아오는 대답 역시 내
질문의 예상되는 답변이 아니었다. "너무나 공부할게 많아요. 각 별자리의 특성과 연결된 심리적, 행동적 성향까지 무궁무진하답니다."
이
소설에서는 바로 그것을 다루고 있었다. 우리가 심심풀이로 보았던 별자리 운세가 사실은 기묘하게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것임을 우리는 미쳐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책을
펼치면 월터 무디가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고 배에서 하선하여 호텔에 도착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우연히 머무르게 된 호텔에서 어쩌다 마주한
12명의 인물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디는 그들이 얽혀 있는 사건의 미스테리한 부분들을 풀어 나간다. 사건의 맥은 이렇다. 창녀였던 안나
웨더렐이 죽을 뻔 했고, 크로스비 웰스가 죽었고, 에머이 스테인스가 사라졌고, 프랜시스 카버가 출항했으며, 알리스테어 로도백이 마을에 도착한
1월 14일 밤의 사건과 관련된 이유로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공통된 사건에 여러 모양으로 연결되어 혐의 아닌 혐의를 받게 된다. 창가에는
마오리족 조각가 테 라우 타우웨어가, 웰스의 집과 땅을 매매에 부친 은행원 찰리 프로스트, 사망소식을 겨우 몇시간만에 전해들은 신문사 운영자
벤자민 뢰벤탈, 웰스의 자산을 구매한 에드거 클린치, 포주이자 극장주인 에머리 스테인스와 친밀한 사업동료였던 딕 메너링, 아 퀴, 크로스비
웰스의 오두막에서 금더미와 아편 팅크병을 발견한 중개상 하랄 닐슨, 아편 팅크병을 판 약가게의 주인 조지프 프리처드, 사라진 화뮬상자의 주인인
정치인 로더백의 심복 토마스 발퍼, 안나 웨더렐에게 보석금을 내주고 그녀의 오렌지색 매춘 드레스 안에서 또 다른 약간의 금을 발견한 오베르
개스코인, 아편 판매인이자 카니에레 아편굴의 주인이자 프렌시스 카버의 옛 동료였던 아 숙, 시뷰 해안단구에서 은둔자의 시체가 영면에 드는 의식을
진행했던 목사 코웰 데블린까지 이 주인공들의 이름을 외우며 책의 이야기에 몰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책의 앞 페이지에 나와있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설명된 페이지를 수차례 반복해서 보면서 사건의 맥을 짚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전과자인 프랜시스 카버는 알리스테어 로더백을 속여서 그의 배
갓스피드 호를 얻어내고, 그가 정치인에게 억지로 보여주었던 화물상자가 사라진다. 그 안에는 4천 파운드의 금덩어리들이 안쪽에 꼼꼼하게 꿰매놓은
다섯 벌의 드레스가 들어 있었다. 재봉사는 리디아 웰스라는 여자이다.
금광채취의
고단함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한 글과 준비은행의 풍경은 우리에겐 낯설은 환경이었다.
"계속되는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듯이 이야기는 모든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돌아가는 원처럼 이어졌다. 빙글빙글도는 사건처럼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12명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1권이 끝나갈때까지 사건은 미궁이었다. 누가 범인인지, 왜 이 사건이 벌어졌는지 작가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독자에게 인내하며 읽으라고 한다.
2권에서는 그
사이에 행성들은 움직이는 별들이 위치를 바꿔 태양은 기울어진 황도의 원을 따라 12분의 1만큼 전진했고, 이 움직임에 따라 전체적으로 새로운
세상의 규칙이, 새로운 시각이 나타나게 된다.
2권은
1권의 느릿한 구조보다는 빠르게 사건이 전개가 된다. 대화 위주의 사건 전개이다 보니 1권의 묘사 위주의 글보다 몰입력이
강했다.
열두명의 등장인물들은 공통된 믿음으로 뭉친게 아니라 공통된 불안으로 단합하여 이 사건을 마주한다.
너무나
기대하고 봐서 그런지 수많은 찬사를 글로 느끼기엔 문화적인 차이가 컸고, 별자리의 성격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린다면 아마도 12명의 시각에서 한 사건을 바라보는 재밌는 구조가 지닌 복잡성이라 할 수 있겠다. 단순하지 않아서 더
궁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뻔하지 않아서 더 읽고 싶게 만든 것이기도 하다. 결말이 궁금하다면 바로 지금 책장을 펼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