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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 - 삶의 모든 마디에 자리했던 음식에 관하여
정동현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7월
평점 :

제목이 길다.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 는 회사원이었던 머리 좋은 남자가 뒤늦게 요리사가 되어 요리에 대한 그의 인생을 버무려 글로 표현한 책이다.
요리이야기이기에 읽는 내내 식욕이 솟구친다. 그런데 또 읽다보면 목이 메어오거나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음식과 관련된 그의 삶이 녹아져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음식과 연관지어 있기도 했다. 어린 시절 온가족이 외식할 때 먹었던 모듬회, 데이트 할 때 먹었던 경양식 집의 돈까스, 여행가서 먹었던 현지음식, 맛집을 수소문해 몇 시간을 기다려 먹은 음식들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정쉐프 역시 그랬다. 당구장집 아들로 자라면서 외식이 주는 힘은 컸다.
그가 말하는 그리움의 맛은 유년시절의 추억과 어울리는 맛이었고, 그를 일으켜 세운 순간의 맛들은 지금의 그를 만들어준 토대와도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뜨거우며 짜고 달았던 시간의 맛은 비교적 근래의 그의 음식들이다.
참 많은 맛이 책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 하다. 요리를 나이들어 배우는 것은 쉽지 않다. 좁은 주방에서 험하고 고되게 많은 시간을 일했던 그는 서 있는 법, 생각하는 법, 걸어 다니는 법까지 새로 배워야했다. 30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그라는 정체성은 요리 앞에서 무너져야 했고 요리사로 다시 태어나야만 했다.
아프면 라면을 약처럼 먹으며 쓴소리도 달게 받아가며 그는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돈까스 접시를 깼던 소년은 이렇게 멋지게 자랐다. 삶과 음식을 버무리는 칼럼리스트 정동현의 이야기는 음식의 맛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동시에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론 고되고 때론 뜨겁고 때론 짜고 때론 달았던 인생이었기에 지금은 그 누구보다 그 맛을 잘 낼 수 있는 자가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빈 그릇도 달리 보인다. 빈 그릇 속 그리움이 내게 다가오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