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화를 낼 일은 날마다 가볍게 찾아온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당연히 분노와 스트레스의 연속일뿐 아니라 심지어 집을 나서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도, 쇼핑을 하러 갔을 때도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처음 책을 집었을 때는 이런 세상 모든 종류의 화에 대한 그녀만의 철학이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마스다 미리는 마스다 미리다. 뭐랄까, 정말 읽는 이로 하여금 같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사건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이 일상에서 정말정말 소소하게 마주하는 마음 상하는 일들, 혹은 시크한 말 한마디로 내가 대신 제압해주고 싶은 일들이다. 그녀가 화내는 것마저 여려 보이고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아, 역시 그녀답다. 그녀에게 어떤 분노나 증오를 기대했던걸까. 그녀는 박명수나 이경규씨처럼 호통형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김구라씨처럼 시니컬하게 받아치는 형인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아, 기분이 좋지 않네' 하고 넘어갈 스타일인 듯 싶다. 그 언짢은 기분마저도 뿌루퉁한 얼굴로 '뭐야' 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한국인의 기분 나쁨 혹은 화 축에도 속하지 못 하는 수준의 일들로부터 출발한다. 애시당초 한의 정서를 가지고 태어나는 한국인들로서는 마스다 미리가 말하는 화나는 이야기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걸 가지고 뭔 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건지.. 아직 한참 부족해. 얘는 화에 대해서 공부 좀 더 해야겠어. 화 좀 더 낼 줄 알게 되면 다시 도전해보게.' 라고 말해주고 싶다. 난 정말 화나는 상황들을 기대했다고!!!!

어쨌든 정말 그녀다운 책이니까. 마음의 동요가 전혀 없이 이 에세이마저 아주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그늘 아래서 읽기 딱 좋다. 얇고 사랑스럽고 매 에피소드마다 귀여운 일상툰도 그려져 있다. 책을 읽는 동안은 나마저도 마스다 미리님의 순수함에 물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덮고 나면.. '화라는 건 이런거다!!' 라고 직접 그녀에게 시연해 주고 싶어지지만. 이것도 치기어린 질투때문일 것이다. 어딘지 느긋하고 편안해 보이는,그러면서도 때묻지 않은 느낌의 언니라서. 괜스레 부럽고 쌤이 나는 거겠지. 나는 때묻고 욱하는 분노형 인간이니까! 암튼, 뭉클에 대한 이야기는 기대해 보겠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스다님의 전문 분야겠지요. 하하!



화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울컥 치밀어오르는 화, 때려주고 싶을 정도의 화, 폭발직전의 화. (......)화뿐인 화는 구원받을 수 있다. 가장 괴로운 화는 `슬픔` 이 들어 있는 화다. -p. 6

증오와 슬픔이 함께가 된 분노는 갈 데가 없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p.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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