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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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한국 사회는 잘못 되었다. 80년대나 지금이나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여전히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돈, 학벌, 외모 등으로 계급과 가치가 정해진다. 어쩌면 그 때가 좀 더 신분 상승의 기회가 더 많았던 건지도 모른다. 이제는 언감생심 공부 잘 한다고 해서 신분이 상승하는 시기도 지났다. 재력 빵빵한 집안에서 태어난 애들이 좋은 대학이나 외국 유학도 가고, 사회의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잡게 된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이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쩌다 가뭄에 콩나듯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분명 이전 세대만큼 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현 세대는 더욱 단단해지고 투명해진 유리 피라미드 속에서 불가능한 신분상승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현 세대는 이런 계급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한국인의 삶이 답답하고 끔찍해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 계나의 말처럼 본인 계급에 맞는 사람과 결혼해서, 남들처럼 뻔한 삶을 살다가 종국에는 폐지나 줍는 초라한 죽음을 맞이할까봐 두려워진다. 그래서 꽤 빈번하게 한국에서는 빛나는 미래도 없고 행복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이 책을 주저없이 집어 들었다. 책을 읽고 나면 사이다를 마신 듯 속이 좀 뻥 뚫리지 않을까, 통쾌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오늘 소중한 오후 시간에 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덮어버리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주인공 계나의 시니컬한 독백들에 격한 공감을 보내며 읽어내려 갔지만 끝으로 갈수록 어쩐지 그녀의 말들이 비겁하게 들리며 씁쓸해졌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났다는 그녀의 말은 진심일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행복할 수 없지만, 호주에서는 행복해질거라는 그녀의 근거없는 믿음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마치 행복과 꿈을 찾아서, 오로지 그녀의 능력 자체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신세계를 찾아 떠난 것처럼 당당하게 이야기했지만. 우습게도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따위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한 한국에서의 일상에서 벗어나 이국적인 환경에서 자극적인 변화를 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결말을 읽고 나면 이러나 저러나 그녀가 원하던 행복 지수가 높은 삶이란 것은 자아 실현 같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상태를 의미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힘든 호주 생활을 통해 알아낸 것이라고는 본인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하다는 사실 하나다. 쉽게 말하자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노동 대비 여유롭고 유복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한국에 사나, 호주에 사나 대개의 사람들이 누리길 원하는 삶의 모습이다. 그녀가 내심 비웃던 친구나 동생들이 바라는 삶과 도무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고, 안정적인 일을 하면 좋겠고, 돈 잘버는 남편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더 솔직한 것 같다. 그냥 호주 시민권을 따기 위해 회계 공부를 시작했고, 뭔가 대단한 것을 할 것처럼 굴더니만 종국에는 안정적이고 수익이 보장되는 회계사가 되지 않았나. 날라리 같고 무식하다고 은근 깔보던 재인이 요리에 재능을 보이고, 고급 레스토랑에 셰프로 자리잡을 것 같고... 뭐 이래저래 장래성도 보이고 그녀한테 충실하니까 만난 것 같다. (내가 계나를 너무 삐딱하게 보게 된건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녀가 친구들과의 다른 점을 꼽으라면 시어머니나 화사 욕만 늘어놓는 행위를 뛰어 넘어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곳을 향해 과감하게 떠났고, 결국 성취해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다. 그녀도 내심 속으로 비웃던 친구들이나 동생처럼 뻔하디 뻔한 속물이라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 했지만. 계나가 속물이 아니었다면 자유로운 프리라이터 같은 삶을 지향한다거나 본인이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길을 찾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적절한 임대업으로 짭짤한 이득을 취하거고, 관심도 흥미도 없던 회계사가 되진 않았을 것 같다. 막말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살아도 한국 스타벅스에서 알바나 하는 것보다는 괜찮다고 했으면서, 본인은 왜 그 자유롭고 수입 좋은 웨이트리스 때려치우고 회계사가 되었는지 묻고 싶다. 9시 출근 4시 퇴근에 사무직이고, 안정적이고, 이직 쉽고, 돈 잘 벌어서 그런거 아닌가. 사실 호주에서 영주권 따려고 그렇게 영어 공부하고, 얼렁뚱땅 회계사 석사 학위 받았으면 한국에서도 똑같이 공부해서 회계사가 됐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나고 괘씸하게 느껴진다. 그저 잘 먹고 잘 살고 싶었던 속물적인 그녀의 마음을 '한국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어서' 라며 뭔가 꿈을 꾸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괴로워 하는 젊은이들의 절박한 마음처럼 곱게(?) 포장한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 '이게 현실적인 결말이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국을 떠나 낯선 타향 땅에서 피워보지 못한 꿈과 열정, 그리고 신념 같은 것을 추구하거나 가식적이고 더러운 한국적인(?) 굴레들을 벗어 던지며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이야기를 기대했나 보다. 역시 나는 체제에 순응하기 힘든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가. 이 책을 다 읽고 본 다큐 3일에 나온 서울예전 학생들이 떠오른다. 돌고 돌아서 결국 제자리라고, 다른 곳에 있어보니 더욱 예술을 하고 싶다는 걸 깨알았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이 학생들의 촉촉한 눈망울들을 보며 탁해질대로 탁해진, 어쩌면 탐욕스러워졌을지도 모를 계나의 눈빛을 상상했다. 계나야, 한국에서 못 살겠어서,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국에서는 도무지 행복해질 수 없었다는 너의 비겁한 말은 듣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는 더 가진 것이 없고, 더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 했고, 더 좋은 외모를 가지지 못 했어도 여전히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있고, 그들이야말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란다. 아마도 계나 넌,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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