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디블 가족 - 2029년~2047년의 기록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널리스트를 직업으로 두었거나 둔 적 있는 작가가 쓰는 글은 다르다. 소설의 주제 속에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소재의 디테일하고 상세한 이야기들의 전개로, 소설을 읽고 나면 그 분야의 많은 상식이 쌓여지는 효과까지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맨디블 가족]의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사회문제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비판의 글을 꾸준히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로도 맹활약하고 있는 소설가다. 그래서 이 소설 [맨디블 가족]은 그 어떤 책보다 앞으로 다가올 있음직한 사건의 이야기를 미래의 시점에서 적나라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몇해 전 중국전문가로부터 중국의 화페 위엔화의 강세가 미래의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서 미국중심의 지배체제에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언같은 미래전망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결코 어불성설이 아닌 실현가능성이 충분하다며 다가올 미래의 혁명과도 같은 변화에 적잖은 흥분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요원한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세계의 경제는 미국이라는 큰 손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기에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의 세대가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배경은 2018년으로부터 불과 11년 후의 미래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고작 11년 후의 일인데 벌어지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었고,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참옥했다.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금융 쿠데타는 미국 사회에 전쟁과도 같은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개인이 소지한 금을 국가에 몰수당하고 개인의 재산이 종이쪼가리로 전락하며 맨디블 가족은 그들의 풍요로움이 순식간에 붕괴되어 가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채무 포기, 주식 시장 붕괴, 금 회수, 대기업들의 방코르 보유 금지 등 지금의 현실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정부의 주도하에 이뤄지게 되고 모든 경제 금융의 시스템은 파괴와 함께 제 기능을 상실하고 인간으로서 저질러서는 안되는 일들을 자행하며,  존엄성 마저 잃어버리는 참상들이 서슴없이 벌어지는 지옥이 되어 간다.
"보석상과 보석류에도 예외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애국적인 금 반납에 대해서는 무게에 따라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만, 이 보상에는 이번 비상사태에 앞서 일어난 광적인 금주식 인플레이션이 반영되지 않을 것입니다. 은닉은 용납되지 않습니다."(p89)

더글라스 맨디블,에놀라, 플로렌스, 에스테반, 에이버리, 로웰, 윌링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등장하는 인물들이 똑같은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또는 그 사건으로 인해 망가지는지 대조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법도시에 사는 무법자들이 되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실제의 미래가 되어버리면 어쩌나 읽는 내내 마음은 조바심이 나고 무언가 정의내리기 어려운 두려움이 엄습해옴을 느낀다. 모두가 살고 싶어하는 나라였던 미국은 모두가 떠나고 싶어하는 나라가 되어 버리고, 소설의 부제처럼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견뎌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개월 동안 앵커들은 현재 상황을 위기(crisis), 참사(catastrophe), 대재앙(cataclysm),재해(calamity) 같은 단어로 언급했지만 이제 c로 시작하는 표현이 다 떨어져 갔다. 재난(disaster),낭패(debacle),참화(devastation)처럼 d로 시작하는 표현은 그전에 이미 다 써먹었다."(p326)

방코르에 대항하기 위해 벌인 화폐전쟁은 결국 달러를 몰락으로 이끌었고, 미래를 위해 저축한 사람들, 미래를 믿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손해를 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미래를 믿었던 사람들이 당한 사기였고 거대한 몹쓸 장난에 당하고 말았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일어난다. 카르마의 응집처럼,

"붕괴는 갑작스럽고 비잘발적이며 혼란스러운 형태의 간소화이다"

돈의 가치의 몰락보다 윤리와 도덕의 가치의 파괴가 더 괴로왔다. 인간이 인간임을 포기하는 최악의 상황들이 펼쳐질 때, 돈의 힘 앞에 무력하게 무너져 버리는 인간의 존엄성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2029년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소설은 어느새 2047년까지 세월이 흘러간다. 세월은 더 나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악몽의 시작을 낳는다. 정부와 사회가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전쟁과도 같은 삶을 통해 통화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가 되고, 국가의 위기가 가족의 위기가 되어 결국은 개인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 간극을 메워줄 것은 분명 존재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몇 가지 흥미로운 미래 예견이 나온다.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세워지고,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합병하며 인도네시아가 오스트레일리아를 침략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미래의 모습이 이렇게 된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희망이 부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본능처럼 앞으로 다가올 하루는 지나간 어제보다 더 낫길 바라기 때문이다. 소설은 쉽게 읽혀지지 않을 정도로 경제용어와 이론들이 난무한다. 그 덕에 책을 읽고 나면 뉴스에 등장하는 금융기사가 다르게 보인다. 역시 아는 만큼 내 것이 된다는 것, 독서를 통해서도 깨닫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