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구판절판


일주일간의 궤도비행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저는 깨달았죠. 아무리 오랫동안 이 일을 하더라도 결코 질리거나 싫증이 날 리는 없을 거라는 걸요. 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을 땐 섭섭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상공에서 낙하산이 퍼졌을 때도 안도감이 들지 않더군요.

저는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지구가 알사탕만하게 보이는 곳으로, 그러니까 제 잘못이나 슬픔도 알사탕의 티끌로 보이는 곳으로요. 엄마, 저는 그 모든 순간을 즐겼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이걸 위해서 희생했던 것들, 제가 저지른 실수와 오류들 말이예요.
사는 게 선택의 문제라면 저는 제 손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싶거든요.-00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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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
이지민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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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마나 근사한지를 설명하자니 그 많은 매력 가운데 무엇부터 꺼내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훌륭한 집은 화장실만 묘사해도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나. 그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모든 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마 그의 손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리라. ......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눈을 한번 감아보길 권한다. -9쪽

뻔뻔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오히려 행복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창피를 당하면 누구나 달리기를 잘하게 되니까.-15쪽

아무리 바빠도 집에는 갈 거 아니에요. 길바닥에서 잘 건 아니잖아요. 민우씨, 혼자 집에 가기 심심한 날 있지 않아요? 어렸을 떄 우리는 학교 끝나면 꼭 친구랑 같이 집에 갔잖아요. 왜 어른이 되면 혼자서 집에 가야 하는 거죠?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데 왜 꼭 남자만 여자를 바래다줘야 하는 거죠? 남자는 뭐 집도 없나. ......
그래도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고도 그의 마음에 무거운 추를 매달 수 있었으니. 그 무렵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는데, 내가 그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사랑을 포기하고도 되돌려받을 수 있는 그 밖의 어떤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기억이나 감성, 후각이나 촉각, 뭐 그런 것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데자뷰처럼 기습적으로 나를 찾아올 신비로운 어떤 감각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떳떳하게 그에게 요구했다.
......
언제든 허전하고 외로운 날이면 나를 불러요. -21쪽

어쩌면 자신이 사랑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사랑의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상대는 정해졌고 마지막은 어차피 알 수 없다. 그 불안한 과정을 견디거나 즐기거나, 선택은 각자의 몫인 것이다.-26쪽

나는 사랑했으나 사랑받지는 못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으나 돈은 벌지 못했다. 나는 정답은 풀었으나 문제는 알지 못했다. 나는 뒤처져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들을 이해했다. 나는 그들의 염려를 덜어주고 싶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그 사람만의 특허품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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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 행복한 오기사의 스페인 체류기
오영욱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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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다. 나는 네이버 오기사의 블로그를 즐겨찾기에 추가해놨다. 이 책을 읽기 훨씬 전부터. 가끔씩, 아니다. 자주, 종종 그의 블로그를 둘러보면서 나도 모르게 뿌듯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담백한 그의 그림과 글을 보는 게 즐거웠다. 무엇보다 과장되지 않고 직접적이지 않은 은근한 그의 글이 좋았다. 짧게 한두 문장씩 스케치 아래 적어놓은 것들. 아마도 이런 좋은 느낌은 '오기사'라는 개인이 갖는 매력과도 무관하지는 않을듯 싶다.

그의 블로그를 통해 본 그는 인상 좋고 여유있어 보이며 분위기까지 좋은 '훈남'이었고, 나 같은 월급쟁이들에게 그는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가 꿈과 희망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용기'까지 갖춘, 그야말로 로망과 같은 사람이다. 게다가 그림 실력도 좋고, 문장력까지 있다니.  블로그를 통해 보여지는 그의 취향들, 음악이나 영화 등... 아,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나랑 비슷하냐는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지는, 쿨럭)

그러므로 내가 이 책을 읽고 느꼈던 감정은 상당히 주관적이며 편향되기 마련이다. 나는 절!대! 훈남 작가의 책을 보고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 기준으로 리뷰를 쓸만큼 독하지 못하단 말이다. 먼저 그의 그림은 너무나 보기 편하다. (그리기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안전모를 쓴 오기사가 바르셀로나에서 체류하면서, 잠깐 스쳐가는 여행자라면 절대 몰랐을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20대 후반? 30대 초반 남자의 마음에 충실한 솔직한 이야기들도 재밌다. 개인적으로 책을 보면서 느낀 건 아마 나 같은 여성독자들이 이 책을 많이 좋아할 것이라는 것. 아마도 나 같은 흑심을 가득 품은 채 말이다.

가끔씩 타인의 삶을 블로그를 통하든, 책을 통하든 훔쳐보는(?) 것으로도 묘한 즐거움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내가 마치 이상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 내가 못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하지만 주관있고, 자기 뜻대로 성실히 열심히, 참 잘 산다는 감탄이 나오는 타인의 삶들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자극제가 된다. 그렇다고 내가 내일 당장 바르셀로나로 떠나겠단 것은 아니니깐. 어른이 되어가는 기로에서, 느끼는 건. 어느 순간 나는 나랑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나를 무난(?)하게 생각하는 사람만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나랑 너무도 다른 길을 가며,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만나기도 불편할뿐 아니라, 만나는 자체도 힘들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자기합리화에 빠진다. 나는 잘 살고 있다. 이만하면 된거야....점점 자기기만으로 빠져든다.

내 인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 일상과 내 생각들을. 하지만 울 엄마의 명언처럼 인생은 그냥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은 아니다. 가끔 앉아서 쉬기도 하고, 뒤로도 달려보고, 같이 가기도 하고, 그런 거다. 이렇게 멋지고, 젊고, 재주많은 남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가슴 두근거린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퐁퐁 솟아나는 그의 그림보따리와 이야기보따리를 계속 만나고 싶다. 흑심 가득한 마음으로. 흐흐.미안해요, 사랑해요. 오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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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알약 - 증보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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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알게된 프랑스인 사진작가가 있다. 그는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으며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 어젯밤에 종로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전철역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더운 날씨 탓인지 땀을 조금 흘리고 있었는데 붉게 상기된 표정이 몹시 건강해 보였다. 사실 누가 너무 시끄럽게 낯선 말들로 떠들어서 쳐다보았는데 그곳에 그가 한 여자와 함께 서 있었다. 처음에 나를 보고 누구? 하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던 그는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그 옆에 서 있는 여자 역시 화장기 없는 얼굴에 커다란 배낭을 매고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외모는 전형적인 한국 여자였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했다. 수줍어하며 인사를 하는 그녀의 그 미소는 완전한 한국여자의 것이었지만 그녀는 프랑스인이고 한국어는 아주 조금 할 수 있다고 했다. 짧은 영어로 몇마디 얘기를 나눠보니 그녀는 한국계 프랑스인 입양아였고, 현재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에 살며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했다. 나는 두 사람의 상기된 얼굴과 톤이 높은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낯선 한국땅에서 살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내가 이 부부를 만나고 집으로 오면서 예전에 읽은 이 책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만화의 주인공은 에이즈에 걸린 그녀와 역시 에이즈에 걸린 그녀의 아들과 함께 산다. 얼음판 위를 걸어야하는 것같은 가슴 조마조마한 나날들이고 조심해야할 것들이 많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며 돕고 행복하게 산다.

나는 이 만화를 보면서 '이상적인 관계'-특히나 남녀 사이에서의 관계-에 대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약 내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그가 에이즈 환자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할까. 이런 질문 자체를 아예 나에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라며 상상조차 해보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일텐데, 사실 내가 사랑한 남자가 대머리면 어쩌지, 도박을 하면 어쩌지를 걱정하는 일도 드물다. 주인공은 책에서 어느 순간, 그녀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버릴 수 있었다고 얘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동정심도, 미안함도 모두 불필요한 감정의 찌꺼기일 뿐이다.

현실에서 내가 직접 본 커플과 만화에서 본 커플, 이 두 가지 커플의 사례만 봐도 내가 얼마나 고정관념과 편견에 휩싸인 채 살고 있나, 조금은 느낄 수 있다. 나는 아직도 현실과 동떨어진 먼나라의 완벽한(?) 타인과의, 이성과의 관계를 꿈꾸고 있는 게 아닐까. 있는 그대로 그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그와 같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것. 하지만 이 모든 긍정과 인정은 사랑과 믿음, 배려를 바탕으로 하기 마련이다. 언제나 기대를 한다. 나와 이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어딘가에 있을거라고. 하지만 문제는 바로 나였을 뿐이다. 너무 삐딱하고 세속적인 나. 내 탓이다. 내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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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품절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야피, 라우드 알 라야힌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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