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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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참 허지웅스럽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각종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모습과는 매우 닮아있다. 특히 여과없이 돌직구를 무심한 표정으로 마구 날리는 솔직함과 시크함이 그렇다.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할 정도로 뚜렷하게 자기 견해를 피력하는 톡톡 쏘는 말투가 그의 글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공하지 않는 삶은 뒤처지는 삶이고 뒤처지는 삶은 불행한 삶이니 지금 당장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하라고 외칩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은 노력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말합니다. 그 희박한 일말의 가능성은 너희도 언제든지 tv 속의 저 화려한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고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합니다. -p. 8 작가의 말

근거없는 종교적 낙관으로 삶을 낭비하라며 주변에, 특히 젊은 세대에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약과도 같은 낙관은,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찰나의 경우로 존재하는 일말의 어떤 아름다움들은 이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드러날 수 있습니다. -p. 9 작가의 말

모두에게 자기 과거는 연민과 애증의 대상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자기 과거를 신화화하는 사람은 꼰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지나고 나니 너무 큰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 -p. 118


방송에 나와 너무 냉소적으로 말을 하는 탓에 사람이 정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 싫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책 속에 쓰여진 그의 문장들은 좋다. 심지어 그가 책 속에서 내 눈을 바라보며 연신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똑같은 어투임에도 말이다. 이 순간만큼은 K팝 스타에서 박진영이 말할 때 목소리랑 노래할 때 목소리랑 같은 사람이 좋다고 말하는 심정이 격하게 공감이 간다. 소위 글 좀 쓴다는 지식인들 특유의 지적 허세나 가식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깔끔하게 핵심만을 이야기하는 그 솔직함! -적어도 매체에서 그가 했던 언행들과 글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일치하는 듯하다.- 애매모호한 은유나 어려운 단어의 나열없이 읽기 쉽게 쓰여진 점도 매력적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참 별 볼 일 없는 농담 한 줌이라는 걸, 별 볼 일 없는 무대 위의 별 볼 일 없는 만담가가 내뱉은 그저 콩트 같은 것이라는 걸, 그러니까, 아주 가끔 깨닫고 대개 까먹는다. -p. 17

남의 독한 사정도 듣다보면 결국 농담 같은 것이다. (......) 내가 나중에 저런 독한 일을 겪게 되거나, 그런 일로 괴물이 되고 나면, 내 불우한 사정 이야기로 갑수씨나 웃겨주어야겠다. 갑수씨에게는 듣기 재미있는 농담일 것이다. 웃는 갑수씨를 보면 나도 수월해질 것이다. 산다는 것 말이다. -p. 20


이 책은 마녀사냥의 허지웅 그 자체이다. 방송에서 하지 못 했던 수위 높은 이야기들을 이 
책을 통해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는 것 같다.  책의 내용은 심플하다. 지웅씨의 지인 중 한 사람인 김갑수씨와의 만남과 대화를 들려준다. 갑수씨의 다사다난했던 연애담들이 쏟아지는데 이야기 자체가 범상치 않다. 주로는 갑수씨의 성생활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정치, 경제 어떤 이야기로 시작해도 결국엔 갑수씨의 추억담과 연애담으로 마무리 된다. 노골적인 묘사가 마구 난무하는 탓에 낯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자꾸 책을 숨기며 읽을 수 밖에 없다. -왠만큼 남의 시선에 무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공개된 장소에서의 독서는 지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역시 마녀사냥 mc답게 위트있게 표현하긴 했다. 예를 들어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되는 빠르기로 벌어진 일 같은 표현들은 재치만점이었다. 하지만 좀 더 신동엽스럽게 아슬아슬한 수위의 선을 지켜 주었다면 덜 부끄럽게 읽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세상에는 평소의 자연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장소라는 것이 존재한다. 버뮤다 삼각지대, 신촌 모텔촌, 그리고 맘이 떠난 애인의 집 앞. 맘이 떠난 애인의 집 앞에서 지구의 자전주기는 미칠 듯이 더디어진다. -p. 46

아니 여보시오 의사양반 내가 고자라니 내가 고자라니! -p. 111


남성들의 모든 판타지를 경험한 듯한 갑수씨의 이야기는 남자들 술자리에서 오가는 농담처럼 들린다.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하지만 그 이면엔 사랑과 이별에 대처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한 인간의 서글픈 성장통(?)이 담겨 있다. 스스로 자기 정체에 대해 무지하고, 실재하는 자신과 생각하는 자신이 달랐던 사람은 갑수씨 뿐만이 아니다. 우리들 역시 그러한 과정을 지나쳐 왔거나 지금 겪고 있는 중이다. 그가 무수한 연애에 실패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처럼 우리들이 실패했던 연애의 이유도 그러하다.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서로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본능에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흘러가는 방향을 객관적으로, 사실적으로 바라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자기 보호 본능때문에 본인을 사랑의 약자로 여기며 상대방에 대한 오기억을 만들어 내 비난의 화살을 쏘아 대고.. 반드시 지속되어야 할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관계의 변화 이유를 받아들이질 못 한다. 사랑이 식은 상대방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가여워 하다 끝을 본다. 그런 면에서 갑수씨가 나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굉장히 솔직하고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에 적극적으로 부딪혀 왔다는 점이다. 덕분에 매번의 연애를 떠올려 보고 반성 하면서 연애란 무엇인지, 우리는 왜 연애를 하는지 그 난제에 대한 답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번번히 상처와 실패를 반복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져드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그 순간만큼은 천국 그 자체임을 알기 때문에 유전자에 새겨진 관성처럼 우리는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다. 갑수씨를 통해 보여진 사랑의 추한 이면들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사랑에 대한 환상은 품지 않을테니. 


저는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거짓 낙관 없이도 세상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거짓 낙관은 궁극적으로 삶을 혐오하게 만들지만, 혐오스러운 세상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그 추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신분 상승이 아닌 더 나은 삶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건 동물의 본능이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의 오래된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p. 10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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