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칙칙하고 음산하게 느껴지는 책 표지만큼이나 첫 페이지를 넘기는 그 순간부터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사람이 쉽게 닿을 수 없는 곳, 빽빽하게 나무로 들어찬 음습한 숲 한 가운데에 자리한 유리의 집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보통 숲 한가운데에 사방이 큰 통유리로 만들어진 집이 있다면 아주 자연친화적이고 깨끗한 느낌일 것이다. 두터운 창을 꼭꼭 닫은 채 갑갑하게 서 있는 도시의 집들에서 벗어나 탁 트인 시원함과 자연에 한 발 더 다가선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유리의 집은 되려 공포감을 조성한다. 빽빽한 나무들 뒤에서 숨을 죽인 채 유리의 집 안을 들여다 보는 어떤 낯선 침입자의 모습을 쉬이 상상하게 만든다. 햇볕조차 잘 들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음산한 숲 속에 완전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느낌의 집 속에 있다보면 자연스레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책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 그대로 환한 조명으로 빛나는 유리의 집 안은 연극 무대이고 그 무대를 둘러싼 어두운 숲은 몹시나 무서운 관객들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주인공 노라가 이 유리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비로소 광기로 얼룩진 섬뜩한 연극은 시작된다.

이 책은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스릴러이다. 10년 전 노라와 제임스, 그리고 클레어 사이에는 어떠한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이 싱글 파티의 목적은 무엇인지, 각자가 비밀을 간직한 듯 미묘하게 신경을 거슬리는 사람들 사이의 긴장과 불안은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편안한 사람들과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싱글파티가 아니라 마치 무언가를 청산하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밝혀내고자 모인 사람들 같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아주 작은 트러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평범하지 않은 성격을 가진 요상한 사람들과 긴장감 속에 지내는 노라를 보면 이 유리의 집은 몹시나 폐쇄적이고 되려 창살없는 투명한 감옥같이 느껴진다. 마지막 노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진실의 조각들을 맞추어가는 과정과 진짜 범인을 폭로하는 반전도 재미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심리전과 얼음장을 걷는듯 아슬아슬하고 서늘한 관계를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다. 나의 경우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싱글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이면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찾아내는 것, 특히 여자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심리 변화와 잊혀진 과거를 밝혀내는 일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자들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원망의 대상을 향해 날이 바짝 선 칼을 숨겨둔 채 결코 직접 찌르는 법이 없다. 대신에 더욱 은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괴롭힐 방법을 찾아낸다. 전혀 상관없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이용하고 조종함으로써 원망의 대상을 곤란하고 괴롭게 만든는 것, 그것이 여자들의 공격법이자 복수이다.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간 누군가- 특히 남성들- 는 노라와 제임스, 클레어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살인 사건을 일으킬만한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고 또 소름끼쳐할 것이다.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괴로워할 일이며, 모든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 사람의 면상을 후려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 주변에 꼭 한 명 이상씩은 그런 괘씸하고 미친 여자가 존재하기에, 여자들은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를 괴롭게 햇던, 혹은 내가 몹시나 싫어했던 그.여.자.가 이 책 속에서 버젓이 살아 움직이고 있기에 결말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결코 책장을 덮을 수 없다. 정말 '여자들의, 여자들을 위한, 여자들에 의한 스릴러'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소설이다. 그리고 리즈 위더스푼의 손에서 어떤 영화로 재탄생될지 몹시 기대되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탐정이 된 스기무라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했기에 출간과 동시에 주저없이 바로 구매했다. 인터넷 구매였기에 책의 실물은 나중에서야 볼 수 있었는데 그간의 미미여사 작품과 달리 지나치게 얇은 두께에 적잖이 놀랐다. 전작인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이 워낙 두꺼웠던데다가 분량이 늘어나는 만큼 책값이 비싸져서 독자에게 미안하다는 미미여사의 인터뷰가 꽤나 인상적이었기에 더욱 의아했다. 책을 펼치기도 전부터 150 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에 만원이나 하는 것이 불만스럽게 느껴졌다. 이럴바엔 더 두껍고, 하드커버가 아닌 만 팔천원짜리 책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솔로몬의 위증에서 검사 역할을 맡았던 후지노 변호사와 스기무라 탐정의 만남은 굉장히 흥미롭지만 서너 개의 단편집을 묶어서 출간하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미미여사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 중 하나가 바로 그녀의 길고 긴 서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디테일한 그녀의 설명을 지루하게 느끼는 독자들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짧은 분량으로 이루어진만큼 지루함없이 빠르게 전개 된다. 살인 사건은 아니지만 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선생님 사이의 진실 게임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과연 거짓말을 하는 쪽은 누구인지, 이런 진실 게임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미미여사의 작품은 '이름없는 독' 을 떠올리게 된다. 지배적이고 피해의식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한 사람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고통받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무기력하게 만든다. 자유의지를 가지지 못 한 채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못하는 좀비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특히나 어린 학생들에게 강압적이고 성적우선주의에 빠진 선생님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하고 심각한 문제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미처 발견되지 못한 다양한 재능과 가능성들을 제한시킬 뿐만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평생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살아가게 만든다. 결국 자신이 가진 능력은 제대로 꽃피워 보지도 못 한채 피해의식과 자격지심만을 가지고 형편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단지 인생의 참된 스승을 만나지 못 했다는 이유로 그 학생들이 평생 감당해야할 몫은 상상 이상으로 잔혹하다. 성적에 따라 한 줄로 줄을 세우는 문화가 뿌리 싶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 나라의 경우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성 교육 따위는 기대도 할 수 없을 뿐더러 결과와 계층화에만 집착하는 불량품들을 찍어내는 공장으로 전락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좀 더 바람직한 교육 정책들과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진 교육자들이 많아지기를 기도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죄의 메아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전작보다 나은 차기작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큰 기대감때문에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샤를로테 링크의 경우 전작 '폭스밸리' 보다 이번에 출간된 '죄의 메아리'가 스토리 구성이나 반전까지 훨씬 더 매끄럽고 흥미롭게 쓰여진 것 같다. 물론 전작도 전개가 흥미진진하고 관련없어 보이는 여러 사건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깊이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결말 부분이 약간 석연치 않게 느껴졌었다. 너무 열심히 달려왔는데 결승점에서 약간 맥이 빠지는 느낌?! 그래서 이번 작품은 출간된지 꽤 지나고 나서야 별 기대 없이 집어들게 되었는데 상상 이상의 재미가 있었다!!


분명 범죄, 스릴러라는 요소를 메인 테마로 하는 추리 소설이지만 그것보다는 버지니아라는 한 여성의 삶과 그녀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나 감정적인 교류가 더 중점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 인물들의 성격이나 삶을 마주하는 태도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매우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치명적이고 매력적인 남자, 성실하고 지적인 남자, 심약한 멘탈을 가진 남자,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한 뻔뻔한 남자 등등 버지니아의 삶 속에 들어왔다가 떠나갔던 남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독자들로 하여금 한 번 이상은 만났을 법한 지나간 사랑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실존 인물같은 캐릭터들! 미칠듯 불타오르던 사랑, 어쩔 수 없었던 이별,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선택한 결혼, 외도 등등 한 여자의 인생, 그 중에서도 사랑 이야기를 심도있게 그려 흡사 연애 소설에 여아 유괴 사건이라는 주제가 얹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죄의 메아리' 는 남성 독자들보다는 여성 독자들을 더 사로잡을 수 밖에 없겠다. 밝히고 싶지 않은 한 여성의 어두운 과거, 그리고 매력적인 버지니아 주변의 수많은 유혹들과 남자들. 어쩌면 여자이기에 그토록 오랜 시간 숨기고 싶었던 과거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세상은 보수적이고 여성에게만 선사시대의 유물처럼 터무니없는 잣대들을 강요하는 곳이 많으니까. 어떠한 진실, 특히나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본질을 마주하는 일. 그것은 두렵지만 회피해선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꼬이고 꼬여 엉뚱한 일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자신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정말 예상치 못 했던 범인의 정체가 놀라운 반전임과 동시에 버지니아와 프레데릭의 미래를 마냥 해피엔딩으로 끝내지 않은 결말이 훌륭하다. 앞으로 버지니아와 프레데릭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될지 상상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 한국 사회는 잘못 되었다. 80년대나 지금이나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여전히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돈, 학벌, 외모 등으로 계급과 가치가 정해진다. 어쩌면 그 때가 좀 더 신분 상승의 기회가 더 많았던 건지도 모른다. 이제는 언감생심 공부 잘 한다고 해서 신분이 상승하는 시기도 지났다. 재력 빵빵한 집안에서 태어난 애들이 좋은 대학이나 외국 유학도 가고, 사회의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잡게 된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이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쩌다 가뭄에 콩나듯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분명 이전 세대만큼 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현 세대는 더욱 단단해지고 투명해진 유리 피라미드 속에서 불가능한 신분상승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현 세대는 이런 계급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한국인의 삶이 답답하고 끔찍해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 계나의 말처럼 본인 계급에 맞는 사람과 결혼해서, 남들처럼 뻔한 삶을 살다가 종국에는 폐지나 줍는 초라한 죽음을 맞이할까봐 두려워진다. 그래서 꽤 빈번하게 한국에서는 빛나는 미래도 없고 행복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이 책을 주저없이 집어 들었다. 책을 읽고 나면 사이다를 마신 듯 속이 좀 뻥 뚫리지 않을까, 통쾌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오늘 소중한 오후 시간에 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덮어버리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주인공 계나의 시니컬한 독백들에 격한 공감을 보내며 읽어내려 갔지만 끝으로 갈수록 어쩐지 그녀의 말들이 비겁하게 들리며 씁쓸해졌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났다는 그녀의 말은 진심일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행복할 수 없지만, 호주에서는 행복해질거라는 그녀의 근거없는 믿음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마치 행복과 꿈을 찾아서, 오로지 그녀의 능력 자체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신세계를 찾아 떠난 것처럼 당당하게 이야기했지만. 우습게도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따위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한 한국에서의 일상에서 벗어나 이국적인 환경에서 자극적인 변화를 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결말을 읽고 나면 이러나 저러나 그녀가 원하던 행복 지수가 높은 삶이란 것은 자아 실현 같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상태를 의미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힘든 호주 생활을 통해 알아낸 것이라고는 본인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하다는 사실 하나다. 쉽게 말하자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노동 대비 여유롭고 유복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한국에 사나, 호주에 사나 대개의 사람들이 누리길 원하는 삶의 모습이다. 그녀가 내심 비웃던 친구나 동생들이 바라는 삶과 도무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고, 안정적인 일을 하면 좋겠고, 돈 잘버는 남편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더 솔직한 것 같다. 그냥 호주 시민권을 따기 위해 회계 공부를 시작했고, 뭔가 대단한 것을 할 것처럼 굴더니만 종국에는 안정적이고 수익이 보장되는 회계사가 되지 않았나. 날라리 같고 무식하다고 은근 깔보던 재인이 요리에 재능을 보이고, 고급 레스토랑에 셰프로 자리잡을 것 같고... 뭐 이래저래 장래성도 보이고 그녀한테 충실하니까 만난 것 같다. (내가 계나를 너무 삐딱하게 보게 된건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녀가 친구들과의 다른 점을 꼽으라면 시어머니나 화사 욕만 늘어놓는 행위를 뛰어 넘어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곳을 향해 과감하게 떠났고, 결국 성취해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다. 그녀도 내심 속으로 비웃던 친구들이나 동생처럼 뻔하디 뻔한 속물이라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 했지만. 계나가 속물이 아니었다면 자유로운 프리라이터 같은 삶을 지향한다거나 본인이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길을 찾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적절한 임대업으로 짭짤한 이득을 취하거고, 관심도 흥미도 없던 회계사가 되진 않았을 것 같다. 막말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살아도 한국 스타벅스에서 알바나 하는 것보다는 괜찮다고 했으면서, 본인은 왜 그 자유롭고 수입 좋은 웨이트리스 때려치우고 회계사가 되었는지 묻고 싶다. 9시 출근 4시 퇴근에 사무직이고, 안정적이고, 이직 쉽고, 돈 잘 벌어서 그런거 아닌가. 사실 호주에서 영주권 따려고 그렇게 영어 공부하고, 얼렁뚱땅 회계사 석사 학위 받았으면 한국에서도 똑같이 공부해서 회계사가 됐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나고 괘씸하게 느껴진다. 그저 잘 먹고 잘 살고 싶었던 속물적인 그녀의 마음을 '한국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어서' 라며 뭔가 꿈을 꾸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괴로워 하는 젊은이들의 절박한 마음처럼 곱게(?) 포장한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 '이게 현실적인 결말이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국을 떠나 낯선 타향 땅에서 피워보지 못한 꿈과 열정, 그리고 신념 같은 것을 추구하거나 가식적이고 더러운 한국적인(?) 굴레들을 벗어 던지며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이야기를 기대했나 보다. 역시 나는 체제에 순응하기 힘든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가. 이 책을 다 읽고 본 다큐 3일에 나온 서울예전 학생들이 떠오른다. 돌고 돌아서 결국 제자리라고, 다른 곳에 있어보니 더욱 예술을 하고 싶다는 걸 깨알았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이 학생들의 촉촉한 눈망울들을 보며 탁해질대로 탁해진, 어쩌면 탐욕스러워졌을지도 모를 계나의 눈빛을 상상했다. 계나야, 한국에서 못 살겠어서,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국에서는 도무지 행복해질 수 없었다는 너의 비겁한 말은 듣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는 더 가진 것이 없고, 더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 했고, 더 좋은 외모를 가지지 못 했어도 여전히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있고, 그들이야말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란다. 아마도 계나 넌,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 미안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주저하지 않고 집었던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제 사라마구였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 카인의 삶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이자 현세에 존재하는 무수한 카인과 아벨의 뢀모델이다. 그래서 그가 왜 동생을 죽여야 했으며, 삶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여호와로부터 이마에 죄인의 표식을 받았고, 한 곳에 정착하지 못 하고 떠돌아다니는 벌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카인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죽었을까,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성경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제 사라마구는 구약성서를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발칙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카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특히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그것이 여호와의 힘이나 의지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카인은 시간 여행을 다닌다. 이삭과 아브라함을 만나기도 하고 무너진 바벨탑에 가보기도 한다.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 현장도 목격했으며, 사탄으로부터 믿음을 지켜낸 욥을 만났고, 노아와 함께 대방주를 만들기도 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주요한 사건의 목격자이자 중요한 타이밍에 사건에 개입하여 변화를 만들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 선한 인물이다. 동생을 죽인 살인자임에도 아이러니하게 그는 보편적인 도덕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고, 본디 악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그려진다. 또한 가장 인간적이기에 여호와에 대한 신뢰와 신앙을 품을 수 없는 사람이자 유일하게 여호화에게 신학적,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그의 뜻에 반하는 사람이다.
 
그는 여호와의 의지와 행동에 강한 의문과 불만을 품는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임에도 그들의 믿음을시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호와를 믿음에도 가난하고 고통받고 아픈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탄으로 하여금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족 간의 전쟁을 방관하거나 혹은 선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돔과 고모라에서 태어난 죄없는 아이들의 죽음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 한 죄없는 인간들의 죽음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혹자는 이러한 질문으로 가득한 이 책 자체가 신성모독이이며 불경한 책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아우를 죽이고 죄를 지은 카인이라는 한 인간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모자라 여호와의 불합리함, 부조리함, 불완전함에 대해 꼬집고 있다. 카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호와는 절대적인 선이 아니거니와 자신의 피조물 또한 온전히 품지 못 하는, 어쩌면 양면적인 모습을 지닌 인간과 지나치게 닮은 전지전능한 존재인 것이다.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 성경책을 읽으며 나도 한 번 이상은 품었던 질문들인지라, 나는 카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간의 관점, 특히 논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구약성서 속에 비쳐지는 여호와의 행동에는 결함이 있다. 결국 구약성서를 만들고, 종교를 체계화시킨 자들이 저지른 비약이자 오류인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믿음없는 자, 그리고 사탄의 놀음에 놀아나는 자들의 허황된 질문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저러한 질문에 대해 누군가 한 번쯤은 설명해주었으면 싶다.  

실제로 이 책은 주제 사라마구의 마지막 저서이다. 죽기 1년여 전에 쓰여진 책이다 보니 종교와 인간과 신, 삶과 죽음, 죄와 벌...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더 깊이 사유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결과는 몹시 염세적이고, 비관적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가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는지 작가의 말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짧지만 강렬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어쩐지 신을 지나치게 완전무결한 절대적인 선의 형상으로 만드려고 한 인간들이 잘못한게 아닐까, 인간이 신의 뜻과 의지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삼 종교와 인간에 대해 깊은 의구심이 자라난다. 과연 나는 답을 구할 수 있을까.    






그들이 그렇게 올라가는 동안, 여호와가 신뢰할 존재가 아니라는 추가의 증거로,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p. 94




아브라함은 여호와만큼이나 대단한 개자식일뿐 아니라 갈라진 혀로 누구라도 속일 준비가 되어 있는 유능한 거짓말쟁이였는데, 이 경우 이것른 이 이야기의 서술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사전에 따르면 불충하다, 불성실하가, 거짓되다, 의리 없다 등등과 기타 비슷하게 훌륭하기 짝이 없는 자질을 의미한다. -p. 95







여호와의 큰 결함은 질투예요, 자기 자식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질투에 굴복하죠, 누가 행복해지는 걸 못보는 게 분명해요. -p. 140







이것은 바벨의 탑이었으며, 여호와가 자존심때문에 완성을 허락하지 않은 탑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우리와 히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이니,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 106



전쟁은 정말이지 아주 훌륭한 사업인 게 분명하구나. 어쩌면 가장 좋은 사업인지도 모른다. (...) 이 여호와은 언젠가는 전쟁의 신으로 알려지겠구나, 사실 나는 여호와의 다른 용도를 모르겠다, 카인은 그렇게 생각했고,그의 생각은 옳았다. -p. 129

꼭 사탄이 여호와의 또 다른 도구에 불과한 것처럼 보여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어 하지 않은 더러운 일을 하는 도구 말이예요. -p. 169

카인은 아우를 죽인 자, 카인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목격하려고 태어난 자, 카인은 하나님을 증오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p. 1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