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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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이 질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들을 집요하게 괴롭혀온 문제가 있을까. 인간의 역사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며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깨달음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도 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질문을 던져봤을 것이다. 인생의 큰 실패나 상실의 아픔을 겪었을 때는 특히나 더 강렬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개인은 각자 다른 답을 구하게 된다. 누군가는 신의 존재를 열렬히 지지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신은 없다, 단지 인간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나의 경우 오랫동안 신을 믿어왔고, 종교에 귀의하고자 생각해왔다. 아주 선량하고 존경하는 분을 잃은 뒤로 무신론자가 되어버렸지만.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비난하고 원망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세인트영멘이라는 일본 만화책을 보았다. 예수와 붓다가 일본으로 휴가를 온 내용으로 성경과 불경 속 내용들을 과거의 일화로 퍽 자세히 그려냈고, 현대에 적응하는 모습을 굉장히 재치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한참을 깔깔대며 만화책을 보다보니 정말 신이 이런 모습이라면 존재하는 게 좋겠다 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인간의 삶을 조종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고 그들을 지켜보며 품어주는 초월적인 존재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연장선 상에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책 속의 아벨처럼 익살스럽고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한 허점을 가진 신이 존재한다면 기꺼이 신을 믿을 것이다. 오히려 열렬히 사랑할 것 같다. 불만스러운 현재의 세상이 수긍이 가고, 또 고된 세상살이에 위안이 되어줄 존재가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 신도 결국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라면, 단지 인간들이기때문에 그들의 삶에 관여를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거라면, 그럼에도 인간의 본성을 믿고 사랑해 준다면 신을 더 많이 사랑하고 의지하게 되지 않을까. 마치 집안의 버팀목인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그저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을 얻고 힘을 내어 살아가니까. 결국 우리가 신은 전지전능 하다고 믿기때문에 원망 또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지 않는지, 세상이 이렇게 틀린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내버려 두는 건지 끊임없이 불평을 쏟아낼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오, 신의 존재 의미인 것 같다. 우리를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살게 해주는 궁극적인 롤모델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신과 종교인들의 역할일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 행복, 우정과 같은 가치들을 추구하고 감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굉장히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판단은 결국 각자의 몫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다면 막연하게나마 신이 존재했으면 하고 바라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주거나 내 기도를 모두 들어주는 신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만큼 희망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책 속에서 야콥이 만난 서커스 광대 아벨이 정말 신이었는지, 아니면 신을 사칭한 망상장애자였는지는 책을 읽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분명한 것은 아벨이 심리 치료를 받고자 야콥을 찾아갔지만 결국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 벼랑 끝에 몰린 야콥을 구원해주는 것은 아벨이다. 마지막 야콥의 고백처럼 신 바로 옆에 있던 무신론자는 결국 신이 없는 유신론자가 되고 만다. 그런 이가 정말 신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랴. 세상의 어떤 지식인들보다 현명하고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사람인데. 책을 읽으면서 야콥의 입장이 되어 나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 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지 자연스레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빠른 전개와 재치있는 입담 속에 어렵고고 중요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가의 필력이 놀랍다. 깔깔대며 정신없이 읽다 보면 뭔가 묵직하고 뭉클한 감정이 가슴을 꽉 채운다. 문득 독일어를 하지 못 하는 내 자신이 다소 원망스러워진다. 안타깝게도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은 우리 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되질 않았다. 원서로 만나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런지.. 다른 책들도 번역되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세상엔 아직 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 천재적인 서커스 곡예사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록 힘은 없디만 선량한 신이 있다는 건 신이 아예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p. 280


감정만큼 구체적이고 생생한 건 없소. 그래서 사람들이 지식 아닌 사랑과 행복, 우정 같은 걸 동경하는 거 아니겠소? -p. 273

순간 나는 비록 가난하고 실패한 삶이지만 내가 실제 존재하는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에 행복의 물결이 온몸으로 사라르 퍼지는 것을 느낀다. -p.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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