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짧은 동거 - 장모씨 이야기
장경섭 지음 / 길찾기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텅빈 집, 문을 따고 들어왔다. 개수대에 가득한 설거지거리들, 언제 끓여먹은 건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라면냄비들과 접시들. 방바닥에 널려 있는 읽다 만 책들, 제대로 닫혀 있는 것도 없다. 비닐봉지가 터질 것 같은 넘치는 쓰레기통, 입다가 그대로 벗어놓고 나간 파자마는 내 몸 형태를 유지한채 침대 위에 널부러져 있다. 정말 한숨만 나온다. 심각하다.

후.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방바닥에 치약이 밟혔다. 치약이... 오늘은 어째 도가 좀 지나친 날이다. 외로움의 정도가... 그렇게 쪼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덜컥 인정하고 말았다. 그와의 공존을... 외로움의 도가 지나친 날이었기 때문에...

'그'와의 공존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전부 치약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혼자 견딜 수가 없었다. 낙오자인 나, 못난 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나, 혼자인 나. 이런 내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긍정할 수 있게 해주는, 버티게 해주는 동거인. 그런 동거인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밖에 없다. 나는 혼자다. 다른 대안은 없다.

당연하게 반응하는 것들. 벌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 머릿속을 점령해버린 불쾌하고 더럽고 찝찝한 그 모든 '안' 좋은 느낌들. 극적인 혐오감이 아닌, 그것들을 포용하게 되는 힘은 우습게도 현실 속에서 찌질한 내 존재였다. '벌레 같은 놈'이란 욕이 벌레에게 미안한 말이 되는 나. 막막한 현실. 그런 암담함에 위로가 되는 건. 묵묵히 목숨을 지키고 있었던, 벌레란 말이냐. 그날 치약만 밟히지 않았더라고 그와의 동거를 하지는 않았을텐데. 그래

이게 다 외로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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