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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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토요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그동안 읽지 못해 테이블 위를 장식만 했던 그 책을 펼쳐든다.

박범신의 [소소한 풍경]

제목은 매우 잔잔했다. 그러나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박범신은 이미 아주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하는 우리 시대 거목이다. 그럼에도 그의 나이와 비교했을때 그의 글은 젊다. 그래서 그를

'영원한 청년작가'라고 부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없이 슬프고 신비한 인간의 운명에 관한 보고서

생의 어느 작은 틈은

검푸른 어둠에 싸여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러므로 비밀이다.'

 




책 속엔 주인공의 이름이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선생님, ㄱ,ㄴ,ㄷ, 남자1, 보컬, 기타 등 그 사람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그들을 호칭할 뿐이다. 그래서 더 거리감을 둘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읽는 내내 다른 소설에 비해 주인공에게 가지는 연민이나 안타까움이 덜 느껴졌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다소 파격적이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내용에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등장한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함께 살고 그 사이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존재인 또 다른 여자가 끼여들어 삼각관계가 아닌 원의 구조를 띄며 관계를 형성해간다. 그 사이에는 질투나 시기, 미움이나 사랑, 애증의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을 이루는 형태가 아닌 둥근 모양이라 하지만 어디 인간관계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반격일수도 있겠다.


'소설이라는 게, 사람들 몸뚱어리 속에 박힌 가시들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와 진배없는 것이다.(p317)'

 

작가는 소설 속에 '홀림', '덩어리','가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가 느끼는 이미지가 잘 함축된 단어들이다.

나는 박범신의 글의 힘이 참 좋았다.

파격적인 내용이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글은 고급스러운 작가의 기품이 묻어난다. 그냥 쉽게 써진 글이 아닌

정성과 고민, 상당한 심혈을 기울인 것이 문체와 문장 하나 하나에 잘 드러난다.

이 책의 구조는 주인공 ㄱ이 화자이고, 선생님이 화자이며, ㄴ도 죽음 이후 화자로 등장해 상황을 설명해준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과거라는 상처에 항상 몸의 반쪽이 비를 맞은 듯 젖어 있는 이들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를 나는 선호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푹 빠져서 읽었다.

그러나 처음에도 말했듯이 내용이 수긍이 되거나 이해하진 못하겠다.

남자 ㄴ이 우물에 빠지게 되는 것과 그것에 대처하는 ㄱ와 ㄷ의 모습도 상당히 엽기적이다.

 

'영혼은 20와트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다. 20와트 에너지는 죽음으로도 훼손되지 않으며 소멸되지도 않는다(p291)'

영혼의 존재를 에너지로 말하는 부분은 흥미로왔다.

 

이해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밑줄이 그어지는 문장들이 참 많았다.

'비의적인 동행의 예감'

'직관은 사실의 눈을 뛰어넘으니까'

'고통과 사랑이 우리를 예언자로 만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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