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수다 - 차도르를 벗어던진 이란 여성들의 아찔한 음담!
마르잔 사트라피 글 그림, 정재곤.정유진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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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만 읽었을 뿐이지만, 워낙 재밌게 읽은 터라 나도 모르게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니 나도 꼭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속으로만 소심하게 난 그녀의 팬이라고 우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아는 아랍계 사회는 흑백 영화 같은 느낌이다. 그곳에 가본 적도, 자세히 공부를 한 적도 없으면서 막연하게 느끼는 -아마도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얼핏 본 느낌- 폐쇄적이고 엄격하고 답답한 사회. 여자들은 전부 다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코란 규율에 따라서 살아야 하고 꼼짝달싹 못하는 억압과 종교 속에 화석처럼 박힌 사람들. 

그런데 이런 선입견을 한방에 깨준 책이 나왔다. 이런 유쾌하고 발칙한 책이 있나. 이런 이야기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도 금기에 가까운 이야기들인데, 오히려 우리보다 더 개방적인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실 테헤란은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색깔이 가득한, 비밀스런 이야기와 오묘한 눈빛과 뜨거운 공기가 가득한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람사는 곳'이었는데, 내가 그걸 몰랐을 뿐이다.  

금기에 대한 도전을 하는 용감한 여자들의 수다는 즐겁지만, 역시 멋지다. 과연 나는 이런 제약 속에서 그녀들보다 더 자유로운지 스스로 묻게 하는 책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역시나 이 책이 '새만화책'에서 나왔다면 훨씬 더 원래 책 내용에 맞게 발랄하게 나오지 않았을까. 더불어 가격도 저렴하게. 새만화책에서 발굴한 작가를 어쩐지 휴머니스트가 냉큼 중간에 스틸한 기분. 내가 촌스러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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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주문 신부
마크 칼레스니코 지음, 문형란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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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으로 주문하는 신부라니. 어쩐지. 소도시만 가도 이젠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수막이 떠오른다. "도망가지 않는, 착한, 순종적인...베트남 신부랑 결혼하세요." 이제 국제결혼은 특별할 것도 없이 흔하고, 말 그대로 글로벌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아직도 국제결혼에 대한 선입견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캐나다 소도시에 붙어있는 한국인 신부 소개를 보면, "근면하고, 충실하고, 순종적이고, 귀엽고, 이색적이고, 가정적이고, 순진한 소녀들"이다.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말이다. 

캐나다에 사는 노총각, 몬티는 이 소개들을 보고 한국인 아내를 맞이한다. 카탈로그를 보고 고른 아내가 바로 경이다. 몬티는 괴짜(?)인데, 장난감과 만화책을 모으는 오타쿠로 아직도 철이 들지 않고 살아간다. 아내 경은 그가 원하는 환타지를 충족시키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이국적인 여자다. 하지만 몬티의 기대와는 다르게 경은 영어도 잘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의견이 분명하다. 그는 동양인형 같은 아내를 원했던 셈인데, 사실 이건 그의 환타지일 뿐, 경은 변화를 찾아 캐나다까지 온, 어찌 보면 용기 있는 여성이다. 

사실 결혼이란 게 사회적인 제도다 보니, 사회적으로(경제적으로) 최상계층의 여자와 최하계층의 남자가 짝을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농촌 노총각들이 신부를 찾지 못하는 이유나 골드미스가 넘쳐나는 세태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나 싶은데. 이 책을 보면서 그저 남의 얘기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이건 우리나라에 시집 온 많은 이주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녀들은 잘 사는 한국에 시집와서, 친정에 보탬이 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꺼란 기대로 이 먼 곳까지 왔지만, 과연 이중에 정말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여자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 넓은 이해심과 문화적 포용력을 가진 남자들이 많진 않을 거라 생각된다.

아직도 글로벌화를 외치고, 영어가 중요하니, 세계화가 어쩌니 떠들어대면서도 한편에서 동남아시아에서 온 근로자들을 무시하고, 백인을 동경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존재하는 우리들. 박노자 선생이 GDP 인종학이라고 불렀던, 잘사는 나라 국민들만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순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이야기는 사실 충격 그 자체일 수 있다. 

결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본 적이 없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현실에 너무나 무지하거나 남녀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관 없이 그저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에 환상을 갖고 있는 걸 보면, 난 사실 무섭다. 성적 환타지와 결혼관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는 것인데, 평생의 동반자를 찾는 의식이 아니라 마치 장난감을 고르듯 결혼을 하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국 여자들은 된장녀에 조건만 따진다고 비난하면서, 우크라이나 여자가 예쁘니, 러시아 여자가 예쁘니 외쳐대는 몇몇 찌질남들이 이 책을 꼭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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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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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어려운 책은 아니었지만, 쉽게 읽히는 책도 아니었다. 책장을 휙휙 넘기다가 다시 돌아가기를 여러 번, 길고 깊은 고민이 담긴 책이라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지만 어쩐지 읽을수록 착찹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과연 어찌 해야 할 것인가. 

나도 작년 고려대에 붙었던 김예슬양의 대자보에 관한 기사를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그걸 보면서도, 김예슬양이 쓴 문장에 구구절절 동감했고, 마지막 부분이던가, 자신은 앞으로 상처받고 쓰러질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나, 암튼 거기서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은 사실 등록금 장사를 하는 곳으로 변한지 오래란 건 다 알고 있는 거지만. 대학생이 넘치고 넘쳐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대학교 졸업장이 무슨 벼슬이 되지도 못한다. 이젠 토익에 학점에 어학연수에 자격증에 스펙을 얻기 위한 처절한 전쟁터로 변한 곳이 대학이고, 이런 냉철한 싸움에 방관하거나 한발 벗어나 있는 이들에겐 잉여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대학을 졸업한지 몇 해가 흘렀지만, 나는 얼마 전, 브로콜리 너마저의 2집 <졸업>을 듣다가 눈물을 왈칵 쏟을 뻔 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널 잊지 않을게, 라는 후렴구를 듣다가 얼어붙은 느낌. 나는 이제 그 시절의 고민이나 아픔이나 방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어른 비슷한 것이 된 줄 알았는데, 그건 전부 다 착각이었단 생각. 내가 겪었던, 아니 겪고 있는, 갖고 있는 상처에서 나는 한발도 벗어나지 못한 기분이 든다. 이러한 청춘의 아픔은 생각보다 오래, 깊은 상처를 남겨서 때때로 이렇게 가슴을 후벼판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게다가 나는 이제 월급도 꼬박꼬박 받는 직장인인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마음이 스산한 것처럼. 

뭔가 너무 어렵고, 답답한 문제라서 쉽게 얘기할 순 없지만, 고민을 하고, 아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다가 포기했다가 다들 그렇게 조금씩 자라는 것이라 믿고 싶다. 내 아픔이, 내 상처를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다고 믿진 않지만, 삶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고 또 각각의 입장이 상황이 다르지만 아픔은 언제나 함께 하기 때문이다. 

잔혹하고 무서운 세상, 어른들의 리그는 언제나 청춘들을 이용하거나 야단 치거나 평가할 뿐이지만, 청춘은 언제나 흔들리더라도 부러지진 않길 빈다. 더 건강하고 씩씩하게 각자의 꽃을 피워나가길. 그게 어떤 향기, 어떤 색깔, 어떤 모양이든, 그저 각자 어디에서든지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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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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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거리에 차 한잔 하자는 남자들이 사라졌단다. 다들 사랑이니, 연애 같은 뜨거운 마음을 품기보단, 스펙이나 돈이나 취직에 목숨을 걸기 때문일지 모른다. 젊은이들이 가득한 곳에서도 이성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식은지 오래고, 다들 그저 뒤에서 성을 사거나 팔면서 모든 것이 경제적인 가치에 환원되는 세상을 살고 있단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손 잡고 거리를 걷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고. 다만 세상이 변하고, 방법이 변했을 뿐. 거리에서 말 거는 남자가 사라진 건, 아마도 흉흉한 세상 탓이 크지 않나 싶은데, 아마도 여자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방어의 감각을 최대한 세우고, 초식동물마냥 주위를 넓게 살피며 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커피 한잔 하자는 남자의 요청은 줄었어도, 휴대전화 번호를 찍어달란 넉살을 부르는 남자는 생기지 않았을까.

전에, 목수정이 쓴 다른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보면, 대학시절 그녀는 '연애만 했다고 한다.' 이는 운동권이 아니었다는 반증인 셈인데, 그녀가 프랑스 유학을 떠난 계기도 사랑하던 남자와의 파국적인 끝이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런 작가가 이야기 하는 야성의 사랑학은 그래서인지 분명하고 강한 어조인데, 이런 태도에 불편함을 느끼는 독자도 꽤 많은 것 같다. 나는 일단 자신만만 시원시원한 그녀의 문장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최근의 20대에 대한 담론의 연장선에 이 책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스펙쌓기에만 집중하고, 정작 사회와 소통하지 않고, 뜨겁게 분노하거나 움직이지 않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의 연장선에 사랑이 있다. 전에 한겨레21을 보니까, 88만원 세대의 슬픈(?) 사랑에 대한 기사가 났었는데, 정말 엄청난 등록금에 학점 관리에 아르바이트에 토익공부에, 젊은이들에게 사랑은 사치일 뿐이고, 여유가 없단 슬픈 이야기. 그 이야기가 어찌나 슬프던지 마음이 아팠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열정의 사랑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에너지가 될꺼라고 주장하지만, 어쩐지 크게 공감되진 않는다. 역시나 세대가 다른 탓일 수도 있고, 그녀의 사랑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과 만족이 어쩐지 불편한 느낌이랄까. 

암튼, 사랑하기도 어려운 세상, 마음의 여유가 없는 세상. 젊은이들의 열정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는 느낌. 과연 이 꼬이고 얽힌 문제의 실타래는 어디서 풀 수 있을지. 연애란 기본적으로 소비적인 활동일 수밖에 없다. 극과 극을 오고가는 감정의 소비는 물론, 시간과 돈을 쓰는 활동이다. 그 과정에서 행복하고, 나를 알아가고, 남을 이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건 멋진 일임이 분명하지만, 그걸 강요하거나 독려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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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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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에 써 있는, "울면서 읽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책이었다. 정말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슬프다, 딱하다, 마음이 아프다 정도에서 우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기에 울지 않고, 똑똑히 정독하겠단 마음으로 독하게 읽었다. 

사실, 소외된 노동 현장 속으로 기자들이 직접 들어갔다는 점에서 그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직접 현장 속에서 고생한 기자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사실 한 달 동안 기사를 쓰기 위한 '시한부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 노동이 현실이고 생계인 사람들의 고통을 십분의 일이나 담아낼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사실 현실이 이보다 훨씬 더 우울할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현실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어쩜 그나마 나은 상황일지도 모르니까.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는 언제나 가장 절박한 문제고, 급박하고, 소중한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구질구질할지도 모른다. 배고픈 사람, 춥고 갈 곳 없는 사람은 사실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혀를 쯧쯧 차며 냉소를 보낼 수도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마음이 공존하는데, 특히 요즘과 같은 사회에서 가난은 무능력한 개인의 문제로 보여지기 쉽고, 얼마나 게으르고 못났기에 저렇게밖에 못 사냐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식당에서, 공장에서, 마트에서, 곳곳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고 무능력한 사람들이니까 저런 대우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심심치않게 접하게 될 때마다 정말 사람이 제일 무섭단 생각과 함께 나도 포함해서,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특히, 소외과 차별의 종합선물세트라고 여겨지는 식당 여성 노동자의 얘기를 보면서 식당에서 밥을 사먹으면서 한번도 유심히 보지 않았던 우리들 엄마들의 이야기에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저 부끄럽고 미안함을 느끼기엔, 그건 아니다 싶다. 인식의 변화가 진짜 제도적 변화의 시작이 될 순 있겠지만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에도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내 탓도 크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전문직도 아니고, 대기업 직장인도 아니고, 고액 연봉자도 아니고, 한 달 벌어서 겨우 살아가는, 그나마 혼자라서 빠듯하지 않게 살아가는 내가, 서울이란 거대한 도시의 밑바닥에서 일하는 일개미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빨래에 나오는 말처럼, 꿈을 찾아서 왔건만 어찌 된 일인지 점점 꿈을 잃어가고 있고. 바쁘고 피곤하단 핑계로 사실, 사회나 제도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 자체를 안 하고 그냥 혼자 푸념과 불평을 하는 게 아닐까.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한 만큼, 최소한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질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위한 필요성을 많은 독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정도의 차이, 상황적 차이가 있을 뿐, 이것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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