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도 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을까? - 사도 세자 VS 영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8
이종호 지음, 이일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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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5백 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 중 사도 세자를 꼽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부왕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었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비극적인 일이다.  사도 세자는 당쟁의 희생물로 뒤주라는 공간에서 죽음을 당한 자이다.

어릴 적 보았던 사극에서는 사도 세자를 비정상적인 인물로 묘사했었다. 그래서 그 드라마를 보면 사도 세자가 죽어 마땅한 분위기였다.

비정상적인 언행, 부왕의 역모 기도설 등이 죽음을 불러 왔을까?

 

 

이 책을 읽으며 그 진위를 가려 보자. 

 사도 세자는 영조 임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영조는 조선의 21대 왕이다. 왕권 강화에 힘쓰고 탕평책을 시행했다.

사도 세자는 소장을 통해 정신병이 있었다는 의혹을 해소하고, 역모를 기도했다는 항간의 소문이 거짓임을 밝히며, 죽음의 진상과 부당성을 증명하고 한을 푸는 것을 청구하였다.

영조는 치열한 당쟁 속에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붕당을 만드는 자를 정치에서 제외시키고, 노론의 강경파를 몰아내며 소론과남인의 온

건파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펼쳤다. 그러나 각 당파들은 곧 다시 정권을 독점하려고 했으며 그로 인해 임오화변이 일어난 것이다.

1749년 영조는 건강상의 이유로 사도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한다. 그러나 세자가 대리청정을 하자 다시 세자의 세력을 앞세워 정권을 장악하려는 남인, 소론 세력이 등장한다. 그리하여 세자와 영조 사이는 벌어지게 된다.

 사도 세자는 이 와중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궁녀를 죽이거나 궁궐을 빠져 나가는 등 정상적인 행동에서 벗어난 일들을 저지르게 되고 영조 모르게 관서 지방을 여행하고 오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경언은 세자의 비행 10 조목을 상소하게 되고 영조는 화를 참지 못하고 사도 세자에게 자결을 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세자는 응하지 않았고 영조는 그를 폐위하여 서인으로 강등시킨 후 결국 뒤주 속에서 죽게 만든다.

결론이 궁금했다. 한국사법정에서는 사도 세자의 입장을 어떻게 판단했을까? 정신병은 있었다고는 단정짓지는 않았지만 정서, 행동, 대인 관계의 불안정과 주체성의 혼란 등의 이유로 '경계성 성격 장애'로 판정을 내린다.

역모 기도설은 근거는 충분치 않지만 정황을 의심할 만한 점도 있다고 판단하고 세자가 이런 정신적 장애를 가진 것에 대한 영조의 책임도 묻는다. 두 사람 모두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며 판결문은 끝을 맺는다.

역사는 여러가지 사료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유기체 같은 존재가 바로 역사가 아닐까? 우리 조선의 역사 상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한 사도 세자의 모습은 그 이유가 어찌 되었던 간에 후대에 커다란 충격을 준 일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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