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려대학교 진입이 저지되었을 때, 대부분의 학생이 이를 통쾌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학생들이 왜 이번엔 그리도 분노한 것일까? 알량한 이권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호화 호텔을 방불케 하는 최신식 건물.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후원과 졸업 후 진로의 상관관계. 게다가 대기업 입사율은 그 자체로 학교의 서열을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 아닌가.-0070쪽
덕분에 삼성이라는 기업의 횡포에 흘려야 했던 노동자의 피눈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직 히틀러만이 실현할 수 있었던 '무노조 경영'에 명예철학박사 학위가 수여되는 것을 지켜보는 인문학 교수들의 참담한 자괴감.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것으로 드러난 거대 자본 앞에서 느끼는 서민들의 공포감. 안암골 주민들은 이를 너그럽게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들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학생들의 몸싸움.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서 묻는가?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에 가로막힌 물이 제 갈 길을 찾아 우회하듯이, 분노의 흐름도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것을 피해 사소한 곳으로 흐를 수밖에.-00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