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 유자광 vs 김일손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9
김경수 지음, 고영미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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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9

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제목도 흥미진진한 책을 읽어 본다.

이 책은 조선 중기 정치인인 유자광이 연산군을 부추겨 무오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매도하는 역사를 개탄하며 당시 사관이었던 김일손은 그 일을 사초에 실었고, 본인에 대해 나쁘게 기록했기 때문에 사림파 학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소송을 제기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이 정치가 벌어지는 자리에 참석하여 모든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초를 바탕으로 다시 정리한 기록이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실록은 임금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바로는 이극돈과 유자광이 사초를 미리 보고 그 내용을 연산군에게 이른 결과 무오사화라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관은 보고 들은 내용을 낱낱이 적는 것이지만 거기에 비평을 써 넣거나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사관들이 인쇄까지 끝난 실록을 사고에 보관하고 편찬에 사용된 모든 자료를 태우지 않고 재생 종이로 활용하기 위해 물로 빨았다고 한다.

이를 '세초'라고 하는데 세초는 자하문 밖 세검정 부근의 차일암에서 거행되었다니 그 절차도 까다롭고 사관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또 기밀 유지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직업인지 알 수 있었다.


세계 기록 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가 총 1,893권 888책에 수록되어 있다.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정치사를 빠짐없이 기록했다는 점과 그 내용에 정치에 대한 비판 등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인정된 것이다. 또한 금속 활자나 목활자로 된 인쇄물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수한 역사서이지만 한계점도 있다. 지배층의 역사서라는 점에서 국가 정책이나 양반 관료 위주의 기록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이미 편찬된 것을 고친 경우가 있는 '수정 실록' '보수 실록'의 사례도 한계점이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피고 김일손의 사초 작성 행위가 왕실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정국의 혼란을 가져 온것에 대해 충분한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기각한다. 법정은 유자광에게 사화로까지 비화시킨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고, 김일손에게는 자신의 신념에 넘치는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라고 명한다.

역사란 정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진실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는 꼭 알아야 할 우리의 숙제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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