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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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더 큰 첨벙'의 아름다운 햇살과 어우러진 로스앤젤레스의 수영장 풍경이 연상되는 책 표지 [청소부_매뉴얼]은 나의 연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루시아 벌린의 단편 소설집이다. 왠지 평화로울 것만 같은 거리의 모습은 그 안에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있는 말하지 못할 사연을 품은 이들과 대조를 이룬다.

퀄리티 좋은 가제본으로 만나본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은 단편 16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된 작가 루시아 벌린은 독특한 이력을 소유한 작가였다. 좋지 않은 유년 시절의 환경, 3번의 결혼과 이혼, 알코홀릭, 4명의 아이를 키워낸 싱글맘에서 이미 그녀의 삶이 들여다 보였다. 어떻게 살았는지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처한 상황에서 이미 그림이 그려질 정도였다.

그래서 그럴까? 책 속 단편 하나 하나 읽다보면 작가가 경험한 리얼리티가 소설이라는 이름 아래 반짝거렸고, 너무 적나라한 묘사가 오히려 처연한 슬픔으로 다가왔다. '잘근 잘근 씹어 뱉어 버릴 인생의 조각조각'에 독자마저 심장이 베이는 듯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허구지만 모두 그녀의 삶 속에서 녹아내려 들러붙은 그녀 자신의 이야기들이었다. 뗄레야 뗄 수 없는 너무나 접착력이 강해 제 살마저 도려내야 하는 아픔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24살에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다양한 직업을 거치면서도 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지병으로 죽기 전까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사후에야 더 명성을 얻게 된 루시아 벌린의 자주 등장하는 소재, 빨래방은 참 많은 인생을 비추고 있는 배경이 된다. 그녀의 글은 밝고 강렬한 기운과 함께 음울하고 예상할 수 없는 삶의 방향성을 느끼기에 충분하며 독특한 서술이 낯섬에 빠지게 해준다.

 

 

'우리는 노인을 향한 저자의 동정심을 흡수한다'

'그의 침대를 흔든건 숨을 쌕쌕거리는 것 같은 녹슨 파이프 소리였을 뿐이지만 그 웃음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이었다'

그녀만큼 빨래방과 관련된 인간의 이야기를 많이 쓴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가장 서민적인 곳에서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바라볼 수 있는 그곳은 그녀만의 아지트였고 소설의 원천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녀의 글은 아프다. 실제 경험이었고 삶이었기에 소설임에도 글은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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