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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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종관의 10년의 기록을 담은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는 잔잔한 글과 사진이 담겨 있는 그의 인생 이야기다. 사실 나는 그를 잘 모른다. 그가 만든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사전 지식이 없으니 글이 오롯이 글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없이 저자가 영화감독이라는 사전지식만 지닌 채 이 글을 읽게 되었다.

책 제목처럼 며칠동안 나는 책과 동행했다. 여행을 갈 때도 일 할 때도 집에서 쉴 때조차 항상 옆에 두고 있었다. 책은 작고 아담해서 집중해서 몇 시간만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런데 몇 페이지를 읽고 나니 이 책은 그렇게 읽기 보단 음미하면서 며칠동안 나눠 읽기에 적당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감독의 시선에서 바라본 타자의 삶과 그의 삶이 적당하게 어우러져 자꾸만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김종관의 글은, 아니 그의 인생은 너무도 담담해서 오히려 독자가 감정이입이 되어 버린다. 슬픔도 가난도 외로움도 그저 그렇게 읖조리듯이 이야기해준다.

그의 일상 속 인생을 글 속에서 여행하며 이문동에서 제주로, 조치원에서 일본으로, 효자동에서 바다로 그렇게 함께 떠나게 된다. 외대 근처 후미진 골목,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그 골목길 어딘가에 그 풍경들이 펼쳐질 것만 같아 책을 덮고서도 그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2012년 출간한 그의 처녀작 [사라지고 있습니까]의 개정 증보판인 이 책은 빛 바랜 사진처럼 아련하기도 하고 낡은 사진첩이 발현하는 추억처럼 기억의 저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무엇보다 글 속 배경처럼 등장하는 사진이 내 마음의 온도를 재는 듯 했다. 때론 서늘하게 때론 온기있게 다가오는 그의 사진으로 인해 나는 감정의 온도를 재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은 그의 글만큼 많은 여운이 담겨 있었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낙원], [폴라로이드 작동법] 등의 영화를 만든 김종관 감독, 책을 읽고 나니 그의 영화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영화와 책을 어떻게 다르게 접근했을까? 혹은 어떻게 비슷하게 엮어냈을까? 궁금증이 일어난다.

십 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쓰라릴 정도로 상처받은 일조차, 너무나 행복해 세상을 다가진 것만 같았던 일들도 시간의 힘 앞에선 그저 아스라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무언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십 년 전 이야기와 현재의 소소한 변화를 이어붙여 독자에게 노크하는 그의 책을 읽다 보니 나의 십 년 전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보면 어떨까 마음이 동요되었다.

그는 그가 살아온 거주지와 매우 밀접한 감정교류를 한다. 그래서 동네 이름을 읖조리며 그 동네가 가지는 이미지를 그의 글 속에서 느껴볼 수 있었다. 어찌보면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인데 괜시리 마음 한 구석에서 잔잔한 파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살짝 아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책속한줄

"건대 앞 치킨 집 처마 밑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닥의 패인 홈을 내려다보며 피로와 슬픔의 한 덩어리가 턱 밑까지 차올랐다고 느꼈을 때, 나는 주변의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 출발 자세를 하고 있었고, 관계에 서툰 청춘에 지쳐 있었다. 그 시간 위에서 마다가스카르행이라는 잠시의 상상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당시의 고단함을 이겼던 힘은, 가지지 못한 그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지지 못한 위로야말로 때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으로 둔갑하곤 하니까.(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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