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동네에는 꽤 널찍한 공간을 자랑하는 오래된 동네 책방이 있었다. 중고 책을 함께 파는 곳이라 겉은 허름해 보였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종류의 책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높고 멋진 책장이 넓은 책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그곳이 엄청난 보물섬처럼 느껴졌다. 말끔한 새 책도 좋았지만 오래된 중고 책에서 나는 내음이 좋았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보물 같은 책을 한 권씩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빛바랜 추리 소설이나 산문집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우아함이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만 가면 흥미롭고 귀여운 학용품이 가득한 대형 서점도 생겼지만, 문제집이나 책을 사러 갈 때는 꼭 이 책방에 가곤 했다.

나는 이 책방에 머무르는 동안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이 좋았다. 특히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현재인지, 과거 혹은 미래의 어느 시점인지 알 수 없게 되는 몽환적인 기분이 들 때 책방은 더없이 신비로운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기분이 정말 좋아서, 너무나 마음이 느긋한 날이라, 혹은 막연한 미래가 너무나 두려워서, 현실의 짐이 버거워서... 여러 가지 이유로 책방을 찾았다. 어떤 마음이든 그저 그 책방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사실 책방에 오랜 시간 머물며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는 게 싫으셨을 수도 있는데, 주인 내외분은 어떤 말씀도 하신 적이 없다. 그저 묵묵히 책을 정리하거나 책방 일을 하시며 나에게 무관심한 듯 행동해주셨는데, 낯가림도 심한 데다가 이 책, 저 책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배려였다.

그때부터 막연히 주인 내외분의 자녀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언제든 편안하게 책방에 찾아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언젠가는 그 책방을 물려받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우리 부모님이 책방을 하지 않으시는 게 내심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하다못해 도서 대여점이라도 하시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에 뾰로통 하기도 했고. 그때는 확실히 동네 책방 경영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를 읽고 나니 책방 지기가 된다는 것은 어떤 신념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개의 일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동네 책방 운영이야말로 보통의 각오와 의지만으로는 유지하기 힘든 일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형 서점처럼 물건이 많지도 않고, 상대적으로 입지가 불편한 동네 책방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책과 책방에 대한 진심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연대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을 생각해 보자. 분명 내 마음인데도 그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는 일이 어렵고, 심지어 상대가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천운에 가깝다. 어찌 보면 책방지기는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늘 그런 고백을 해야 하는 셈이다. 책과 책방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고바야시 서점의 유미코님은 매우 존경스럽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동네 책방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꿔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 마음을 다했기 때문이다. 역시 유미코님의 그런 의지와 노력이 올해로 개점 69년을 맞은 고바야시 서점의 성공 비결이 아닌가 싶다. 책과 책방에 대한 진입 문턱을 낮출 수 있도록 즐겁고 다양한 이벤트로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든 유미코님의 참신한 아이디어도 주요했던 것 같고!

새삼 지금, 이 순간에도 동네 책방을 지켜가는 분들과 그곳을 꾸준히 찾아주는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몽글몽글 솟아오른다. 안타깝게도 7년간의 타지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우리 동네의 그 책방 자리에는 카페와 음식점이 자리해 있었다. 이북이 넘쳐 나고 책을 읽는 것 보다는 유튜브를 보는 것에 더 익숙한 시대에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주신 주인 내외 분께 직접 감사한 마음을 전하지 못해 아쉽다. 역시 곁에 있을 때 아낌없이 마음을 전해야 하나 보다. 앞으로 동네 책방에 들를 때 마다 꼭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려야겠다.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책방이라는 공간을 지켜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부디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고바야시 서점처럼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주는 책방이 많아지길 소망하며, 우리 동네 책방부터 문턱이 닳도록 드나 들어 봐야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10-07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