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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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가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p. 5


제목부터가 인상적인 활자 잔혹극은 첫 페이지의 첫 번째 문장부터 이토록 강렬하게 시작된다. 순식간에 이 책 속에 사로잡히는 느낌이 들고,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궁금증이 몰려온다. 어째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한 일가를 처참히 죽일 수가 있는가? 당연히 여러 명을 몰살시킨 유니스 파치먼이 싸이코패스이거나 혹은 일가족이 그녀로 하여금 극한의 분노와 악의를 느끼게 만든 게 아닐까? 단지 문맹이라는 것이 살인의 동기로써 충분한 것인가? 

책을 다 읽고난 지금 답을 하자면 그렇다. 문맹은 충분히 살인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반대로 활자에 깊이 중독된 사람들 역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 그것은 문맹이라는 것이 단순히 읽고 쓸 수 없는 불편함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세상, 특히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됨을 의미한다.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 자체가 어렵다. 또한 우리가 다양한 책을 접함으로써 지식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게 된다. 그러나 문맹의 경우 이러한 학습의 과정이 동반될 수 없기에 극단적으로 그들의 감정은 뭉뚱그러져 대략 몇몇 가지로 구분되어 있기 마련이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기 위한 역지사지 마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심하면 도덕심이나 죄책감과 같은 인성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그들에게 문맹은 일생에 걸쳐 가장 숨기고 싶은 치욕스런 비밀이며,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고까지 생각한다. 따라서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른다. 활자가 없는 곳, 글을 읽을 필요가 없는 곳에서 그들은 최고의 일꾼이 된다. 눈을 쓸 수 없는 대신 다른 기관들이 예민해지고 문맹이라는 사실이 들키지 않기 위해 조그만 실수도 하지 않는다. 기억력과 관찰력이 상당히 비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지런한 완벽주의자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커버데일 식구들 역시 유니스의 끝내주는 집안일 솜씨에 매료되어 그녀의 몇 가지 흠쯤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지 않았는가. 그러한 점을 꿰뚫어 보았다면, 그리고 그녀가 문맹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이전에 그만두게 했더라면 -움침한 성격같은 것을 빌미로- 몰살 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텐데.

반대로 책 속에 빠져 사는 자일즈 역시 유니스와 닮은 점이 있다. 지적 수준도 높고 애서가임에도 분명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소통 능력의 부재. 커버데일 가족들과 대화도 나누는 법이 없으며 가족들의 일상에 무관심하다. 하루 종일 책만 읽으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그가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은 오로지 글자 그 자체가 나타내는 내용만을 흡수하는 것이다. 글 이면에 놓인 작가의 의도나 책 속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감정 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결국 자일즈 역시 그의 인성에서 결여를 찾을 수 있으며 공감 능력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그에게도 공격적인 면이 내재되어 있었다면 그야말로 지적인 소시오패스가 되지 않았을까. 
다만 책에 지나치게 빠져들어 타인과 세상에 무관심해지는 잘못된 애서가의 경지에 이르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 작가의 책을 찾아보니 우리 나라에 8-9권 정도 출간된 것 같다. 훨씬 많은 작품이 쓰여진 걸로 아는데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가 되었으면 한다. 첫 문장의 강렬함을 책의 끝부분까지 일관되고 긴장감있게 끌고 갈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할뿐만 아니라 당대의 시대 상황이나 사회적 인식이 잘 담겨 있어 단순한 추리 소설 이상의 훌륭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도리안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떠올리게 할만큼 건조하고 짧막하게 끊어지는 문체가 소설의 분위기를 더 섬뜩하면서도 어딘가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다. 마치 그 소설을 다 읽기 전에는 우울한 로필드 홀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처럼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럼에도 빠른 전개 덕분에 지루하거나 늘어지게 만들진 않는다. 다만 긴장의 끈을 놓지 못 한채 유니스와 커버데일 가족을 위태롭게 바라볼 뿐. 


문득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 그 자체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무작정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매 권마다 그 안에 담겨진 주제와 의미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혹은 누군가와 토론을 하면서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할 것 같다. 책이 지식습득의 창이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창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독서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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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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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낼 일은 날마다 가볍게 찾아온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당연히 분노와 스트레스의 연속일뿐 아니라 심지어 집을 나서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도, 쇼핑을 하러 갔을 때도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처음 책을 집었을 때는 이런 세상 모든 종류의 화에 대한 그녀만의 철학이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마스다 미리는 마스다 미리다. 뭐랄까, 정말 읽는 이로 하여금 같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사건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이 일상에서 정말정말 소소하게 마주하는 마음 상하는 일들, 혹은 시크한 말 한마디로 내가 대신 제압해주고 싶은 일들이다. 그녀가 화내는 것마저 여려 보이고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아, 역시 그녀답다. 그녀에게 어떤 분노나 증오를 기대했던걸까. 그녀는 박명수나 이경규씨처럼 호통형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김구라씨처럼 시니컬하게 받아치는 형인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아, 기분이 좋지 않네' 하고 넘어갈 스타일인 듯 싶다. 그 언짢은 기분마저도 뿌루퉁한 얼굴로 '뭐야' 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한국인의 기분 나쁨 혹은 화 축에도 속하지 못 하는 수준의 일들로부터 출발한다. 애시당초 한의 정서를 가지고 태어나는 한국인들로서는 마스다 미리가 말하는 화나는 이야기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걸 가지고 뭔 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건지.. 아직 한참 부족해. 얘는 화에 대해서 공부 좀 더 해야겠어. 화 좀 더 낼 줄 알게 되면 다시 도전해보게.' 라고 말해주고 싶다. 난 정말 화나는 상황들을 기대했다고!!!!

어쨌든 정말 그녀다운 책이니까. 마음의 동요가 전혀 없이 이 에세이마저 아주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그늘 아래서 읽기 딱 좋다. 얇고 사랑스럽고 매 에피소드마다 귀여운 일상툰도 그려져 있다. 책을 읽는 동안은 나마저도 마스다 미리님의 순수함에 물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덮고 나면.. '화라는 건 이런거다!!' 라고 직접 그녀에게 시연해 주고 싶어지지만. 이것도 치기어린 질투때문일 것이다. 어딘지 느긋하고 편안해 보이는,그러면서도 때묻지 않은 느낌의 언니라서. 괜스레 부럽고 쌤이 나는 거겠지. 나는 때묻고 욱하는 분노형 인간이니까! 암튼, 뭉클에 대한 이야기는 기대해 보겠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스다님의 전문 분야겠지요. 하하!



화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울컥 치밀어오르는 화, 때려주고 싶을 정도의 화, 폭발직전의 화. (......)화뿐인 화는 구원받을 수 있다. 가장 괴로운 화는 `슬픔` 이 들어 있는 화다. -p. 6

증오와 슬픔이 함께가 된 분노는 갈 데가 없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p.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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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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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북유럽 작가들의 책 -오베, 창문밖으로 도망간 할배, 걸을수록 작아지는 할매 등등- 을 몇 번 접해본 결과 도무지 그들의 유머 코드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책장을 넘기기가 지렁이 기어가는 속도보다 느렸다. 행간의 의미는 커녕 문장 자체가 개개의 글자들로 눈으로 들어와 빠져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추리 소설을 굉장히 좋아함에도 요 네스뵈의 책은 한 번도 만나질 못 했다. 그렇게 유명한 스노우맨조차 궁금하면서도 펴보질 못 했는데, 이번에 출간된 아들은 이런 징크스를 깨기에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을 다 읽고난 지금도 좀 의아하다. 추리 소설의 묘미는 역시 범인을 예측하고, 트릭이 깨졌을 때의 쾌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연쇄 살인의 주인공이 소니 로푸스트 라는 점에서 출발하고, 밀실살인이나 서술트릭 같은 복잡한 장치도 없다. 그냥 복수의 대상을 찾아가 총을 쏜다. 나름 경찰들의 수사망에 오르지 않기 위해 범행 현장을 조작하긴 하지만 독자는 이미 알고 있다. 

'소니가 범인이지, 게다가 그냥 총으로 갈겼어. 살인의 동기는 복수이자 처벌이야' 

그럼에도 이 책은 사람을 푹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실제로 지하철을 타고 가다 몇 번이나 내려야 할 역을 놓쳤다. 과연 소니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쌍둥이나 경찰청의 첩자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소니라는 캐릭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때문인 것 같다. 그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몰입해서 들여다 보게 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느껴지는 소니의 이야기 속에는 사랑과 우정, 배신, 음모, 정의, 욕망 등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가 적절하게 녹아 들어가 있다. 범죄의 요소만 뺀다면 책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모든 등장 인물들의 삶과 그 속에 존재하는 고민들은 우리가 현실에서 맞딱드리게 되는 바로 그것들이다. 그런 평범함과 현실성이 우리를 소니의 인생 깊숙이 빠져들도록 만든다. 

특히 소니가 복수를 시작한 이유가 어느 정도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소니의 아버지가 경찰청의 첩자라는 이유로 자살했지만 그것은 조작된 사실이며 아버지는 첩자와 범죄 조직의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횡포 앞에서 무력하게 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명예 회복과 법망을 피해간 범죄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살인을 시작한다. 사실 돈과 권력을 이용해 온갖 범죄를 저지른 인간들에게, 심지어 그 죄를 소니가 뒤집어 쓰고 옥살이를 대신 했기에 살인이란 표현은 굳이 쓰고 싶지가 않다.  물론 법을 통하지 않은 개인적인 처벌은 옳지 않지만, 워낙 유전무죄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서 소니에게 동조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지 알 수 없고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는 법때문에 괴로운 것은 결국 소시민들이다. 소니는 그들의 억울함을 대변해주고 울분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옳지 않더라 하더라도 의적 홍길동을 응원하던 마음과 같다고 해야할까! 더구나 명쾌하게 글로써 설명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다 보면 소니에게는 그만큼의 어떤 힘이랄까, 매력이 있다. 어쩐지 도와주고 싶고, 그의 행복을 바라게 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면이 있다. 이 작가 정말 캐릭터를 만드는 힘이 대단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 흡입력이 있고 나름의 반전이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어쩐지 친절한 금자씨를 떠올리게 한다. 감옥 안의 성자이자 복수의 아이콘, 그리고 그를 돕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소니는 그녀와 몹시 닮아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나니 친절한 금자씨와 같은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다. 잔혹하지만 애잔하고 슬픈 영화! 그 먹먹한 여운이 오래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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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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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는 명확하게 딱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좋았다가나빠질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동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탓에 늘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그런 모호함이 참 싫고 힘들다. 너와 나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해 상처받기 일쑤고, 어중간한 관계는 내가 먼저 물러서는 까닭에 오해도 쉽게 받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인간 관계에 서툰 내 잘못이지만 어쩔 수 없이 누가 봐도 분명한 관계를 선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고독하다고 느끼고, 어디에 가든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규정하게 되나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출발이 순조롭지 못 했다. 레오와 에미가 이메일을 통해 인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자못 흥미로웠다. 하지만 남녀 사이에 우정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 자꾸만 썸을 타는 분위기로 나아가는 것이 어쩐지 불편했다. 레오는 싱글남이지만 질척거리는 구여친이 있었고, 에미는 유부녀였기 때문이다. 다소 위험할 수 있는 관계인지라 에미에게 자꾸만 빠져드는 레오는 선을 그으려 하지만 그 때마다 에미의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 끊임없이 떡밥을 던지며 레오라는 물고기를 낚시하는 여자처럼 보였다. 본인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레오와의 관계는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한 여자로서의 에미로 존재하게 만들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참으로 뻔뻔해보였다.

그렇다. 나는 생각보다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분노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인기 없는 여자의 질투어린 시선이라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겠지만은, 단언컨대 나도 뭇 남성들에게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일명 불륜, 가볍게는 문어발식 경영 자체가 싫은 것이다. 왜 곁에 있는 이에게 만족하지 못 하고 다른 이에게 기웃거리는 것인지, 게다가 자기가 쥔 것은 버리기 싫으면서 상대방은 꽉 붙잡아두려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생각은 어디에서 근거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러 사람이 상처 받고 괴로워 하는 것은 개의치 않는 것인지. 몹시 편협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소위 보험 두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자꾸만 에미에게 겹쳐져서, 전혀 레오와 에미의 대화가 위트있고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오랫동안 그 누구와도, 당신과 그랬던 것처럼 격렬하게 감정을 나눠본 적이 없어요. (......) '현실의 삶' 에서는 무난하게 버텨나가려면 끊임없이 자기 감정과 타협을 해야 해요. (......)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주위 사람들에게 맞추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량을 베풀고, 일상에서 오만 가지 자질구레한 역할을 떠맡고, 구조 전체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려면 균형을 잘 답아 평형을 유지해야 해요. 저 또한 그 구조의 일부니까요. 그런데 레오, 당신을 대할 때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꾸밈없이 드러내는 게 조금도 망설여지지 않아요. (......) 실제 에미가 현실에서 어떤 사람이든 간에 메일에서의 에미는 굳이 착하게 굴려 애쓰지 않고 평소에 억눌러왔던 약점들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거예요. 자기가 변덕 보따리든 모순덩어리든, 그걸 받아줄만한 사람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러내도 괜찮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p. 169~170

에미의 이 진솔한 고백을 읽고난 뒤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여자는 단순히 자신의 여성적인 매력을 확인하기 위해 레오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꾸밈없이 드러냈을 때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정, 사랑 같은 특정한 감정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더 고차원적인 교감을 나누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소울메이트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항상 연인이나 부부의 형태는 아니니까 말이다. 물론 이 둘의 결말은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한 것이었으나 처음 책을 읽을 때만큼의 반감이나 분노는 없었다. 레오는 이미 에미에게 온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고, 에미는 배우자와 자녀들 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로 인해 자신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한 여자라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이니까. 언젠가는 그녀 자신도 레오를 사랑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매우 현명한 방법으로 결말을 짓는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달려와 놓고선 두 사람 사이의 어떤 끝이 구체화될 때 갑작스런 문장으로 독자의 심장을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든다. 나는 정말 어안이 벙벙해서 마지막 장을 읽고 또 읽었으며 내가 잠에 취해 몽롱한 상태인 것인지 수차례 확인해야했다. 너무 뻔한 결말을 애타게 바라던 것은 정작 나였구나, 어느새 레오와 에미에게 깊이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 깊이만큼의 황망함과 참담함을 느껴야 했던 것이리라. 이러한 끝맺음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서로가 주고 받는 이메일만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고 그 안에 감정까지 전달한다는 것은 참 매력적이고 대단한 일이다. 정말 독특하고 흡입력 있는 소설인지라 레오와 에미의 후속작이 궁금하면서도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이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마음과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나아갔을까 하는 궁금함이 공존한다. 한 편으로는 탁구공처럼 통통 튀는 이들의 이메일 대화가 그립고 또 한 번 사랑의 열병을 알으며 가슴앓이를 시켜줄 것이 기대가 된다. '일곱번째 파도' 라는 작품이 후속작이라는데, 언제쯤 집어 올릴지 모르겠다. 아직은 이 충격의 여운을 좀 더 느끼고 싶다.

가깝다는 것은 거리를 줄이는 게 아니라 거리를 극복하는 거예요. 긴장이라는 것은 완전함에 하자가 있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완전함을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서 생기는 거예요. -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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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ㅣ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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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이 질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들을 집요하게 괴롭혀온 문제가 있을까. 인간의 역사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며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깨달음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도 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질문을 던져봤을 것이다. 인생의 큰 실패나 상실의 아픔을 겪었을 때는 특히나 더 강렬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개인은 각자 다른 답을 구하게 된다. 누군가는 신의 존재를 열렬히 지지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신은 없다, 단지 인간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나의 경우 오랫동안 신을 믿어왔고, 종교에 귀의하고자 생각해왔다. 아주 선량하고 존경하는 분을 잃은 뒤로 무신론자가 되어버렸지만.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비난하고 원망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세인트영멘이라는 일본 만화책을 보았다. 예수와 붓다가 일본으로 휴가를 온 내용으로 성경과 불경 속 내용들을 과거의 일화로 퍽 자세히 그려냈고, 현대에 적응하는 모습을 굉장히 재치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한참을 깔깔대며 만화책을 보다보니 정말 신이 이런 모습이라면 존재하는 게 좋겠다 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인간의 삶을 조종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고 그들을 지켜보며 품어주는 초월적인 존재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연장선 상에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책 속의 아벨처럼 익살스럽고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한 허점을 가진 신이 존재한다면 기꺼이 신을 믿을 것이다. 오히려 열렬히 사랑할 것 같다. 불만스러운 현재의 세상이 수긍이 가고, 또 고된 세상살이에 위안이 되어줄 존재가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 신도 결국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라면, 단지 인간들이기때문에 그들의 삶에 관여를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거라면, 그럼에도 인간의 본성을 믿고 사랑해 준다면 신을 더 많이 사랑하고 의지하게 되지 않을까. 마치 집안의 버팀목인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그저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을 얻고 힘을 내어 살아가니까. 결국 우리가 신은 전지전능 하다고 믿기때문에 원망 또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지 않는지, 세상이 이렇게 틀린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내버려 두는 건지 끊임없이 불평을 쏟아낼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오, 신의 존재 의미인 것 같다. 우리를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살게 해주는 궁극적인 롤모델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신과 종교인들의 역할일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 행복, 우정과 같은 가치들을 추구하고 감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굉장히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판단은 결국 각자의 몫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다면 막연하게나마 신이 존재했으면 하고 바라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주거나 내 기도를 모두 들어주는 신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만큼 희망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책 속에서 야콥이 만난 서커스 광대 아벨이 정말 신이었는지, 아니면 신을 사칭한 망상장애자였는지는 책을 읽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분명한 것은 아벨이 심리 치료를 받고자 야콥을 찾아갔지만 결국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 벼랑 끝에 몰린 야콥을 구원해주는 것은 아벨이다. 마지막 야콥의 고백처럼 신 바로 옆에 있던 무신론자는 결국 신이 없는 유신론자가 되고 만다. 그런 이가 정말 신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랴. 세상의 어떤 지식인들보다 현명하고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사람인데. 책을 읽으면서 야콥의 입장이 되어 나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 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지 자연스레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빠른 전개와 재치있는 입담 속에 어렵고고 중요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가의 필력이 놀랍다. 깔깔대며 정신없이 읽다 보면 뭔가 묵직하고 뭉클한 감정이 가슴을 꽉 채운다. 문득 독일어를 하지 못 하는 내 자신이 다소 원망스러워진다. 안타깝게도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은 우리 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되질 않았다. 원서로 만나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런지.. 다른 책들도 번역되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세상엔 아직 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 천재적인 서커스 곡예사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록 힘은 없디만 선량한 신이 있다는 건 신이 아예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p. 280


감정만큼 구체적이고 생생한 건 없소. 그래서 사람들이 지식 아닌 사랑과 행복, 우정 같은 걸 동경하는 거 아니겠소? -p. 273

순간 나는 비록 가난하고 실패한 삶이지만 내가 실제 존재하는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에 행복의 물결이 온몸으로 사라르 퍼지는 것을 느낀다. -p.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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