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운명을 믿는다는 건 정해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만 같아 부정적인 느낌이었다.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닌 이미 정해진 노선대로 끌려 가고 있다고 할까? 그래서 타로나 점쟁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인지도! 

"나는 믿지 않았어. 그날의 일을 겪기 전까지는"

운명의 강한 기운을 느낀 사람들이 하는 말은 비슷하다. 믿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의 일을 계기로 말이다. 이 책 [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은 이 한 문장의 매력에 이끌려 이스탄불로의 여행을 기꺼이 떠나게 해주었다.

"우리에겐 두 개의 삶이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삶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 

진전 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조향사 앨리스는 소음 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집 남자 화가 달드리와 '운명의 남자'를 찾아 떠나게 된다. 말도 안되는 조합이라 처음에는 너무 몰입이 되지 않았던 게 사실! 나라면 절대 이런 조합의 동행을 하지 않았을 터. 이스탄불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기에 독서 내내 마치 내가 여행하듯 소설 속 문장과 문장 사이를 유영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운명이니, 가야 할 길로 인도해준다는 작은 신호니 그런 걸 믿지 않았어. 점쟁이의 말이나 미래를 점치는 타로도 믿지 않았고, 난 단순한 우연의 일치, 그 우연의 진실을 믿거든"

이렇게 말하던 앨리스는 잊혀진 기억 너머 숨겨진 진실과 운명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나게 된다. 달드리와 앨리스는 연인도 친구도 아닌 그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관계로 시작된다. 계약에 의해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관계였는데 사실 예상대로 둘은 서로에게 운명의 상대였다. 특히 소설 속 배경이 된 1950년대의 런던과 이스탐불은 그려지는 풍경이 예상과 많이 달라 흥미로운 여행을 떠나는 듯 했다. 마법 같은 사랑의 여정은 어린 시절의 비밀스러웠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부모님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며 마침내 조향사로서의 성취감도 얻게 되는 등 이스탄불 여행이 가져다 준 결과는 실로 대단했다. 점쟁이의 정체는 죽음으로 밝혀낼 수는 없었지만 모두의 예상대로 야야의 언니가 아닐까! 달드리처럼 돌고 돌아가는 스타일은 매우 사양하고 싶지만 소설 속에서 만나니 극적인 요소가 되어 준다는 것에 소설에서만 만나자고 말하고 싶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배경이 되어준 두 도시 런던과 이스탄불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있는 순간들, 증발해버린 특별한 순간들을 상기시켜주는 향수, 어떤 장소를 떠오르게 하는 향수에요. 후각적 기억만이 유일하게 절대로 흩어지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사랑했던 이들의 얼굴은 세월이 흐르면 지워지고 목소리도 잊히지만, 냄새만은 아니에요. 절대로. 미식가인 당신이 어린 시절에 먹던 음식의 향이 기억을 불러 일으키면 모든 것이 되살아날 거에요. 사소한 것까지 모두 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솔직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