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영멘 1
나카무라 히카루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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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명시 된 지구 종말은 일어나지 않고 인류는 무사히 밀레니엄을 맞습니다. 그래서 천계의 두 별, 붓다와 예수는 하계의 일본으로 휴가를 옵니다. 신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여느 인간들의 모습처럼 현대 문명을 체험하고 일본 곳곳을 관광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려옵니다. 두 분(?)은 사람들의 감사한 마음과 웃음이 엔화로 환산되어 매달 월급처럼 휴가비를 지급 받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도쿄에서 좌충우돌 동거가 시작됩니다. 알뜰살뜰 저금도 하고, 충동 구매를 해서 잔고가 바닥나기도 하고..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똑같이요.

예수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다소 즉흥적인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소위 말하는 기분파에다가 실수 투성이예요. 기쁨으로 충만하면 그릇을 빵으로, 물을 와인으로 바꾸는 기적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행하고 늘 아가페적인 따스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모든 드라마를 섭렵한 파워 블로거이고 코스프레 매니아 입니다. 붓다는 이런 예수를 돌봐주는 형 같은 느낌입니다. 게임 위와 만화책에 빠져있고 밥 짓는 일을 좋아합니다. 천계에 네 컷 만화도 연재하고 예수가 즐겨입는 티셔츠에 실크 스크린으로 글자를 새겨주는 취미를 가지고 있고요. 고행 매니아이고 체중 변화에 민감하여 살이 찌면 굶습니다. 하하...

위의 설명처럼 예수와 붓다는 정말 유쾌하고 호기심 가득한 청년들의 모습입니다. 인류와 세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선한 마음을 간직한 채로 말이죠. 전기 자전거를 처음 만난 날, 인간이던 시절 이게 있었다면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고 자전거 바구니에 실어서 골고다 언덕을 룰루랄라 올라갔을 거라고 말하는 예수님,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한 것은 모든 인간은 부처처럼 존귀하다라는 뜻에서 한 말이 아니라 중2병 같이 세상물정 모르고 한 말이었다고 고백하는 부처님. 보다 보면 참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다정다감한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석가탄신일과 크리스마스에 깜짝 생일 파티를 해주려고 특급 작전을 펼칠 정도로 진한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막상 이 분들을 사랑하고 따르는 인간들은 그렇지 못 하잖아요. 종교라는 명분을 앞세워 서로 전쟁하고, 탄압하고.. 결국 모든 것은 신의 뜻과 상관없이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만들어낸 일들인 것 같아 씁쓸하더군요..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색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입니다. 역시 일본이 최고라는 둥, 일본 민족주의가 깊게 담겨 있어 마음이 불편하긴 합니다. 억울하면 우리도 이런 거 그려야죠 뭐 하하.. 일본 광고 만화 같은 느낌이 가득하지만 이런 건 그냥 가뿐하게 제껴 읽으면 되니까요. 불경과 성경에 등재된 모든 종교적 배경과 일화들이 개그 소재로 쓰여 웃음 폭탄으로 작용하는데요 여기에 집중하면 되더라고요.

일부 기독교 신자 분들에게는 신성모독이라는 느낌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것은 만화일뿐이고, 어찌 보면 신문과 뉴스에서 보여지는 각 종교 단체들의 몹쓸 행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진정성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 종교의 근간인 선함과 구원, 인간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지하게 담아 내고 있거든요. 거기에 재미를 더해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믿음과 관심이 무럭무럭 자라게 되네요. 종교의 참뜻을 어지럽힌 인간이 잘못이지, 그 종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지향점은 훌륭하다는 것도 새삼 깨닫고 있고요. 무엇보다 종교간 화합에 대 찬성인 저로서는 두 분의 우정이 아름답게만 느껴집니다.

정말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될 것 같아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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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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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쿠이 도쿠로 작가의 데뷔작입니다. 이 책이 중견 작가의 농익은 작품이 아니라는 것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책의 구성 자체가 독특하고 마지막 결말이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범인의 정체도 놀랍지만 두 개의 장이 하나로 연결되는 구조적인 병합이 진.짜. 반전으로 작용합니다.

책은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는 딸을 잃고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마쓰모토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쓰모토의 시각에서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감정적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딸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그의 범죄에 대해 일면 수긍하게 됩니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버렸다는 마쓰모토의 말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장 같거든요. 모든 것이 그 구멍으로 통과해 버려 고통과 상실감 이외에는 무엇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거죠.

딸 문제라면 돌변하게 된다.

특히 자식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 메울 수 없는 허무감을 이용하여 돈을 취하려는 무자비한 종교 단체들이 등장하면서 그의 파멸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이상한 의식이나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시켜 그에게 헛된 바람과 상상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누쿠이는 신흥 종교에 대해 심도 있는 비판을 제기합니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자들의 빈 틈을 비집고 들어가 어떻게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맹목적인 믿음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비지니스로서의 신흥 종교의 면면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정신적인 안식처를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신흥 종교 단체들이 판을 치는지 이해가 갑니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자, 소외된 자들 일수록 더욱 깊게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것도요. 사이비 종교 단체들은 그들이 듣고 싶고,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그것을 정확하게 제시하기 때문이겠죠. 참 씁쓸하고 화가 납니다.

두 번째는 연속되는 유아 유괴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수사1과장 사에키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지휘 아래 이루어지는 수사의 진행 상황, 사에키 개인의 고뇌와 가정사, 사에키를 둘러싼 조직의 풍토와 갈등들을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때로는 사에키 본인의 독백으로, 혹은 직속 부하인 오카모토의 시선으로 말이죠.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힘겨운 시절을 보냈고, 종국에는 그의 결혼마저 정치권과 경찰 간 담합의 도구로 이용되고 맙니다. 그래서 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서투를 뿐만 아니라 그의 결혼 생활 역시 순탄하질 못 하죠. 또한 수사가 장기화 되고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사에키의 출생과 배경에 대해 선입견을 가진 채 무책임한 비판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언론은 그의 사적인 영역까지 침투하여 조롱과 비판의 희생양으로 삼고요. 언론, 여론, 조직의 무자비함과 비정함,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이권 다툼이 극명하게 드러나 사회파 소설로서의 면모도 보여줍니다. 특히 캐리어와 논캐리어 간의 불화와 차별은 일본의 경찰 조직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문제점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두 개의 거대한 이야기가 교차로 진술되면서 독자의 호기심은 증폭됩니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로 합쳐질지 궁금증을 자아내지요.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지고 두 개의 장 사이의 간극이 좁혀질수록 손에 땀을 쥐게 됩니다. 마침내 구조적 반전이 드러나는 순간 정말 심장이 쫄깃해지는 느낌입니다. 이 충격적 결말을 위해 세심하게 각각의 이야기를 서술한 작가의 능력이 정말 놀랍습니다. 데뷔작만큼 차기작은 얼마나 탄탄하게 잘 쓰여졌을지 기대되는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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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렐 월드 러브 스토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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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의 내용이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흔하디 흔한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삼각관계,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영화와 드라마화 되고, 노래 가사로 쓰여진- 친구의 연인을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꽤 통속적이고 진부한 소재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이런 뻔한 소재로 대체 히가시노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무척 궁금증이 일더군요.

초반 인트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특정한 시간대에 나란히 정차하게 되는 지하철 두 대. 주인공인 다카시는 건너편 지하철에서 항상 자신과 마주해 있는 미모의 여인을 보고 호감을 느낍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는 날 용기를 내어 그녀가 타던 지하철에 오른 다카시는 그녀를 만나지 못 합니다. 대신에 자신이 타던 지하철에 있는 그녀를 발견하죠. 그 후 예상치 못 한 순간에 그녀를 대면하게 됩니다. 가장 친한 친구 도모히코의 애인인 마유코로써 말이죠.

사실 저는 이 때 동시간대에 정차하는 지하철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두 남녀의 상황과 책의 제목을 통해 평행 우주에 대한 이야기인가 상상했었어요. 미드 프린지를 보면 두 개의 평행 우주가 서로 마주보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과 비슷하게 그려지거든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기억 상실과 재편에 관한 이야기로 전개 되더군요.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전개 됩니다. 도모히코의 애인인 마유코를 보며 질투와 죄책감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다카시의 이야기, 그리고 전자의 이야기를 꿈으로 혹은 문득 떠오르는 희미한 기억으로 느끼는 다카시의 이야기 이렇게 두 개가 교차 형식으로 서술됩니다. 후자의 이야기 속에선 마유코가 다카시의 애인이자 함께 동거하는 상태로 등장합니다. 행복만 느끼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자꾸만 마유코가 도모히코의 애인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마유코와의 추억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지고요. 게다가 미국 본사에 가 있다는 도모히코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어떻게 그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을까요? 절친인 도모히코가 연락도 없이 미국으로 가버릴 일도 없거니와 그에 대한 기억조차 명확치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죠.

과연 어떠한 이야기 속의 '다카시' 가 진짜 '나' 로서의 다카시인걸까요.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이 세계가 거짓처럼 느껴지고, 진정 '나' 는 누구인가, 어떠한 기억이 진실인가를 놓고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다카시의 이야기는 갑갑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특히 이 소설 속 가설처럼 임의로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이러한 기술을 이용한 실험이 자행되고 있다면? 과 같은 상상을 하다 보면 어떤 호러물보다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본인의 기억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결국 '나' 라는 존재에 대한 근거를 주변인들에 의지해 찾아야내야 한다면 그것만큼 혼란스럽고 두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자신 따위는 없어. 있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는 기억뿐. 모두들 거기에 얽매여 사는 거야. 나나 다카시씨나." - p. 468


이러한 버추얼 리얼리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외에도 삼각관계에 빠진 도모히코, 다카시, 마유코 세 사람의 심리 변화와 그 내부에 자리한 팽팽한 긴장감과 갈등이 섬세하게 그려져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누구에게나 직간접적으로 그러한 경험이 있기에 그들이 처한 상황에 쉽게 몰입하게 됩니다. 친구, 연인과 삼각관계에 빠진 지인, 혹은 본인의 이야기처럼요. 그래서 더욱 공감하게 되고 애틋하고 안타까운 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마음을 졸이며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처음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에다가 기억의 재편과 같은 꿈의 기술을 슬쩍 끼워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었는데요. 막상 읽고 나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재다능함에 놀라게 됩니다. 추리 소설 속 트릭이나 반전만 봐도 기발한데 인간 본연의 감정들에 대해서 이렇게 섬세한 묘사를 해낼 수 있다는 것에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단하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겠네요. 정말 지겹고 뻔한 말이지만 책을 읽을 때마다 이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지나치게(?) 책이 빈번하게 출간되는 분이라 완성도나 작품성 면에서 논란을 피할 수가 없는데요. 편차가 있긴 하지만 언제나 굉장한 몰입도로 책을 읽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민감한 사회 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소재를 흥미롭게 글 속에 녹여낸다는 점에서 실로 대단한 작가란 생각이 듭니다. 최근 그의 초기작인 세 작품이 잇달아 출간되었는데요, 그 책들도 어서 만나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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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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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부적절하고 불편함을 야기하는 단어이다.
항상 사랑과 믿음, 희망, 행복 등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가치들에 대해 노래해왔던 파울로 코엘료가 불륜에 대한 신작을 출간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신분 상승을 꿈꾸며 계산적인 결혼을 한 사람이 불륜이라는 다소 비윤리적인 방법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려는건가? 아니면 불륜에 의해 파괴된 가정과 배우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는건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불륜의 다양한 행태를 떠올려 보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혹은 일주일 내내 텔레비전을 틀면 불륜, 혹은 바람의 문제로 고통받는 커플이 하나 이상 포함된 드라마를 언.제.나. 볼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내가 아닌가. 심지어 평이한 불륜은 이제는 식상해져서 더 막장스럽고 자극적이어야만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할 수 있는 시대니까.
이렇게 단련된 나를 놀라게 할, 파올로가 이야기하는 '불륜'은 대체 무엇일까??

내가 품었던 궁금증과 기대감에 비해 결말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게 끝맺을 수가 있을까.
그 흔한 악 한 번 쓰지 않고, 머리 끄댕이 잡고 다투는 질펀한 싸움없이 아주 조용히 막을 내렸다.
통상적으로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주인공이 내적 평안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면서.
불륜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스토리를 기대하고 이 책을 접하면 정말 밍숭맹숭한, 결말마저 현실성이 없는 실망스런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은 불륜이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불륜을 저지르는 여자 주인공 린다와 야코프가 함께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린다가 불륜을 통해 삶의 의미와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지만 불륜의 현장 또는 치정에 얽힌 사건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린다의 독백을 통해 불륜을 저지르기 이전과 후의 감정적 변화나 생각의 흐름 등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어 린다의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이다.

린다는 제네바의 명망 있는 신문사의 기자로서, 나이 31세, 가장 부유한 스위스인 300인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상한 남편과 아이 둘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조건만을 따져가며 한 결혼도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해 결혼까지 했고, 두 사람에겐 무한한 신뢰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문득 '고작 이게 다야?' 라는 의문과 함께 은밀한 두려움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과 권태가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변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 사이에 갇혀 버린 것이다. 지난 몇 년간의 결혼 생활을 되돌아 보면서 완벽한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우월감이 아닌 악몽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본인도 똑같은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이 갑갑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난 삼십 여년간의 삶은 결코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길만 찾아온 지루한 인생같이 생각된다. 하지만 그녀는 친한 친구, 남편에게도 본인의 심각한 우울증을 드러내지 못 한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그녀가 해온 유일한 반응이고 여전히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샤워를 하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거기서는 울 수가 있다. 아무도 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기에, 누구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테니까.
"괜찮은거야?"
물론. 안 괜찮을 리가 없잖아? 내 인생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무 문제 없지.
단지 두려움이 밀려드는 밤이 있을 뿐.
아무런 열의를 느낄 수 없는 낮과,
행복했던 과거의 모습들, 지나가버린 일들에 대한 회한과
감행하지 못한 모험에 대한 갈망과,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공포가 있을 뿐. -p. 23


누가 봐도 행복하고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그녀의 삶을 보면 이러한 고민과 두려움이 사치로 느껴지기도 한다. 당장 하루 벌어 먹고 사는 것이 급급한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존재론적 가치들에 대한 고민 자체가 배불러 할 일 없는 사람들의 놀음에 불과할테니까.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감, 만족감을 결정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남자들에게는 욕망을, 여자들에게는 질시를 불러 일으키는 완벽한 삶을 누리는 주인공에게 우울증을 유발시키는 결핍의 요소는 대체 무엇인지,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을 위해 목표로 해야할 참다운 가치가 무엇인지.

그래서 파울로는 그녀가 야코프를 만나 불륜을 행하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책의 처음과 끝까지 우울증에 걸린 여자의 전형적인 모습, 위태롭고 불안정한 그녀의 내적 세계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우울과 무기력한 감정의 근원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의 양상을 세세하게 열거한다. 특히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치료 과정으로 들어가기 전까지의 각 단계들 -방어, 자기 옹호, 자기 확신, 고백,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 은 매우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우울증의 '지옥' 을 경험한 사람들이 대부분 공통적으로 느끼는 일련의 증상들이긴 하다. 하지만 우울증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다 한 번쯤은 그러한 감정적인 공황상태와 본인의 삶에 대한 무기력함, 회의감 등을 경험한다. 이것이 책을 읽는 동안 린다에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내 마음 속에서 괴로워하는 누군가가 바로 그 린다이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나오기 싫은 느낌. 아주 단순한 일을 해내는 데도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 느낌. 진정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세상 사람들을 보며 자신은 그런 기분을 느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가책으로 마음이 갈갈이 찢기는 느낌. -p. 31

무감각 상태랄까? 행복한 척, 슬픈 척,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즐거운 척, 잠을 잘 잔 척, 살아 있는 척. 그러다보면 가상의 한계선에 다다르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을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돼. 그러면 더이상 불평을 안 하게 되지. 불평을 한다는 건 아직도 무언가를 대상으로 최소한 싸우고는 있다는 뜻이거든. 결국 불평도 없는 식물인간 같은 상태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감추려고 노력하게 돼. 그게 정말 힘든 일이야. -p. 32


뉴스를 켜고 신문을 뒤지며 각종 사고들, 혹은 자연재해로 집을 잃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서 위안을 구한다. 평소 본인의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감정적이고 예민한 또 다른 내가 나타나 괴리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결국 우울증임을 인지하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고 약을 처방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과 의사의 진단과 약물의 효과를 믿을 수 없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 했던 일탈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일탈적인 행동들은 쇼핑 중독-과소비, 알코올 의존 혹은 중독, 안정제나 항우울제의 남용, 도박, 범법 행위, 불륜 등 개개인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린다는 그것이 불륜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린다는 야코프를 떠올리며 사랑의 감정으로 두근거릴 때에도 그녀의 남편 또한 사랑했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야코프와 불륜을 저지르든, 아니든 함께 남을 것인가, 영원히 헤어질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이란 것도. 그것이 두 사람, 아니 여러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상황을 처하게 할 것이며, 본인을 파괴할 일이라는 것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야코프에게 빠져든 것은 고뇌에 빠진 자신의 영혼을 알아봐준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자신과 똑같은 슬픔을 지니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심지어 남편도 그녀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던 행복하냐는 질문은 야코프에 대한 마음을 단단히 굳히는 계기가 된다. 나아가 야코프 앞에서 그녀는 다른 여자가 된다. 욕망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열여섯살의 사춘기 소녀가 될 수 있다.
본인을 감싸고 있던 무기력, 나약함, 패배감, 불안이 사라지고 한없는 희열과 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강력한 힘을 느낀다. 특히 야코프의 부인인 마리안을 만난 후 더욱 큰 승리감을 느끼고 이것이 반듯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주는 선물같은 것이라고 느끼기까지 한다.

결국 그녀가 정말 사랑한 것은 야코프가 아니라 무력감을 극복해내는 자신이었단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안정적인 생활이 무료하고 삶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자 도전 정신을 발휘하여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던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일종의 게임 같은 것 말이다. 미모도, 지성도, 직업도 완벽한 마리안을 만나 굴욕감을 맛본 뒤 그녀에게서 야코프를 뺏어오는 짜릿한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밀려오는 성취감과 자아도취적인 기쁨은 그 어떤 마약보다 강렬할테니까. 처음엔 호감 또는 일시적인 설렘이었을지도 모를 감정이 진실한 사랑인 것처럼 둔갑하여 이 도전적인 게임에 빠져들게 만든 원동력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욕구보다 미지의 모험- 그것이 자기파괴적인 모험이라 할지라도- 을 약속하는 악마의 속삭임에 이끌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니까.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함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될 거예요. 아까 말했듯이 기자님 영혼의 빛은 어둠보다 더 강해요. 그렇지만 깨닫기 위해서는 끝까지 가야 합니다. -p. 212


주술사의 조언처럼 본인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끝까지 나아간 그녀는 마침내 깨닫게 된다. 불륜으로 인한 행복은 마약 중독자들이 마약을 할 때 느끼는 행복 같은 것이라고. 조만간 그 효과는 사라지고 전보다 진한 절망이 찾아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녀가 죄책감과 절망감에 모든 것을 털어놓으려 했을 때 몹시나 완.벽.한 남편은 그 고백을 제지시키며 무한한 사랑으로 그녀를 끌어안는다. 얼마나 자신이 린다를 사랑하는지 어마무시한 말들로 고백을 하면서.


난 당신 때문에 생기는 질투를 잘 조절했어.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왠지 알아? 난 늘 스스로에게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난 우리의 결혼생활과 유대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해. 절대 아이들 때문이 아니야. 난 당신을 사랑해. 당신을 내 곁에 두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정말로 무엇이든 견딜거야. 하지만 당신이 날 떠나겠다면 잡을 순 없겠지. 언젠가 떠나고 싶어지면, 당신 행복을 찾아 떠나도 돼. 내 사랑은 그 무엇보다 강하니까, 절대로 당신 행복을 막진 않을거야. - p. 301


사랑을 하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여야 해. 사랑은 우리가 어릴 때 갖고 놀던 만화경 같은 거니까. 똑같은 건 없고 항상 변하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ㄴ것 때문에 오히려 고통받게 되어버려. 최악은 뭔지 알아? 그 여자같은 사람들이야. 제 결혼생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항상 걱정하는 사람들. 난 그런 건 관심없어.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게 중요한 건 그것뿐이야. -p. 303


이 부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런지. 일단 의심의 씨앗이 가슴 속에 자리하면 타이밍의 문제일 뿐 언제든 급속도로 자라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야코프와 린다 사이에 썸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 눈치를 챘을텐데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저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린다를 붙잡으려 한다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고 허구적이다. 내가 남편이라면 린다의 얼굴만 봐도 자연스럽게 웃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로맨틱한 말들을 내뱉을 수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오히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거나 아니면 그냥 대화를 회피한 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최선일 것 같은데 말이다.

게다가 린다라는 이 여자는 마지막에 야코프를 만나 뻔뻔한 말도 남긴다.
정작 남편은 비난하지도, 탓하지도 않는 일로 스스로를 탓하고 매질하고 있었으며, 완벽한 이 남편이 어떻게든 본인 곁에 머무르고 싶어한다면 그것은 나름대로 본인이 가치있는 사람이기 때문일거라고.
내가 야코프였다면 한 대 후려쳤을지도 모르겠다. 정신차리라고.
뭐 이런 정신 나간 여자가 다 있나 싶어서 온갖 욕설을 퍼부어주었을 것 같다.
하긴 촉망받는 정치인이니까 이런 여자와의 불장난을 마무리한 것 자체에 엄청 감사했을 것 같지만.
정말 이 부분을 읽을 때는 기가 차서 머리까지 띵한 느낌이었다.
일단 남편의 조건 없는 사랑을 확인하고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갔으니 린다에게는 아주 성공적인 결말이다. 삶, 사랑, 가족 이 모든 것의 소중함과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불륜을 통해 자존감과 자긍심을 회복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대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예상 밖의 전개였다. 이게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 방식의 차이인지, 아니면 린다라는 여자는 처음부터 이토록 뻔뻔하고 자기중심적인 여자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원시 시대부터 치정때문에 발생한 살인 사건들을 줄이고자 고안한 것이라는 가설을 생각해 보았을 때 동서양의 차이는 아닌 것 같다. 그저 파올로 코엘료의 해피 엔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막장보다 더 막장스러운 결론을 내린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더럽다고 느끼거나 그를 속인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도 다시 그 사람 옆에서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거야. - p. 319


그리고 린다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정말로 정말로 대단한 여자이다.
가족과 행복한 한 때를 보내던 린다는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 망언을 한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을 남편과 가족 곁으로 돌려보내준 야코프와 마리안이 행복하기를 소망한다며, 이 모든 일이 두 사람을 가깝게 이어주기를 소망한다고 말이다.
이쯤되면 자기애의 결정판이다. 이 여자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역지사지라는 게 없는 건지, 워낙 매력적인 여자면 이따위로 생각해도 되는건지.

아무리 영혼의 연금술사 파울로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결말은 뜬금없다.
그녀가 불륜을 통해 주체로서의 삶의 의미, 사랑의 소중함, 진정한 가족애를 깨닫는 과정과 내적 성찰은 정말 훌륭하다. 그 과정에 포함된 철학적인 질문들과 답들은 나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지만 이 결말은 정말 실망스럽다. 이렇게 인간의 우울하고 고독한 속내를 완벽하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불륜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결말에 대한 현실적 이해가 이토록 부족할 수 있다니. 결말의 몇 장이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모든 경이로운 감흥들을 반감시키는 것 같아 좀 아쉽다.

예민한 주제를 고차원적으로 승화시켜 풀어냈지만 끝이 안타까운 책!!
성에 관한 이야기지만 여자 주인공이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고독과 우울만 잔뜩 서술해 놓은 11분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책 곳곳에 담겨 있는 주옥같은 삶의 비의들을 발견하고 싶다면, 결말의 생뚱맞음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파올로의 팬이라면 이 책도 충분히 재밌게 읽으실 것 같다!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그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삶은 우리에게 수 없이 많은 배움의 기회를 베푼다. 모든 남자, 모든 여자가 날마다 사랑에 자신을 내맡길 좋은 기회를 만난다. 인생은 긴 휴가가 아니라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방법이다. -p. 358

마른 땅? 어떤 관계도 그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죽이는 것이 바로 모험의 부족, 그 무엇도 이젠 새롭지 않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계속 예상 밖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배우자가 예전에 결혼식 제단에서 만나 반지를 교환했던 그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시간을 멈출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시간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지혜와 경험이 아니다. 시간도 아니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다. 하늘을 날고 있을 때 나는 삶에 대한, 우주에 대한 내 사랑이 그 무엇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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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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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만나 결혼을 합니다. 이들은 자유 분방함, 무절제함이 팽배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답지 않게 전통적인 의미의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자 합니다. 정원이 있는 큰 저택에서 여덟에서 열명 남짓의 아이들을 낳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을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죠. 런던 근교의 한적한 지역에 빅토리아풍 대저택을 마련하고 임신과 출산을 반복합니다. 사실상 그들이 집값을 지불하려면 둘 다 직장을 다녀야 했지만 그들에게는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던거죠. 이 때부터 그들의 불행은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경제적 부양 능력, 부모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부모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그들은 자신들이 꿈꿔오던 이상적 형태의 가정을 꾸리는 일에만 급급했던 겁니다. 결국 그들은 데이비드의 아버지로부터 집값과 생활비를 조달받고, 해리엇의 어머니로부터 가사와 양육의 원조를 받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해리엇은 또 한 번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짧은 시간 간격으로 아이들을 낳았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지쳐 있었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죠. 심지어 이 아이는 너무나 크고 힘이 세서 그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임신 기간 동안 진통제를 투약해 가며, 끊임없이 태아를 저주하지요. 산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 되었기 때문일까요? 아이는 도깨비같은 형상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하고 태어납니다. 여느 태아들보다 힘이 세고, 울지도 않습니다. 엄마나 가족들에게 친근감을 전혀 느끼지 못 하고 성격 또한 포악합니다. 이 아이가 바로 불쌍한 벤입니다. 벤의 등장으로 이 단란한 가정에는 어둠과 공포가 짙게 깔리기 시작합니다. 벤은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그의 폭력성때문에 가족들은 위협을 느낍니다.

우리가 복권 추첨에서 무엇이 나올지 선택할 수 없듯이 아기를 갖는 일도 마찬가지랍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간에 우리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 p. 139

이 때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다른 네 아이들과의 행복한 가정을 되찾기 위해 벤을 보호소로 보낼 것인가, 아니면 벤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데이비드는 다수의 행복이라는 대의를 택하고, 벤을 보호소로 보냅니다. 반면 해리엇은 보호소에서 죽어가는 벤을 본 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를 집으로 다시 데려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그녀 자신을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고립되게 만듭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 하고 벤만 챙기기 때문이죠. 벤을 무서워하던 네 아이들 중 셋은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집으로 뿔뿔히 흩어지게 되고,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막내인 폴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던 해리엇이 가족들을 와해시킨 장본인이 된 셈이죠.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으로부터 그 애를 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의 가족을 파괴했다. 그녀 자신의 인생에 해를 끼쳤다. 데이비드의 인생, 루크와 헬렌과 제인, 그리고 폴의 인생에도. - p. 158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은 그녀가 정말 모성에 이끌려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이 맞느냐는 점입니다. 막상 죄책감에, 엄마라는 이유로 벤을 집에 데려온 뒤에 보여주는 그녀의 행보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어머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벤을 위한 특수 교육을 시키거나 보통 사람들과 충분한 교감을 할 수 있도록 인내심있게 사랑으로 대하지도 않습니다. 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는 벤을 동네 건달들에게 맡깁니다. 하루 종일 벤이 그들을 따라 다닐 수 있도록 돈을 주면서 말이죠. 벤이 위협적이거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경우에는 보호소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리며 협박(?)도 합니디.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사육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주고,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전부인 생활이었응니까요. 결국 벤이 청소년이 되고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그 순간에도 그저 방관하는 입장을 취합니다. 벤이 떠나면 집을 팔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그녀의 모습에서 비정함 마저 느껴집니다. 정말 벤을 자식으로서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이상적으로 그려왔던 어머니라는 역할 모델을 충실히 수행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모양처라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위해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이죠. 벤에게 어떠한 기대도 없었을 뿐더러, 그로 인해 가정을 떠나야 했던 아이들이나 남편에 대한 죄책감이나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거든요.

우리는 벌 받는거야. 잘난 척 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 - p. 159

거기서 군중으로부터 약간 떨어져서 그 도깨비 같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군중 속에서 자기와 같은 종족에 속하는 또다른 얼굴을 찾고 있는 벤의 모습을 볼 것이다. - p. 179

여러모로 고민할 거리를 잔뜩 던져주는 악몽같은 이야기입니다. 해리엇의 일그러진 모성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과연 나라면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거든요. 우리가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당연하게 기대하는 모습들 역시 문명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고정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가져보게 되고요. 소시오패스로 보여지는 아이, 모성이 느껴지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떠올리게 됩니다. 원치않는 아이를 가진 엄마의 고통과 부정만큼 아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내거든요. 해리엇과 벤의 모습과 흡사하죠. 사실 이 영화의 케빈과 비교하면 벤은 위험한 살인귀같은 존재가 아닌 그저 공감 능력과 지적 능력이 부족한 아이인 것 같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일부 폭력적인 장면들이 묘사되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익히고 그들의 감정과 반응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일반인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거든요.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규정하는 범주 내에 들지 못 하는 것뿐, 그를 악하고 위협적인 괴물로 정의 내릴만한 충분한 근거는 없어 보입니다.그러한 면에서 벤은 해리엇이 말하는 원시성을 간직한 존재이자 반문명적인 존재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이동진님의 말처럼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일 수도 있겠고요. 실제로 후속작으로 출간된 '세상 속의 벤'에서 집을 떠난 벤이 그의 힘과 모자란 지능때문에 어떻게 인간들에게 착취를 당하는지 보여준다고 하니, 그는 단지 집단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된 존재였나 봅니다.

다섯째 아이. 짧지만 반드시 고민해봐야할 근원적인 문제들로 가득한 복잡한 책입니다. 후속작도 읽어봐야 겠어요. 더 생각할 문제들이 늘어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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