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가 활동을 멈췄다. 나를 온전히 나로만 존재하게 하는 것, 그 무엇이란 말이냐. 사실 치열하게 문장이란 것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은 없다.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남모를 시간을 투자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다만 잘 알지 못했을 뿐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써야 하는 건지, 무엇을 쓰고 무엇을 빼야하는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 경계를 몰라서 어정쩡하게 돌아섰을 뿐이다. 하지만 못내 뱉어낸 말들이 만족스럽진 못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나처럼, 내가 만들어낸 그것들이 완벽하지 않았음을. 허술하고 엉성해 고쳐야할 것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대안이 없음을. 그냥 그게 최선이었어. 별수가 없잖아.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엔 방법이 없잖아. 근데 또 그걸 그대로 두기엔, 받아들이는 건 괴로워. 좀 많이 아쉽고, 안타까워. 정말 그래. 부끄러워. 그걸 또 하나의 '나'라고, 나의 일정 부분이라고,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나의 속마음, 나의 뇌의 일부, 나의 속의 한 부분이라고 그렇게 규정짓기에도 많이 못마땅해.

인정을 하고, 돌아서고, 속상해하고, 못마땅하고, 그러다가 결국은 긍정을 하고. 어쩌지. 어쩌지. 어쩜 좋을까. 조바심을 내고. 울고. 웃고. 가끔은 혼자 으쓱하기도 하고. 이 정도면 썩 괜찮은걸, 미소짓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구겨버리기도 하고. 나에게 글이란 그렇다. 난 내 이름 석자를 걸고 세상과 글로 소통하고,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는 건 더더욱 아닌데. 왜 왜 이러는 걸까. 이런 내 욕심일걸까. 내가 원하는 내 모습.. 내가 되고 싶은 '나'는 매끄러운 문장을, 감각적인 문장을, 너무나 날카롭고 예리하며 유머감각있게 쓰는 사람인가보다. 능력의 한계가 느껴지는데. 자꾸 이러니까 내가 미워진다. 밉다. 미워. 싫다, 싫어.

결국 나만의 내 글의 독자요, 비평가요, 팬이었다. 유일한 나. 소중한 나. 딱 이만큼인 나. 인정하기 힘든 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와의 짧은 동거 - 장모씨 이야기
장경섭 지음 / 길찾기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텅빈 집, 문을 따고 들어왔다. 개수대에 가득한 설거지거리들, 언제 끓여먹은 건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라면냄비들과 접시들. 방바닥에 널려 있는 읽다 만 책들, 제대로 닫혀 있는 것도 없다. 비닐봉지가 터질 것 같은 넘치는 쓰레기통, 입다가 그대로 벗어놓고 나간 파자마는 내 몸 형태를 유지한채 침대 위에 널부러져 있다. 정말 한숨만 나온다. 심각하다.

후.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방바닥에 치약이 밟혔다. 치약이... 오늘은 어째 도가 좀 지나친 날이다. 외로움의 정도가... 그렇게 쪼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덜컥 인정하고 말았다. 그와의 공존을... 외로움의 도가 지나친 날이었기 때문에...

'그'와의 공존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전부 치약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혼자 견딜 수가 없었다. 낙오자인 나, 못난 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나, 혼자인 나. 이런 내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긍정할 수 있게 해주는, 버티게 해주는 동거인. 그런 동거인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밖에 없다. 나는 혼자다. 다른 대안은 없다.

당연하게 반응하는 것들. 벌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 머릿속을 점령해버린 불쾌하고 더럽고 찝찝한 그 모든 '안' 좋은 느낌들. 극적인 혐오감이 아닌, 그것들을 포용하게 되는 힘은 우습게도 현실 속에서 찌질한 내 존재였다. '벌레 같은 놈'이란 욕이 벌레에게 미안한 말이 되는 나. 막막한 현실. 그런 암담함에 위로가 되는 건. 묵묵히 목숨을 지키고 있었던, 벌레란 말이냐. 그날 치약만 밟히지 않았더라고 그와의 동거를 하지는 않았을텐데. 그래

이게 다 외로움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erengeti (세렝게티) - Afro Afro
세렝게티 (Serengeti)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굉장히 뜨끔한 이야긴데, 사실 나는 세렝게티의 1집 음반을 구입하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다운을 받아서 들었는데, 그나마 그 모모사이트가 '유료'라는 사실을 강조하면, 좀 덜 뜨끔할 거 같기도 한데... 암튼 나는 음반을 구입하지 않고 계속 다운받아서 무한반복해서 듣고 있는 아주 나쁜 팬인 셈이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순간 든 의문 하나. 책은 굳이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주위에서 빌려 읽고, 하다못해 동네책대여점에서 빌려 읽는 게 뜨끔한 일은 커녕, 자연스럽다 못해 자랑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데, 왜 음반을 구입하지 않는 건, 이토록 내 양심을 찌르는 걸까. 음반 시장이 얼어붙다 못해 죽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암튼 이런 불경기를 조장하고 다운로드를 일삼는 나도 공범은 공범이다.

세렝게티라는 이름을 듣고 밴드 이름을 떠올리게 된 것은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지난 일요일에 홍대 클럽에서 세렝게티의 공연을 보고서야 뒤늦게 음반을 찾아서 들었으니까. 찾아보니까 엄청 유명한 밴드였는데, 나는 제대로 뒷북을 친 셈이다. 원래 브로콜리너마저 공연을 보려고 간 공연이었는데 공연 후의 여운은 이 밴드에게 남아있는 걸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공연을 볼 때는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대단한 밴드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조용히 음반 전체를 들어보니 세련되고 깔끔한 연주 실력에 보컬의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다.

정말 아프리카 초원에 서 있는 것같이, 편안하고 자연의 느낌이 난다. 얼핏 들으면 윈디시티의 김반장 목소리 같은데, 음악 성격 자체가 비슷해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역시 음악은 직접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연주를 듣는 게 최고로 멋진 거 같다. 야구는 야구장에서 볼 때 제일 재밌고, 영화도 극장에서 볼 때가 제일 재밌는 것처럼.

사파리 투어도 하고 있다고 하는데, 한번 더 그들의 무대를 만끽하고 싶다. 무대 위에 선 그들은 연예인이 아니라 음악을 하는 사람이여서 너무나 멋졌다. 개인적으로 정수완씨의 울림있는 저음이 마음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떠나라 죽을 만큼 목마르다면
장자영 지음 / 꿈의날개(성하)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서문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여자 나이, 스물 여섯 이후인가? 그럼 여자는 나누어진다고. 시집가는 여자와 여행가는 여자 두 종류로. 그래서 저자는 떠났단다, 여행을.

음, 반면 나는 시집도 여행도 안 가고 스물일곱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딱히 건설적인 일을 하거나 원대한 포부를 펼치지 않아도 시간은 잘도 가고 나이는 꾸역꾸역 먹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오 맙소사.

저자가 여행한 길들, 그녀는 정말 배낭 하나를 매고서 부지런히 잘도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다. 유럽이나 미국같이, 영화와 드라마에서 본, 살고 싶은 멋져보이는 나라가 아니라 인도, 동남아시아 등등 힘들고 불편한 구석구석을 씩씩하게 재밌게 여행했다.

그녀는 불편한 길을 따라가다보면, 반드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여행의 법칙을 이미 깨닫고 있다. 나는 몇년 전에 필리핀의 한 섬으로 여행을 갔을 때,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하루종일 달린 적이 있다. 그것도 차를 탄 것도 아니고 지프니를 타고. 길은 울퉁불퉁, 지프니에 빈 자리는 하나도 없었고, 지붕까지 사람과 짐이 섞인 그야말로 난장이었는데, 그 고된 시간을 보내고 도착한 마을은 너무나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그 조용하고 깨끗한 해변의 밤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전기도 끊기고, 오직 밤하늘의 별만 반짝이고, 파도 소리만 쿵쾅쿵쾅 내 가슴에 울리던 그 순간을.

그 순간은 정말 영원히 내 마음에 남아서 잊혀지지 않는 내 재산이 되었다. 편한 길, 누가 봐도 멋진 길이 아니라, 불편해 보이는 길, 그 길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세상. 나는 감히 상상도 못할 그 세상. 내가 믿어왔던 것, 내가 보고 들었던 것들을 한순간 뒤집을 수 있는 그 새로운 유쾌한 신나는 자극이 필요하다. 목이 탄다. 떠나야겠다. 짐을 꾸려야겠다. 얼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커트 보거네트의 저 말에 공감표 백만 개를 날리고 싶다. 정말이지 요즘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나날들이다. 살기 너무 힘들다, 정말. 너무 힘들다. 누군가가 나보다 더 고되게 살아가는 소녀소년가장 얘기를 꺼내든, 몸이 불편하고 아픈 사람들 얘기를 꺼내든,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내 고통이 제일 크다. 그러니 제발 힘내라는, 더 괴로워하는 사람도 많다는 얘기따위는 꺼내지 말기 바란다.

이런 나날, 앞이 깜깜한 나날.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나날. 유일하게 날 즐겁게 하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귓가에서 울리는 그 멜로디를 따라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다. 흥얼흥얼 가사를 따라부르다가 그 내용들이 꼭 나를 위로하는 얘기 같아서 덜컥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보거네트가 들려주는 짧지만, 깊은, 재밌지만, 슬픈 이야기들. 책이 두께가 얇은데 읽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진도가 잘 안 나간 건, 내 이해력이 부족한 탓일까, 아님 그가 너무 똑똑한 탓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