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종태, 그리며 살았다 - 한 예술가의 자유를 만나기까지의 여정
최종태 지음 / 김영사 / 2020년 1월
평점 :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지난한 싸움의 연속입니다. 입신과의 싸움, 나와의 싸움, 사회와의 싸움 그리고 때로는 신과의 싸움까지 투쟁의 산물과도 같은 작품은 인고의 아픔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예술가의 삶은 녹록치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저 또한 그러한 지점에서 부딪치곤 하는데요. 위대한 예술가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최종태, 그리며 살았다]는 최종태 교수이자 예술가인 그의 삶과 예술,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에세이입니다. 10년 동안 기고한 글들로 엮어진 책이기에 군데 군데 중복되는 내용도 많고 구어체 문체도 많아 마치 할아버지가 지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듯 친근감 있게 읽혀집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았던 최종태 작가의 삶은 역사 속 순간순간을 함께 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흐름의 변화를 본질까지 접근할 수 있는 어르신이 되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가 한평생 예술과 종교에 대해 고민하고 번뇌하며 살았다는 것은 글 속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인간의 지적인 계산에 의해서 잡힐 한정된 세계가 아닌 것 같았다. 모든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서 잴 수 없는 것, 볼 수 없는 것, 들을 수 없는 것, 상상을 넘는 것, 그리하여 직관으로도 닿지 않는 초월적 세계가 있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 그림을 그리며 조각을 하며 그는 예술의 본질과 예술이 근원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알아가려 노력했던 것이죠.
예술가는 자기 집을 짓고 거기에서 삶을 마칠 수 있어야 되다고 생각했던 그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닌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이 그림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하다보면 욕심이라는 것이 차올라 더 잘 그리려고 하고 더 멋지게 만들려고 하는데요. 그럴수록 본질은 빠지고 외형만 남아 결국 좋은 작품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그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지요. 우리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최종태 작가는 책 속 여러 곳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능금나무 열매는 쉬면서 익는다'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아주 멋있는 말이라 극찬하면서 말이죠. 대가나 전문가들에게 이 말은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충고일지도 모릅니다.
책에서는 최종태 작가와의 인연이었던 지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윤형근 선생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는데요.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곧은 품격을 가진 그의 삶이 그림 속 그대로 투영되었다는 점에서 그가 남긴 그림들의 의미가 다시 새롭게 조명되는 듯 했습니다.
'윤형근 선생의 그림은 뜻 그림이다. 삶의 이야기가 그대로 화면에 배어 있다. 그린다기보다 토해내는 것 같은 형국으로 보였다'
노화가는 말합니다. '참 그림은 아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면서부터 비로소 시작일 것 같다' 그림을 그릴 때 종종 붓에 힘을 빼라는 지적을 받게 되는데요. 본질 이외에 잡다한 것들이 손끝에 딸려 들어가 그림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힘 빼고 마음을 고르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좋은 그림이란 사랑의 파장을 수용하는 것이며 그 사람에게서 그 그림이 나온다는 것, 그림은 사람이 그리기 때문에 그 그림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