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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되었습니다 - 모든 미해결 사건이 풀리는 세상,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작
박하익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선암여고 탐정단을 정말 깔.깔 거리면서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그녀의 전작이 궁금해졌다. 추리 스릴러 단편선을 제외하면 2012년 출간 된 '종료되었습니다' 가 있었다. 어째 음산한 느낌의 표지에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흡입력 있는 전개와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인 진홍이 7년 전에 살해된 어머니 명숙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진홍의 어머니는 눈앞에서 오토바이를 탄 남자에게 수차례 칼에 찔려 살해 당했었다. 그런 어머니가 나타나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이전과 같이 따스한 말을 건넨다. 이는 몇 년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SSS 혹은 RVP 현상이었다. 어떠한 메커니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잔혹한 범죄의 희생자가 되살아나 범죄자를 찾아가 죽이고 소멸하는 일을 일컫는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어머니가 이상해진다. 범인은 분명 오토바이를 탄 남자였고 잡히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머니가 진홍을 죽이려고 달려든 것이다. 과연 어머니가 예외적인 오류를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진홍이 사주한 일인걸까? 억울함을 주장하는 진홍에게는 7년 전 사건 외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건지, 고도의 지능을 갖춘 싸이코패스인지, 혹은 범죄 사실을 기억하지 못 하는 다중인격장애인건지... 살인 사건의 진범도 궁금하지만 진홍도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듯 끝까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가독성이 정말 끝내준다. 사실 소설의 중반을 지나면서 추리 요소가 가미된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너무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좀 실망스러웠지만, 역시나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떤 결말로 논리적으로 끝맺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아직 이 작가의 책을 세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 분 책을 참 맛깔나게 쓰는 재주가 있다. 삐딱하게 보면 유치할 수 있는 소재들을 가지고도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잘 전개해 나가는 것은 그녀의 큰 장점이자 재능인 것 같다.
인간인 범죄자가 있는가 하면 인간의 탈을 쓴 범죄자가 있어. 관심과 지원을 해주면 개심하고 갱생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아무리 시간을 들이고 인력을 투입해도 불가능한 부류가 있어. 처음부터 인간으로서의 어떤 것이 결여된 생물체들이야. 타인이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걸 몰라. 남의 입장을 생각할 수 없어. 내 이익이나 쾌락에 눈이 멀어서 다른 사람들을 그것들보다 낮춰 보지.
씻으려야 씻을 수 없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고 극복되지도 않을 고통을 평생 지고 살아야 했다. 영혼에 아로새겨진 아픔은 지옥으로 통하는 창(窓)처럼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끌어들였다. 해결할 길 없는 분노와 살의, 우울감과 무력감, 그리고 영원한 자책까지.
실질적인 사형 제도가 폐지된 현대 사회에서 교도소에서 일생을 보내는 것이 범죄자들에게 진정한 징벌로 작용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을 수감하는 것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유가 박탈된 상황에서 반성할 시간을 갖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그들의 교화, 그리고 재사회화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은 분명히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무언가가 결여된 사람들, 즉 갱생의 여지가 없는 범죄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일반적인 상식과 논리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싸이코패스와 같은 범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범죄자의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그들은 되려 편안한 교도소 라이프를 즐기는 게 된 것 같아 화가 난다. 삼시세끼 끼니를 해결 못 하고 따뜻한 잠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헤매이는 어려운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하면 죄를 지은 무게에 비해 그들은 너무 안락한 삶을 보장받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혈세가 그렇게 낭비되는 것이 너무나 아깝다. 차라리 그 돈으로 희생자 가족들의 상담 치료나 복지를 위해 쓰이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범죄의 잔혹성과 그 형벌에만 집중할 뿐 후에 남겨진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관심은 너무나 부족한 현실이다.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도 해주지 않은 채 너그러운 아량과 용서를 바라는 게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SSS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처벌인 것 같다.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고, 무엇보다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죄책감과 공포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교화와 벌의 목적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사형 집행을 할 수 없다면 이러한 방법이 하루 빨리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 꿈같은 방법이고, 또 그 와중에 범죄자의 인권을 운운하며 반대하는 무리들이 생기겠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점점 멀어진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흉흉한 일들이 시시때때로 일어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삭막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크든 작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두려워 인간이 악하다고 믿어버리는 것이 자신을 방어적으로 만들어줘서 훨씬 안전하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무소유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상 인간은 언제나, 누구나 악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늘 두렵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지(無知)와 무구(無垢) 일지도 모른다. 태초의 낙원에서 인간을 타락시킨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이었듯 무구함이야말로 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몰라야 할 것을 몰라야 인간이다. 범죄성과 악마성, 그리고 수성(獸性)과 대면해 버리면 영혼은 순식간에 변질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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