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
이지민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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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마나 근사한지를 설명하자니 그 많은 매력 가운데 무엇부터 꺼내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훌륭한 집은 화장실만 묘사해도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나. 그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모든 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마 그의 손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리라. ......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눈을 한번 감아보길 권한다. -9쪽

뻔뻔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오히려 행복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창피를 당하면 누구나 달리기를 잘하게 되니까.-15쪽

아무리 바빠도 집에는 갈 거 아니에요. 길바닥에서 잘 건 아니잖아요. 민우씨, 혼자 집에 가기 심심한 날 있지 않아요? 어렸을 떄 우리는 학교 끝나면 꼭 친구랑 같이 집에 갔잖아요. 왜 어른이 되면 혼자서 집에 가야 하는 거죠?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데 왜 꼭 남자만 여자를 바래다줘야 하는 거죠? 남자는 뭐 집도 없나. ......
그래도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고도 그의 마음에 무거운 추를 매달 수 있었으니. 그 무렵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는데, 내가 그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사랑을 포기하고도 되돌려받을 수 있는 그 밖의 어떤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기억이나 감성, 후각이나 촉각, 뭐 그런 것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데자뷰처럼 기습적으로 나를 찾아올 신비로운 어떤 감각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떳떳하게 그에게 요구했다.
......
언제든 허전하고 외로운 날이면 나를 불러요. -21쪽

어쩌면 자신이 사랑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사랑의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상대는 정해졌고 마지막은 어차피 알 수 없다. 그 불안한 과정을 견디거나 즐기거나, 선택은 각자의 몫인 것이다.-26쪽

나는 사랑했으나 사랑받지는 못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으나 돈은 벌지 못했다. 나는 정답은 풀었으나 문제는 알지 못했다. 나는 뒤처져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들을 이해했다. 나는 그들의 염려를 덜어주고 싶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그 사람만의 특허품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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