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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몬스터 (보급판 문고본)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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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흡연, 음주, 동거, 문신 등 나쁜 여자들의 대표적인 전력을 모두다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살인, 강간, 폭행에 비하면 그리 나쁠 것도 없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사는 여자에게는 꽤 치명적인 것들이다. (중략)
세상의 모든 여자를 굳이 선한 부류와 악한 부류로 나눈다면 나는 확실히 착한 여자 반대편에 있는 '나쁜 년들' 그룹에 속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내 주변에 '그런 여자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우리는 함께 누군가를 풍자하고 놀리고 장난치고 낄낄거리고 비명을 지르고 무릎을 치며 야단법석을 떤다. 때로는 남자들을 농락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때가 되면 여자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그걸 여우처럼 이용할 줄도 안다. (중략)
그런데 미안하지만 나쁜 여자는 착한 여자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우리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그 점을 이용할 줄도 안다. (중략) 이제 착하기만 해서는 더 이상 주목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봐라. 수재의연금을 냈다는 이유로 동경의 대상이 된 여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지. 자뻑 같아 매우 쑥스럽지만 남자들도 나쁜 여자랑 연애하고 싶어 한다. 착한 여자는 일단 재미가 없다. (중략)
어쨌든 나는 내 욕망에 솔직하고 부당한 것에 대한 분을 참지 않고 언제나 재미있는 것을 추구해 왔다. 그런 이유로 특별한 의식 없이도 우리 시대의 규범이나 권위를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런 내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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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집은 나온지 몇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바뀌는 지금까지 요즘 이삼십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비교적 현실감있고 감각적으로 풀어낸 것 같아서 읽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잡지사 기자 생활을 오래한 그녀의 문장은 읽기에 무리가 없고, 다양한 방면의 이야기꺼리를 제때에 잘 끄집어내는 실력이 있는듯 하다.
그 중의 한 꼭지인 윗 글을 보다가 또 쓸데없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착해야 한다'는 강박에 묶여서 사는 게 아니라 각자가 원하는대로, 비록 그것이 '나쁜 년'이란 평가를 받는 것들일지라도. 각자의 기준에 따라 생각에 따라 재미를 따라 사는 것. 그게 중요하단 거다. 더욱이 그렇게 살면 더 매력적인 여자로 평가받을 수 있단다. 남자들도 그런 나쁜 그녀들의 매력에 빠지게 된단다. 착한 여자는 '재미'가 없으니까. 연애하고 싶어한단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어떤 남자가 있다. 그 역시 흡연, 음주, 동거, 문신 등의 경험을 갖고 있고(현재 진행형으로 하고 있거나) 누구를 놀리고 풍자하고 깔깔거리고 놀린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그 남자가 '나쁜 남자'란 평가를 받겠는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가 흔히 '나쁜 놈'이란 평가를 내리는 남자는 '여자를 때리거나, 임신한 애인을 버리거나 하는' 뭐 그쯤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는 엄연히 다르다.
영악한 나쁜 여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그런 인식을 신경쓰지 않음은 물론 나아가 이용하기까지 한다.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고, 남자들한테 챙길 건 챙기고, 즐긴 건 즐기고. 정말 매력적인 연애하고 싶은 여우가 되는 것이다. 나쁜 여우, 그래서 더 치명적인.
여자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경우는 대개 두 가지 경우이다. 여자로서 정체성(?)을 십분 이용하거나,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는 것. 저자가 윗글에서 말한 여자는 전자의 경우가 될 것 같다. 왜 이래야 하는가. 여자는 착하든 나쁘든 어쨌든 잘 '팔리기'위해,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면 그만이란 것일까. 이건 선택 받아야만 하는 존재의 비애인 것인가.
여자는 사회적 규을을 뛰어넘어 하고 싶은 대로 주위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고 당당히 살아가는 것도, 남자들이 그 여자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는걸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의 기준 또한 여자들 스스로가 만든 것은 아니다. 그건 분명히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선이다. 남자들의 눈에서 '여자가 감히 저런 걸'이라고 느끼는 것들을 모아 나쁜 여자 몇종세트처럼 만들어놓고 거기에 포함되는 여자를 싸잡아 나쁜 여자라고 부르고 있다. 사람이 어찌 그리 단순한 존재인가. 그렇다면 매월 꾸준히 복지단체에 기부금을 보내고, 자원봉사 활동을 자발적으로 하며, 납세의 의무를 다 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배에 문신을 하고 있고, 현재 애인과 동거 중인 여자는 나쁜 여자인가 착한 여자인가.
남자들의 일방적 기준에 따른 착함과 나쁜 여자의 구분 짓기는 소용이 없다. 제발 그냥 있는 그대로 좀 내버려 뒀음 좋겠다. 나쁜 여자는 더 재밌으니까, 매력적이야. 어디로 튈지 몰라 신선해. 이따위 호기심과 재미로 여자를 대하지 마라. 여자는 물건이 아니고 장난감은 더더욱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