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광해군은 억울해했을까? - 광해군 vs 이귀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4
김태희 지음, 박상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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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아이와 함께 읽은 책은 광해군에 대한 내용을 다룬 [왜 광해군은 억울했을까?]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샐리와 쟈니가 어느날 나에게 질문을 했다.

"왜 광해군은 군이라고 호칭을 불러요? 왕인데."

"............"

사실 그 부분에 대해 자신있고 조리있게 답변하기 애매할 정도의 지식만 가진지라

책을 읽으며 그런 궁금증들을 해소해나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광해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적어도 영화가 나오기전까지는.

광해군도 연산군처럼 그렇고 그런 일들을 해서 왕이 가지는 호칭조차 불리지 못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했을 것이다.

광해군은 조선시대 15대왕으로 임진왜란때 세자가 되어 선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세자일때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민심을 수습하는데 앞장섰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조선시대 어느 세자도 광해군처럼 전쟁터에서 고생스런 일들을 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은 광해군이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내용으로 광해군의 치적을 알아보고 그가 저지른 과오도 되돌아본다.

광해군이 세자가 되고 왕이 되는 일들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후궁의 자식이었고, 첫째 아들도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었던 때는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전쟁 아래 폐허가 된 조선땅이 있었고 굶주린 서민들이 고통받는 시기였다.

광해군은 황폐해진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대동법을 시행하고 동의보감을 편찬하게 한다. 또한 사대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국제정세에 과감하고 현명하게 실리외교를 펼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신하들의 원성을 사고 결국 붕당정치로 분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물어본 '군'이라는 호칭은 어떻게 붙여진 것일까? 임금은 원래 -조나 -종으로 끝나는 임금 이름을 받는데 광해군은 억울하게도 묘호를 받지 못하고 세자때의 이름을 그래도 사용한다. 이렇게 불려진 분들은 세 분이 있는데 노산군, 연산군, 광해군이 있다. 노산군은 나중에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되어 명예를 회복했고 연산군은 폭군이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광해군은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받지 못한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라 생각된다.

광해군이 폭정을 했다고 여겨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신하들이 등을 돌리는 안타까운 사건은 인간 광해군의 굴곡진 삶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광해군의 사실에 많이 감동했다.

그 누구보다도 힘들게 세자가 되고 왕이 되었던 그, 아버지인 선조의 왕다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랐음에도 백성을 위해 애썼던 그가 자랑스러웠다. 우리가 그의 호칭을 광해군이라 부르는 것이 미안하다.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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