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료되었습니다 - 모든 미해결 사건이 풀리는 세상,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작
박하익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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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 선암여고 탐정단을 정말 깔.깔 거리면서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그녀의 전작이 궁금해졌다. 추리 스릴러 단편선을 제외하면 2012년 출간 된 '종료되었습니다' 가 있었다. 어째 음산한 느낌의 표지에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흡입력 있는 전개와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인 진홍이 7년 전에 살해된 어머니 명숙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진홍의 어머니는 눈앞에서 오토바이를 탄 남자에게 수차례 칼에 찔려 살해 당했었다. 그런 어머니가 나타나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이전과 같이 따스한 말을 건넨다. 이는 몇 년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SSS 혹은 RVP 현상이었다. 어떠한 메커니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잔혹한 범죄의 희생자가 되살아나 범죄자를 찾아가 죽이고 소멸하는 일을 일컫는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어머니가 이상해진다. 범인은 분명 오토바이를 탄 남자였고 잡히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머니가 진홍을 죽이려고 달려든 것이다. 과연 어머니가 예외적인 오류를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진홍이 사주한 일인걸까? 억울함을 주장하는 진홍에게는 7년 전 사건 외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건지, 고도의 지능을 갖춘 싸이코패스인지, 혹은 범죄 사실을 기억하지 못 하는 다중인격장애인건지... 살인 사건의 진범도 궁금하지만 진홍도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듯 끝까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가독성이 정말 끝내준다. 사실 소설의 중반을 지나면서 추리 요소가 가미된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너무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좀 실망스러웠지만, 역시나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떤 결말로 논리적으로 끝맺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아직 이 작가의 책을 세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 분 책을 참 맛깔나게 쓰는 재주가 있다. 삐딱하게 보면 유치할 수 있는 소재들을 가지고도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잘 전개해 나가는 것은 그녀의 큰 장점이자 재능인 것 같다. 


인간인 범죄자가 있는가 하면 인간의 탈을 쓴 범죄자가 있어. 관심과 지원을 해주면 개심하고 갱생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아무리 시간을 들이고 인력을 투입해도 불가능한 부류가 있어. 처음부터 인간으로서의 어떤 것이 결여된 생물체들이야. 타인이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걸 몰라. 남의 입장을 생각할 수 없어. 내 이익이나 쾌락에 눈이 멀어서 다른 사람들을 그것들보다 낮춰 보지. 


씻으려야 씻을 수 없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고 극복되지도 않을 고통을 평생 지고 살아야 했다. 영혼에 아로새겨진 아픔은 지옥으로 통하는 창(窓)처럼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끌어들였다. 해결할 길 없는 분노와 살의, 우울감과 무력감, 그리고 영원한 자책까지.


실질적인 사형 제도가 폐지된 현대 사회에서 교도소에서 일생을 보내는 것이 범죄자들에게 진정한 징벌로 작용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을 수감하는 것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유가 박탈된 상황에서 반성할 시간을 갖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그들의 교화, 그리고 재사회화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은 분명히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무언가가 결여된 사람들, 즉 갱생의 여지가 없는 범죄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일반적인 상식과 논리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싸이코패스와 같은 범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범죄자의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그들은 되려 편안한 교도소 라이프를 즐기는 게 된 것 같아 화가 난다. 삼시세끼 끼니를 해결 못 하고 따뜻한 잠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헤매이는 어려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하면 죄를 지은 무게에 비해 그들은 너무 안락한 삶을 보장받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혈세가 그렇게 낭비되는 것이 너무나 아깝다. 차라리 그 돈으로 희생자 가족들의 상담 치료나 복지를 위해 쓰이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범죄의 잔혹성과 그 형벌에만 집중할 뿐 후에 남겨진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관심은 너무나 부족한 현실이다.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도 해주지 않은 채 너그러운 아량과 용서를 바라는 게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SSS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처벌인 것 같다.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고, 무엇보다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죄책감과 공포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교화와 벌의 목적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사형 집행을 할 수 없다면 이러한 방법이 하루 빨리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 꿈같은 방법이고, 또 그 와중에 범죄자의 인권을 운운하며 반대하는 무리들이 생기겠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점점 멀어진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흉흉한 일들이 시시때때로 일어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삭막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크든 작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두려워 인간이 악하다고 믿어버리는 것이 자신을 방어적으로 만들어줘서 훨씬 안전하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무소유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상 인간은 언제나, 누구나 악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늘 두렵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지(無知)와 무구(無垢) 일지도 모른다. 태초의 낙원에서 인간을 타락시킨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이었듯 무구함이야말로 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몰라야 할 것을 몰라야 인간이다. 범죄성과 악마성, 그리고 수성(獸性)과 대면해 버리면 영혼은 순식간에 변질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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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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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학원물은 그닥 좋아하질 않는다. 약간 오그라드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해야하나. 비현실적으로 성숙하거나 명랑하거나, 어쩐지 촌스럽고 교육 드라마 느낌이 물씬 풍기는 대사들 까지 더해져 실망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마치 고등학생 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썰로 풀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선암여고 탐정단 소녀들이 어느 고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웰매이드 캐릭터들이고 , 책 속에 등장하는 문제들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 무한 경쟁 시스템과 각종 사교육의 감옥 아래 그들의 억눌린 감정은 분출될 곳을 찾지 못 한다. 남자 아이들과 달리 어릴 때부터 사회적으로 강요 받아온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은 그 시기에 느끼게 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표출하기보다 억누를 것을 요구한다. 여자들도 서로 미워하고, 경쟁하고 건강한 갈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게다가 어른들은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옆의 친구보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어떠한 감정이든 느끼고,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사치로 느껴지게 만든다. 그래서 문제는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더 파괴적이고 잔혹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눈치챌 수 없도록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 책은 여고생들의 이러한 심리 상태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함께 입시 지옥과 왕따 문제, 청소년 출산 등의 문제들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라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 허우적 거릴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의 심리와 생각들이 잘 드러난다. 때로는 교활하고, 충동적이고, 어리석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직 때묻지 않아 순수한 그런 마음과 생각들. 그러면서도 통통 튀고 엉뚱한 매력을 가진 탐정단 여고생들을 등장시켜 유머와 발랄함을 적절하게 배치시켰다. 소소한 일상의 미스테리같은 사건들이지만 미행과 잠복, 여학생들의 수다 커뮤니티를 통해 엄청난 정보를 수집하고, 번뜩이는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꽤 신기하고 통쾌하다! 꼭 코난처럼 첨단 장비나 천재적인 지능으로 연쇄 살인범을 잡아내는 큰 스케일이 아니더라도 나름의 쫀득쫀득한 긴장감과 스릴이 있다. 읽다 보면 뒷장이 궁금해서 자꾸만 급한 마음으로 넘기게 되는 의외의 매력이 생긴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평범한(?) 모범생의 모습인 채율의 다사다난 선암여고 적응기도 흥미롭다. 천재 오빠의 그늘에 가려 자존감을 상실한 채율이 가족이 아닌 이들을 통해 소속감이라는 것을 느끼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뭉클하게 다가온다.

어쩜 이렇게 다들 하나같이 독특한 성격을 지녔나 몰라 싶다가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와 동아리 친구들도 이쯤 가는 또라이들이였었던 것 같다. 모두들 학원과 과외로 바쁠 때 우리들은 골방 과학실에 모여 나름 진지한 실험과 토론을 했었다. 루미놀 발광 실험을 하는데 철분 시약이 없으니 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떨어뜨리고, 물로켓 발사 대회에 나가 낙하산 대신 검은 비닐봉지를 넣어 놓고는 발사 후 초라하게 펴지는 검은 비닐을 보며 꺄르르 웃어대기 바빴다. 남들은 장관상을 노리고 온 대회에 우리들은 도시락 까먹기와 추억 만들기 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여름에는 깔끔떨며 대청소를 시도하다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수도꼭지를 뽑아 건물을 물바다로 만들고, 겨울에는 반응성을 상실한 나트륨을 눈 속에 파묻고 우리만의 불꽃놀이를 하기도 했다. 꼴에 과학반이라고 가장 아끼는 것은 우리들이 라면 끓여 먹는 비커와 삼발이, 알코올 램프였다.

책을 읽고나니 절로 고등학교 때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 땐 참 많이 웃고 발랄했었는데 라는 아쉬운 감정도 들고. 무엇보다 공부하는 기계로 살지 않게 해준 동아리 친구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대학도 다들 가고, 지금은 각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산다. 절대 과학 공.부.는 안 할거라고 했던 우리들이지만 다섯 중에 셋은 자연과학과 천체물리를 하며 가방끈을 길게 늘여가고 있으니 이 또한 웃긴 일이다.

좀 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꿈도, 희망도 없이 대학 문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나이에만 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과 추억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사회를 만들어줘야할 어른이 되고 나니 마음이 더 무겁고 책임감을 느낀다. 책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은 학교에 상주하는 상담 선생님이 계시다는 점이었다. 막상 전문 상담 선생님이 학교에 상주한다 하더라도 주변의 평판과 생활기록부에 대한 걱정때문에 이용률은 저조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댈 곳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 문을 한 번 두드려 볼까하는 희망이 존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학교나 혹은 지역 사회에 청소년들의 고민에 귀기울여 주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무엇보다 우리의 교육 환경이 개선되고 그 지향점이 달라지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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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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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참 허지웅스럽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각종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모습과는 매우 닮아있다. 특히 여과없이 돌직구를 무심한 표정으로 마구 날리는 솔직함과 시크함이 그렇다.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할 정도로 뚜렷하게 자기 견해를 피력하는 톡톡 쏘는 말투가 그의 글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공하지 않는 삶은 뒤처지는 삶이고 뒤처지는 삶은 불행한 삶이니 지금 당장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하라고 외칩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은 노력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말합니다. 그 희박한 일말의 가능성은 너희도 언제든지 tv 속의 저 화려한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고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합니다. -p. 8 작가의 말

근거없는 종교적 낙관으로 삶을 낭비하라며 주변에, 특히 젊은 세대에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약과도 같은 낙관은,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찰나의 경우로 존재하는 일말의 어떤 아름다움들은 이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드러날 수 있습니다. -p. 9 작가의 말

모두에게 자기 과거는 연민과 애증의 대상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자기 과거를 신화화하는 사람은 꼰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지나고 나니 너무 큰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 -p. 118


방송에 나와 너무 냉소적으로 말을 하는 탓에 사람이 정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 싫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책 속에 쓰여진 그의 문장들은 좋다. 심지어 그가 책 속에서 내 눈을 바라보며 연신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똑같은 어투임에도 말이다. 이 순간만큼은 K팝 스타에서 박진영이 말할 때 목소리랑 노래할 때 목소리랑 같은 사람이 좋다고 말하는 심정이 격하게 공감이 간다. 소위 글 좀 쓴다는 지식인들 특유의 지적 허세나 가식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깔끔하게 핵심만을 이야기하는 그 솔직함! -적어도 매체에서 그가 했던 언행들과 글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일치하는 듯하다.- 애매모호한 은유나 어려운 단어의 나열없이 읽기 쉽게 쓰여진 점도 매력적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참 별 볼 일 없는 농담 한 줌이라는 걸, 별 볼 일 없는 무대 위의 별 볼 일 없는 만담가가 내뱉은 그저 콩트 같은 것이라는 걸, 그러니까, 아주 가끔 깨닫고 대개 까먹는다. -p. 17

남의 독한 사정도 듣다보면 결국 농담 같은 것이다. (......) 내가 나중에 저런 독한 일을 겪게 되거나, 그런 일로 괴물이 되고 나면, 내 불우한 사정 이야기로 갑수씨나 웃겨주어야겠다. 갑수씨에게는 듣기 재미있는 농담일 것이다. 웃는 갑수씨를 보면 나도 수월해질 것이다. 산다는 것 말이다. -p. 20


이 책은 마녀사냥의 허지웅 그 자체이다. 방송에서 하지 못 했던 수위 높은 이야기들을 이 
책을 통해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는 것 같다.  책의 내용은 심플하다. 지웅씨의 지인 중 한 사람인 김갑수씨와의 만남과 대화를 들려준다. 갑수씨의 다사다난했던 연애담들이 쏟아지는데 이야기 자체가 범상치 않다. 주로는 갑수씨의 성생활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정치, 경제 어떤 이야기로 시작해도 결국엔 갑수씨의 추억담과 연애담으로 마무리 된다. 노골적인 묘사가 마구 난무하는 탓에 낯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자꾸 책을 숨기며 읽을 수 밖에 없다. -왠만큼 남의 시선에 무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공개된 장소에서의 독서는 지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역시 마녀사냥 mc답게 위트있게 표현하긴 했다. 예를 들어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되는 빠르기로 벌어진 일 같은 표현들은 재치만점이었다. 하지만 좀 더 신동엽스럽게 아슬아슬한 수위의 선을 지켜 주었다면 덜 부끄럽게 읽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세상에는 평소의 자연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장소라는 것이 존재한다. 버뮤다 삼각지대, 신촌 모텔촌, 그리고 맘이 떠난 애인의 집 앞. 맘이 떠난 애인의 집 앞에서 지구의 자전주기는 미칠 듯이 더디어진다. -p. 46

아니 여보시오 의사양반 내가 고자라니 내가 고자라니! -p. 111


남성들의 모든 판타지를 경험한 듯한 갑수씨의 이야기는 남자들 술자리에서 오가는 농담처럼 들린다.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하지만 그 이면엔 사랑과 이별에 대처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한 인간의 서글픈 성장통(?)이 담겨 있다. 스스로 자기 정체에 대해 무지하고, 실재하는 자신과 생각하는 자신이 달랐던 사람은 갑수씨 뿐만이 아니다. 우리들 역시 그러한 과정을 지나쳐 왔거나 지금 겪고 있는 중이다. 그가 무수한 연애에 실패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처럼 우리들이 실패했던 연애의 이유도 그러하다.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서로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본능에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흘러가는 방향을 객관적으로, 사실적으로 바라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자기 보호 본능때문에 본인을 사랑의 약자로 여기며 상대방에 대한 오기억을 만들어 내 비난의 화살을 쏘아 대고.. 반드시 지속되어야 할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관계의 변화 이유를 받아들이질 못 한다. 사랑이 식은 상대방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가여워 하다 끝을 본다. 그런 면에서 갑수씨가 나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굉장히 솔직하고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에 적극적으로 부딪혀 왔다는 점이다. 덕분에 매번의 연애를 떠올려 보고 반성 하면서 연애란 무엇인지, 우리는 왜 연애를 하는지 그 난제에 대한 답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번번히 상처와 실패를 반복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져드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그 순간만큼은 천국 그 자체임을 알기 때문에 유전자에 새겨진 관성처럼 우리는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다. 갑수씨를 통해 보여진 사랑의 추한 이면들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사랑에 대한 환상은 품지 않을테니. 


저는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거짓 낙관 없이도 세상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거짓 낙관은 궁극적으로 삶을 혐오하게 만들지만, 혐오스러운 세상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그 추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신분 상승이 아닌 더 나은 삶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건 동물의 본능이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의 오래된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p. 10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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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탓이야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1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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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어딘가 부족한 듯 보이는 해결사들의 등장! 한 명은 어설픈 느낌의 중년 형사 고바야시 순타로 경위, 다른 한 명은 무심함으로 무장한 흥신소 직원 하무라 아키라. 형사는 제쳐놓고, 아키라의 경우 탐정이라고 하기에는 그간의 추리 소설에서 활약했던 명탐정들의 활약과 너무 격차가 크고, 일반인이라고 하기엔 빈번하게 살인에 연루되는 여성이다. 트러블들을 끌어 모으는 알 수 없는 능력때문에 여러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호기심과 정에 이끌려 진상을 밝혀낸다. 그녀는 이미 멸종되었을거라 여겨지는 프리터의 후예다. 더 이상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 하면 다른 직업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섭렵한 능력자다. 쿨한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다양한 업무를 배울 수 있어 편리하지만 특출한 장점이 없는게 단점이지만. 중년 형사 고바야시도 독특함에 있어선 아키라에게 지지 않는다. 칠칠치 못하게 늘어뜨린 넥타이를 하고 딸에게 빌린 분홍색 세일러문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매력을 지닌 두 캐릭터 덕분에 사건 역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벌어진다. 살인을 목적으로 꾸며진 치밀한 무대 장치 같은 것은 없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한 트릭 또한 없다. 그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으로 살인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잔혹한 살인 현장이 묘사되는 일도 없고, 작가와의 두뇌 싸움을 할 필요도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읽기 좋은 추리 소설이다.

하지만!!
가볍게 읽히는 단편집임에도 매 편 끝까지 읽고나면 개운치 않은 뒷맛이 있다. 무언가 마음을 짓누르는 묵직한 여운과 말로 설명하기 힘든 찝찝한 앙금이 남는단 말이다. 왜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는가, 범인은 주인공과 어떠한 관계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살인의 동기, 범인의 정체 그 자체가 충격적이다. 피해자에게 굉장히 가까운 친구나 가족, 직장 동료 등이 사건을 저지른다.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어, 혹은 서로가 전혀 눈치채지 못 한 채 생겨난 작은 생채기가 악의로 변질되어 살인의 동기로 작용한다. 생각해 보면 가족이나 친한 친구로부터 받은 상처는 오랫동안 남기 마련이다. 오히려 너무나 가깝고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겨줄 수 있다. 게다가 어른이 되면서 학력, 직업, 경제력, 배우자 등등 생활 수준에서의 격차가 생기고 서로 다른 삶의 범주에 속하게 되면 문제는 더욱 다채로워지고 과거의 상처는 어떻게 곪아 발현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책 속의 피해자나 범인에게 공감하게 되고, 내 주변 그리고 나 자신의 악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러니 뒷맛이 개운치 않을 수 밖에. 단순하고 명쾌한 글의 이면엔 진중함과 나름의 섬뜩함(?)이 담겨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당나귀 구덩이] 였다. 꼭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만이 살인은 아니다. 마음의 독기를 쐬게 하여 일종의 저주를 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정신 상태를 황폐하게 만들어 자살을 하게 만드는 합법적인 살인이 가능하다니! 획기적이면서도 끔찍하다. 누군가에게 이 정도의 악의를 품게 만들고 정신 상태가 강하지 못 했던 피해자의 잘못인가, 악의를 품은 채 저주를 건 가해자인 듯 가해자가 아닌 그 사람의 잘못인가. 심지어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살인에 대한 적극적 의사도 없다. 그저 '사고라도 당해서 죽었으면 좋을텐데' 와 같은 소극적인 의사와 비교적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비해- 소소한 악의를 가진 것 뿐이다. 예수님, 부처님도 적이 있는데 하물며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게 살아온 나에게 이 정도 악의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답답하고 무서워진다. 좀 더 개념있고 선량하게 살자고 다짐하게 된다.


누구나 토해내고 싶은 것을 갖고 있다. 토해내고 싶어도 토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더럽히고 싶은 구덩이를 준비했다. 사람들은 구덩이를 향해 외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다만 그녀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구덩이는 어디에나 있다. 단 어떤 구덩이든 나중에는 반드시 갈대가 자라난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임금님 귀은 당나귀 귀, 라고. -p. 101 (당나귀 구덩이)


이 책에서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두 사람이 형사와 피해자로 잠깐 마주할 뿐 각자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쿨하고 냉소적이진 하무라와 어딜봐도 멍~한 중년 남성 고바야시, 이 두 사람이 함께 활약한다면 더 흥미진진하고 재밌을 것 같다. 두 사람의 케미가 정말 궁금하다! 하무라의 이야기는 [의뢰인은 죽었다] 와 [나쁜 토끼] 에서 이어진다고 하니 기대하며 읽어봐야겠다


덧. 책을 읽으며 정말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 쿨워터 향이 짙다!!

세상에는 자기가 멍청해서 저지른 짓거리의 책임을 아무 의심 없이 통째로 남에게 전가할 수 있는 행복한 인종이 존재한다. (......) 그들은 실제로 성가시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할 때도 있다. -p. 143 (네 탓이야)

인생에서 확실하게 찾아오는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라 한 사람이 누구더라. -p. 219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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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는 맨홀 2015-01-0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과 세금 급 공감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말한마디로 사람 죽이는게 가능하겠더라구요.

bonosseol 2015-01-17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맞아요 꼭 육체적인 위해를 가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책 정말 가볍고 재밌게 잘 읽히더라구요 ^_^
 
모즈가 울부짖는 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2
오사카 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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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직에 대한 소설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 어떤 조직보다 계급화되어 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느 추리 소설들 처럼 비인간적이고 패륜적인 살인, 폭력과 관련된 범죄들이 등장하고, 잔혹한 혹은 치밀하게 계획된 사건 현장 속에서 과연 인간이란 종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을 갖게 만든다. 과연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인간을 동물보다 우월한 종으로 -이성과 논리, 도덕과 선의의 측면에서- 정의할 수 있는가와 같은 궁금증! 더불어 이러한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선에서 활약하는 형사들의 모습, 수사의 진행 과정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사실적이고 박진감있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일수록 여론의 지나친 관심과 정치 세력의 외압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이에 대한 대처 방법이 천차만별이다. 소설 속에는 대세에 순응하는 자,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정의를 부르짓는 자, 몸을 사리기에 급급한 자, 비열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자 등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속한 조직 내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건의 해결 과정도 흥미롭지만 친숙하게 느껴지는(?) 다양한 인물들을 주변 인물들과 매치시켜 보는 재미도 쏠쏠해서 더더욱 경찰 소설에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신주쿠 한 복판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부투 하는 공안 조직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일본의 경찰 체계인지라 잘 와닿진 않지만 공안도 형사이지만 일반 사복 형사들과는 그 역할과 소속이 다르다. 소설을 통해 미루어 보건대, 우리 나라의 검찰처럼 경찰들과 대립되면서도 좀 더 우위에 위치한 것 같다. 그러면서 각종 비밀 업무들을 수행하고 여러 정치 세력과 얽혀 사건을 도모하고 뒷처리 하는 느낌이었다. 보통 경찰 조직보다 더 폐쇄적이고 각종 비리와 파행, 음모로 가득한 집단처럼 보였다. 이 책에는 폭탄 사고로 아내를 잃은 공안 형사 구로키, 폭탄 사건 현장에서 누군가를 미행하고 있던 순사 부장 미키, 경찰 조직 내부의 부패를 적발하고 은밀히 처리하는 경시정 쓰키, 사사건건 일반 형사들을 무시하고 고압적으로 행동하는 와카마쓰 수사 과장 등 다양한 공안 형사들이 등장한다. 각자의 사연과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 하나의 사건을 쫓고 있지만 무언가 하나씩 비밀을 품고 있는 느낌이다. 최대한 각자의 패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상대의 정보를 캐내려는 고도의 전략들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이들 간의 팽팽한 신경전이 흥미진진하다. 여기에 폭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신가이와 정의로운 열혈 형사 오스기가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신가이는 유력한 용의자이자 기억을 잃어버린 청부살인업자이다. 형사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신가이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진실에 접근해 간다. 과연 신가이 그가 쥐고 있는 사건 해결의 열쇠는 무엇인지, 각 공안 형사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끝까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충격적인 반전과 빈틈없는 탄탄한 구성의 스토리가 놀랍다. 하나의 시제와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 아니라 교차로 서술되기 때문에 초반에는 좀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러한 구성인지 모르고 읽다가 갑작스럽게 시제의 변화가 나타나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같은 경우에는 사건 해결보다는 각각의 단락들이 시간적 선후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재배치 하는데 더 집중한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드는 게 더 흥미진진하고 재밌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일드가 시즌 2까지 만들어져 방영되었다니 찾아서 보면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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