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주름




 



박범신의 [주름]은 그 초고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작인줄 알았는데 그의 표현대로라면 아프게 깍아내어 다시 손질해 만든 작품이다.

수많은 페이지들이 깍여졌는데도 이 책은 아직도 두껍다.

표지그림이 주는 강렬함, 제목이 주는 의미심장함으로 책읽기는 시작되었다.

사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있었다.

소재가 특이했다. 50대 중반의 남자가 60이 다 된 여자에게 사랑에 빠져 그가 이룬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여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이렇게 한 줄로 줄거리를 말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작가도 독자에게 충고한다.

'단순히 부도덕한 러브 스토리로만 읽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 충고를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읽고 나서 보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가 책의 가장 마지막에 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으며 내내 의문에 빠졌다.

사실 나는 주인공 김진영의 감정에 이입이 되고 싶었다. 그가 느꼈던 사랑, 천예린에 대한 집착과 열정, 경외감 등에 대해 책을 읽으며 부지런히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결론을 말하자면 실패했다. 도저히 김진영이라는 사람이 천예린에 대해 가졌던 그런 전폭적인 감정이 그려지지 않았다.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안쓰럽고 기이했다.

그러나 그는 파멸을 향해 달려갈수록 자유로와졌으며, 사고의 유연한 확장과 현학적인 태도, 삶에 대한 가치와 기준을 뒤엎는 것에 동요되지 않는 모습, 가족에 대한 애뜻한 연민은 하나도 없는 참으로 기이한 인물이 되어갔다. 그저 그가 살아왔던 삶에 대한 후회와 번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울화, 사회적, 경제적으로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이 한데 모여 가공할만한 힘으로 그를 끌어 당겼다.


김진영이 천예린을 쫓는 여정 또한 숨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하며 그녀를 쫓는 그의 집착에 힘이 들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책장을 서둘러 넘겼다면, 내용이 중반에 이르면서 이 둘의 고통스런 그로테스크한 사랑에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그는 시간의 주름살이 우리의 실존을 어떻게 감금하는지, 그것에 속절없이  훼손당하면서 끝까지 반역하다 처형된 한 존재를 기록했다는 말을 남긴다.


김진영의 기이한 죽음을 준비한 박범신 작가가 야속했다. 끝까지 독자가 기대하는 결말과 스토리를 부정하며 작가의 이념을 펼친 듯하다.

시간의 주름이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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