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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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주인공들, 자칭 라플라스의 악마와 마녀인 겐토와 마토카의 눈에는 단순히 물리 현상뿐만 아니라 인류는 어디로 나아갈지, 이 사회는 어떻게 될지 희미하게나마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측만 할뿐 무엇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 역시 마도카처럼 수술에 자진할 것 같다. 치기어린 과학도의 욕심이겠지만 그들의 눈에는 세계가 어떻게 보일지 몹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실 화학자에게도 물리화학이란 영역이 있지만 그 어떤 화학 과목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가장 심플한 가정을 하고 기초적인 방정식을 풀어도 그 과정에 꽤나 길고 복잡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난해한 계산을 하며 끙끙 앓지 않더라도 세상의 물리 법칙이 자연스레 읽힌다는 것, 그것은 분명 많은 과학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p. 497


그럼에도 책이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겐토와 마도카가 불쌍하단 생각이 자꾸만 든다. 여전히 그 능력이 탐이 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걸 알게 되고 일반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리고 가능성 많은 아이들에게 빼앗아간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법칙들을 슈퍼 컴퓨터보다 빠른 속도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지만, 되려 그러한 능력 때문에 그들은 꿈을 잃고 세상에 대한 기대없이 살아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마냥 축복이라고 부를 수만은 없다. 말그대로 라플라스의 악마, 혹은 마녀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을테다.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삶이라는 것, 그것은 분명 과학이 부른 참사다. 과학이 가진 어마무시한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과학에게 인문학적인 소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사실 이런 수학이나 물리 천재가 무시무시한 계산 능력을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소재들은 만화책에서도 한 두 번쯤은 다뤘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 뇌과학과 풀리지 않는 미지의 방정식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문 지식이 뒷받침되니 소재의 퀄리티가 다르게 느껴진다. 막연한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거 진짜 실현 가능성이 충분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우리가 미쳐 알고 있지 못 했던 영역들일뿐,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연구기 진행되어 왔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오싹함.  이것이 30년 필력의 히가시노의 내공이 아닐런지. 

 

인간의 양육 행동, 남성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부성 행동이라는 것을 봐도 결국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것이예요.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편의상, 사랑 혹은 애정이라고 부르는 것뿐입니다. -p. 452

개개인은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인간 사회라는 집합체로서 바라볼 경우에는 그 행동을 물리 법칙에 적용해 예측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p. 456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p.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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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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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동영 작가님의 대표작은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와 '나만 위로할 것' 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책들을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시도- 단순히 친구와 이름이 똑같다는 친근한 이유로- 해 보았지만 도무지 나에겐 와닿지가 않았다. 뭐랄까, 매 문장들이 지나치게 탐미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담백하고 건조한 문체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좀 더 솔직해지자면 허세 가득한 글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 땐 포기했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다시 집어들게 만든건 "누구나 살고 싶어서 아프다" 라는 띠지의 문구때문이었다. 아파서 살기 싫단 말은 들어봤어도 살고 싶어서 아프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31세에 불안장애와 우울증 판정을 받은 뒤 36세에 이르러 공황장애, 양극성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은 김동영 작가. 그는 아산병원에 있는 정신과 의사 김병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지난 7년간 진료실에서 꾸준히 만나왔다. 어쩌면 누구보다 더 김동영 작가에 대해 속속들히 알고 있을 것 같은 김병수님의 처방은 어떠했을까? 사실 누군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지가 되기 마련인데, 나에게 약을 처방해주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존재가 나의 병을 치료해줄 수 있다면, 아주 큰 힘이 되어준 존재였을 것이다. 되려 가족, 연인, 절친한 친구보다 더 많이 주고받았을 내밀한 이야기가 엿보고 싶어졌다. 과연... 늘 불안하고 고독하며 긴장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도 그는 안정제가 되어줄 수 있을까.

 

책은 김동영 작가님이 자신의 삶과 병에 대해 느끼는 고통이나 감정들에 대해 적어내려간 글과 그에 대한 김병수님의 답변이나 이야기를 교차식으로 보여준다. 환자와 의사간의 대화보다는 방황하고 아픈 동생과 좀 더 성숙하고 듬직한 형의 대화같이 느껴져 편안하게 읽힌다. 여전히 김동영 작가님의 글은 나에게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아무래도 본인이 겪고 있는 병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이전보다는 담담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심각한 병이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고독과 불안, 긴장과 공포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김병수님은 이러한 감정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모든 것이 유별나거나 혹은 병적인 감정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다만 저마다 다른 이유나 증상들로 나타나기에 그것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의사인 자신의 몫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와 동시에 김동영 작가님의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인지를 조언해 준다.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쓰디쓴 직언을 하기도 하며, 당신을 이해 못 하겠다고 솔직하게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 솔직함이 환자와 의사의 만남을 7년이나 길게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진단이 내려지면 약을 처방해주기 위한 만남일 뿐, 그 10분 동안 누구나 할 수있는 뻔한 말만 늘어놓는 의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와 반대로 끊임없이 이해하려고 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그의 자세가 자못 감동적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김동영 작가님을 응원하게 된다. 올 가을, 혹은 어느 겨울쯤엔 약의 도움 없이도 온전히 평안한 상태를 누릴 수 있게 되길 기도하게 된다. 신경정신과적 질병 뿐만 아니라 그는 너무 빈번히 아픔과 싸워왔기에 이제는 건강한 몸에 깃든 그 상쾌함을 좀 느껴봤으면 싶다. 그럼 자칫 허세로 느껴질 수 있는 우울한 그의 글들도 좀 더 덤덤하게, 혹은 병을 이겨낸 사람 특유의 희망적인 에너지가 담기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불안으로부터 기인하는 감성들이 사라지고 나면 그 사람 특유의 그 허무하고 섬세한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을까 의문이기도 하다. 김병수님의 이 한 마디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신이 깨어 있을수록 긴장의 칼은 날카로워질테고요. 불안이 커지면 감정의 깊이도 커질테니, 불안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할 겁니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는 불행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불안의 축복으로 감성의 깊이를 얻었으니까요. -p. 279

 

불안의 축복으로 얻은 감성의 깊이로 그는 남과 다른 책들을 써냈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물론 김동영 작가님의 약은 좀 줄어들고 건강해지길 바란다 여전히!!) 지금 나에게 주어진 불행과 불안과 긴장과 고독과 분노가 어떤 감정의 깊이를 갖게할런지. 부디 그러한 감정의 깊이로 더 많은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길,그리고 음울할지라도 나만의 감성으로 이어지길 욕심 내본다.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삶에 유의미한 것이며 불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겠다. 내가 느기는 부정적인 감정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나의 한 부분을 이룬다. 무엇이든 배척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그 또한 지나간 자리에 경험과 성숙이라는 흔적을 남기므로.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신이 깨어 있을수록 긴장의 칼은 날카로워질테고요. 불안이 커지면 감정의 깊이도 커질테니, 불안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할 겁니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는 불행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불안의 축복으로 감성의 깊이를 얻었으니까요. -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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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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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7519자, 193매, 96페이지 

가장 짧고 가장 섬뜩하고 가장 강렬하다.

이 책의 뒷면에 쓰여져 있는 문구이다. 보통 띠지나 책 뒷면을 차지하고 있는 문장들은 강렬하고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짧은 시간 내에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 그 책을 구매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말일수록 그 말에 이끌려 고른 책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실망스러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 책은 가장 짧으면서 가장 섬뜩하고 강렬하다는 이 문장의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남는다! 


96페이지의 단편 소설 속에 여러 번의 반전과 섬세한 심리 묘사, 뚜렷한 캐릭터들의 입체적 특성과 인물 간의 갈등 관계가 모두 녹아있다. 사실 전혀 길지 않은 분량이기에 지루하게 느껴질 양이 아니지만 상상 이상의 흡입력과 가독성을 자랑한다.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결정적인 반전 앞에서 맥이 탁 풀리고 만다. 허무함때문이 아니라 작가와 극 속의 인물들- 수전과 마일즈- 에게 놀아났다는 아찔함때문이다. 결말은 있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거짓같은 진실, 진실같은 거짓이 혼재된 상황에서 과연 책 속의 '나'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어떤 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책을 읽는데 소요된 시간은 짧지만 사건의 진실과 책 속의 인물들 자체에 대해 고심해보는데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오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결국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보다는 수전, 마일즈, 그리고 나의 자기중심적인 면모와 악한 본성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나' 에게 복수를 하려던 것이든, 혹은 이용하려고 한 것이든 수전과 마일즈 모두 옳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다. 결국 수전이든 마일즈든 100%의 진실도, 거짓도 말하지 않았다. '나' 를 속이기 위해서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짜 거짓말쟁이들의 비법이니까. 그렇다고 '나' 가 절대적인 희생양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녀가 자신의- 짧은 순간 내에 어떤 사람의 살아온 배경이나 성격, 고민 등을 판단하는- 능력을 과신했기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해 어떠한 의구심도 품지 않았가 때문이다. 그저 자신이 보고 들은대로 판단했을 뿐이다. 여기에 엉뚱한 인터넷 기사 덕분에 수전이나 마일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심리적르로 이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그녀 역시 수전으로부터 한 몫을 단단히 챙기려 했었다. 두 사람에게 약점으로 잡힐만한 사기 행각(?) 을 벌인 것은 그녀 자신이다.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세 사람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했고, 끝까지 자기 합리화를 통해 불온한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던 것뿐이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끝끝내 자기중심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성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인간의 탐욕, 질투, 복수와 같은 악한 면과 '나는 불행하니까 이렇게 해도 되.' 라는 더러운 자기 위로와 남을 향한 공격성. 인간 존재에 대한 씁쓸함과 혐오감, 그리고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렇게 자기 중심적일수 밖에 없기에 영원히 고독한 우울증을 달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숙명에 연민이 자라난다. 짧은 작품 속에 이 많은 요소들을 잘 버무려 놓은 '길리언 플린' 의 능력에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그녀의 놀라운 능력은 언제까지,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장편소설로 얼른 찾아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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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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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을께 애써 억눌러 오던 7년간의 설움과 핍박이 최고조에 달하고 결국 터지고 말았다. 인분교수 못지 않은, 지도 교수님과 선배들의 폭언과 부조리함, 그리고 이어지는 따돌림은 사람을 수동적이고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그들이 주는 갖은 수치심과 모멸감 속에서도 언젠가는 이 또한 다 지나갈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부여잡고 버텨왔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어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도리어 심해지기만 했다. 심각한 것은 그러한 폭력 앞에 나 역시 굴복하고 어느새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없지만 깊은 우울감과 조절할 수 없는 분노로 인하여 내 발로 학교 상담 센터를 찾아 갔었다. 그 때, 가장 바라는 일이 무엇이냐고 상담 선생님이 물으셨을 때 나는 대답했다.
 
"지구 종말이요. 인간은 존재 자체가 악입니다."

인간의 선한 본성의 이면에는 굉장히 악하고 폭력적이고 잔인한 악, 그 자체가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성선설은 인간의 이상이자 자기 만족일 뿐 성악설이 더 적확한 시선인 것 같다. 그것은 오랜 인간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증명되어 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폭력과 억압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하고자 해도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 악랄하고 파괴적이며 교활한 것이 인간이다. 가장 탐욕스럽고 이성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앞세워 자신들의 추악한 본성을 그럴싸하게 가리운 채 가식적으로 살아가는, 가장 혐오스러운 동물. 어쩌면 이 동물이라는 말조차도 아까운 것이 인간인지도 모른다. 

이 책 속의 하쓰미는 인간의 이러한 측면에 집중한다.  아주 병적으로 집착해서 그녀의 서가는 그러한 책들로 빼곡하다. 그것을 낭독하며 남자친구인 도쿠야마와 잠자리를 가질 정도로 변태적인 여자다. 인간의 삶 자체를 혐오하며 언젠가는 죽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찰나의 순간과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제대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어서 주변 사람들을 장악하고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 나가는데 능숙하다. 실제로 책을 읽는 동안 하쓰미의 말에 공감하고 그녀에게 깊이 사로잡히는 느낌을 여러 차례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성격의 도쿠야마는 그녀에게 완전히 사로잡힌다. 말 그대로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택한다. 수더분한 청년이었던 그는 완전히 돌변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비수같은 말들을 쏟아내 상처주고 마구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 단호하게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해 나간다. 이 세상에 자신의 편은 오직 하쓰미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작은 맨션 안으로 그의 세계를 좁혀간다. 나름 목표가 있는 삼수생이었던 도쿠야마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도 그 기쁨을 뒤로한 채 삶을 놓아버린다. 그저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에 대해 비관하고,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비웃는다. 하루 종일 하쓰미와 침대에 누워 잠들고 잠시 일어나는 한심한 생활을 반복하면서.

더욱 우스운 것은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삶을 상대의 선택에 맡겼다는 점이다. 그렇게 자살을 옹호하면서도 혼자 죽지 못했던 하쓰미는 동반자살을 원했고 마지막까지 '당신 탓이야.'라고 도쿠야마에게 말했다. 도쿠야마 역시 모든 것을 하쓰미의 뜻대로 하고자 했다.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살고자 하는 의지를 상대에게서 찾고자 했던게 아닌가 싶다. 정말로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가 절망이라는 파도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꼭 붙잡아주는 닻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어처구니 없는 동반자살 앞에서 어쩐지 숙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했을 내일이라는 시간이 이들에게는 왜 그리 무가치 했던 것인지 안쓰럽고 화가 난다. 이들이 보여주는 절망과 파멸의 끝자락에서 되려 나는 삶에의 애착과 의지와 희망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세상과 인간을 부정하며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어린 날의 미숙한 나를 반성하면서.

아무리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해도 삶은 냉혹하고, 인간은 여전히 악행을 저지른다. 선을 행하려는 사람들은 너무나 적고 그들의 힘은 미약하다. 마냥 인과응보나 권선징악 같은 것을 믿고 살기에 세상살이가 절대 녹록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착취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일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 같은 이상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어두운 측면보다 따스한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그런 시선과 생각들이 모여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갈 힘을 비축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고 또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을 위해 투쟁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뜻대로 아주 조금씩 변화해 왔다. 그러한 변화들이 켜켜히 쌓여 지금의 민주주의와 복지 국가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몇 백년 전만해도 평등, 자유와 같은 가치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우리의 세계는 고쳐나가야할 부분들이 산재해 있지만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살이가 고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치여 상처받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깊은 회의감을 갖게 된 분들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하쓰미의 시원시원한 냉소와 비판에 대한 격한 공감의 끝에는 아주 자그마한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기묘한 안도감과 함께 아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죽읍시다. 동반자살, 그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 방법이예요. 유일한 방법, 제대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의지와 목적과 결과가 일치하고 게다가 성공의 순간이 그대로 영원히 되는 유일한 아이디어. 동반자살하자고요. 응? 응? -p. 164

본심 따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일이 펼쳐지건 흑에 흑을 덧칠할 뿐이다. -p. 226



하쓰미는 원래부터 예의 바른 여자가 아니다. 악의가 철철 넘치는, 벌을 주고 싶어서 배겨낼 도리가 없는 나쁜 여자다. -p. 244






마음이 정해지지 않는 것을, 정해버렸다. 믿음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배신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때문이라능 것을 말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해 버려서, 온갖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p.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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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감 Paper
강원상 지음 / 지식공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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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상 작가님을 처음 만난 것은 인스타그램이었어요. 용기있는 선팔이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프로필 멘트가 마음을 끌었고요, 처음엔 재미있는 사람인가보다 해서 팔로우를 눌러봤어요. 신기하게도 꾸준하게 저와 소통해 주셨어요. 그리고나서 케빈님의 피드를 주의 깊게 살펴보니 전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더군요. 오히려 세상과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품고 깊이 사색하는 분이었어요.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는 말을 지킬 줄 아는 그의 강직함만큼 글들도 진솔하고 담백했어요. 애써 꾸미려하지 않은 문장들이 좋았고, 다치고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의 감성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사랑과 이별만이 아니라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한, 우리의 일상과 삶 전반에 대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주어서 더욱 공감할 수 있었어요.


사실 저는 무작정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문장들은 좋아하지 않아요. 내 삶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끼는게 유난떠는 것처럼 느껴지고, 괜스레 칙칙하고 어렵게 사는 것 같은 자책이 들기 때문이예요. 그런 면에서 이 책 속의 문장들은 고마워요. 섣부르고 어설픈 긍정의 말들을 무작정 위로라는 포장으로 내밀지 않거든요. '그런 날이 있지, 괜찮아.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라고 조심스럽게 건내는 그의 위로가 참 사려깊게 느껴집니다. 저는 머리맡에 두고 매일 밤 잠자기 전 한 편씩 읽고 자요. 하루의 마무리가 편안해지고, 또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강원상 작가님의 감성적인 글들을 오랫동안 만나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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