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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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학원물은 그닥 좋아하질 않는다. 약간 오그라드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해야하나. 비현실적으로 성숙하거나 명랑하거나, 어쩐지 촌스럽고 교육 드라마 느낌이 물씬 풍기는 대사들 까지 더해져 실망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마치 고등학생 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썰로 풀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선암여고 탐정단 소녀들이 어느 고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웰매이드 캐릭터들이고 , 책 속에 등장하는 문제들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 무한 경쟁 시스템과 각종 사교육의 감옥 아래 그들의 억눌린 감정은 분출될 곳을 찾지 못 한다. 남자 아이들과 달리 어릴 때부터 사회적으로 강요 받아온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은 그 시기에 느끼게 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표출하기보다 억누를 것을 요구한다. 여자들도 서로 미워하고, 경쟁하고 건강한 갈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게다가 어른들은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옆의 친구보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어떠한 감정이든 느끼고,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사치로 느껴지게 만든다. 그래서 문제는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더 파괴적이고 잔혹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눈치챌 수 없도록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 책은 여고생들의 이러한 심리 상태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함께 입시 지옥과 왕따 문제, 청소년 출산 등의 문제들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라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 허우적 거릴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의 심리와 생각들이 잘 드러난다. 때로는 교활하고, 충동적이고, 어리석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직 때묻지 않아 순수한 그런 마음과 생각들. 그러면서도 통통 튀고 엉뚱한 매력을 가진 탐정단 여고생들을 등장시켜 유머와 발랄함을 적절하게 배치시켰다. 소소한 일상의 미스테리같은 사건들이지만 미행과 잠복, 여학생들의 수다 커뮤니티를 통해 엄청난 정보를 수집하고, 번뜩이는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꽤 신기하고 통쾌하다! 꼭 코난처럼 첨단 장비나 천재적인 지능으로 연쇄 살인범을 잡아내는 큰 스케일이 아니더라도 나름의 쫀득쫀득한 긴장감과 스릴이 있다. 읽다 보면 뒷장이 궁금해서 자꾸만 급한 마음으로 넘기게 되는 의외의 매력이 생긴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평범한(?) 모범생의 모습인 채율의 다사다난 선암여고 적응기도 흥미롭다. 천재 오빠의 그늘에 가려 자존감을 상실한 채율이 가족이 아닌 이들을 통해 소속감이라는 것을 느끼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뭉클하게 다가온다.

어쩜 이렇게 다들 하나같이 독특한 성격을 지녔나 몰라 싶다가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와 동아리 친구들도 이쯤 가는 또라이들이였었던 것 같다. 모두들 학원과 과외로 바쁠 때 우리들은 골방 과학실에 모여 나름 진지한 실험과 토론을 했었다. 루미놀 발광 실험을 하는데 철분 시약이 없으니 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떨어뜨리고, 물로켓 발사 대회에 나가 낙하산 대신 검은 비닐봉지를 넣어 놓고는 발사 후 초라하게 펴지는 검은 비닐을 보며 꺄르르 웃어대기 바빴다. 남들은 장관상을 노리고 온 대회에 우리들은 도시락 까먹기와 추억 만들기 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여름에는 깔끔떨며 대청소를 시도하다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수도꼭지를 뽑아 건물을 물바다로 만들고, 겨울에는 반응성을 상실한 나트륨을 눈 속에 파묻고 우리만의 불꽃놀이를 하기도 했다. 꼴에 과학반이라고 가장 아끼는 것은 우리들이 라면 끓여 먹는 비커와 삼발이, 알코올 램프였다.

책을 읽고나니 절로 고등학교 때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 땐 참 많이 웃고 발랄했었는데 라는 아쉬운 감정도 들고. 무엇보다 공부하는 기계로 살지 않게 해준 동아리 친구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대학도 다들 가고, 지금은 각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산다. 절대 과학 공.부.는 안 할거라고 했던 우리들이지만 다섯 중에 셋은 자연과학과 천체물리를 하며 가방끈을 길게 늘여가고 있으니 이 또한 웃긴 일이다.

좀 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꿈도, 희망도 없이 대학 문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나이에만 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과 추억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사회를 만들어줘야할 어른이 되고 나니 마음이 더 무겁고 책임감을 느낀다. 책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은 학교에 상주하는 상담 선생님이 계시다는 점이었다. 막상 전문 상담 선생님이 학교에 상주한다 하더라도 주변의 평판과 생활기록부에 대한 걱정때문에 이용률은 저조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댈 곳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 문을 한 번 두드려 볼까하는 희망이 존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학교나 혹은 지역 사회에 청소년들의 고민에 귀기울여 주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무엇보다 우리의 교육 환경이 개선되고 그 지향점이 달라지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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