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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에서 때론 뉴스에서나 접해봤던 직업인 국선변호사는 일반 대중에게 특정한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러한 이미지들이 전부가 아님을 국선변호사 정혜진은 그녀의 책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에서 그녀가 변론한 사례들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 살면서 변호사를 만나는 일이 많지 않길 바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법적 다툼과 공방에 휘말리는 일들이 적길 바란다는
것이다. 변호사 선임비는 시민들이 가볍게 낼 수 있는 돈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이렇듯 여러 이유로 피고인이 변호인을 스스로 구하지 못하거나
구하지 않을 때 국가는 국선변호인을 붙여준다. 국가가 월급을 주는 국선전담변호사는 당사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이중적 독립성을 가져
냉정하게 수사 기록을 평가한 의견을 피고인에게 먼저 말해주고 그 의견을 기초로 재판 진행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 국선전담변호사
정혜진은 그동안 그녀가 맡았던 사건들 가운데 마음에 남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독자에게 선보였다. 많은 피고인들과 그들의
가족 이야기는 범죄라는 잔혹함 뒤에 인지상정이라는 감정으로 안타까움과 애잔함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전직 기자 출신인 그녀의 돋보이는 필력
덕분에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처럼 사람을 미워할 수 없는 상황은 많이
존재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또는 내 가족이 피해자라면 또 다른 입장 차이가 발생한다.
매달 새로운 25건 내외의 사건들을 마주하며 피고인과 국선변호사의 관계의 만남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책에서는 그러한 궁금증들이 많은 에피소드로 해소된다. 그녀는 범죄 안팎의 풍경은 너무나 작고 사소하고 조각나서 변호사라
할지라도 그 삶의 실체를 다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동안 변론한 사건들 속 피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우리 사회의 불완전하고 조각나서 미완의 경계들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강력 범죄를 일으킨 피고인들의 변호를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워낙 범죄가 잔인하고 극악무도하기에 생기는 여론들로 변호사들에게까지 그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인 국선전담변호사의 모습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좀 더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빙산의 일각에서 본 보잘것 없는 이야기들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으로 건너가 닫힌
문을 열어 젖히고 그 누군가가 들려줄 또 다른 이야기의 재료가 됐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처럼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