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김동영 작가님의 대표작은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와 '나만 위로할 것' 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책들을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시도- 단순히 친구와 이름이 똑같다는 친근한 이유로- 해 보았지만 도무지 나에겐 와닿지가 않았다. 뭐랄까, 매 문장들이 지나치게 탐미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담백하고 건조한 문체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좀 더 솔직해지자면 허세 가득한 글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 땐 포기했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다시 집어들게 만든건 "누구나 살고 싶어서 아프다" 라는 띠지의 문구때문이었다. 아파서 살기 싫단 말은 들어봤어도 살고 싶어서 아프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31세에 불안장애와 우울증 판정을 받은 뒤 36세에 이르러 공황장애, 양극성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은 김동영 작가. 그는 아산병원에 있는 정신과 의사 김병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지난 7년간 진료실에서 꾸준히 만나왔다. 어쩌면 누구보다 더 김동영 작가에 대해 속속들히 알고 있을 것 같은 김병수님의 처방은 어떠했을까? 사실 누군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지가 되기 마련인데, 나에게 약을 처방해주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존재가 나의 병을 치료해줄 수 있다면, 아주 큰 힘이 되어준 존재였을 것이다. 되려 가족, 연인, 절친한 친구보다 더 많이 주고받았을 내밀한 이야기가 엿보고 싶어졌다. 과연... 늘 불안하고 고독하며 긴장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도 그는 안정제가 되어줄 수 있을까.

 

책은 김동영 작가님이 자신의 삶과 병에 대해 느끼는 고통이나 감정들에 대해 적어내려간 글과 그에 대한 김병수님의 답변이나 이야기를 교차식으로 보여준다. 환자와 의사간의 대화보다는 방황하고 아픈 동생과 좀 더 성숙하고 듬직한 형의 대화같이 느껴져 편안하게 읽힌다. 여전히 김동영 작가님의 글은 나에게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아무래도 본인이 겪고 있는 병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이전보다는 담담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심각한 병이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고독과 불안, 긴장과 공포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김병수님은 이러한 감정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모든 것이 유별나거나 혹은 병적인 감정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다만 저마다 다른 이유나 증상들로 나타나기에 그것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의사인 자신의 몫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와 동시에 김동영 작가님의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인지를 조언해 준다.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쓰디쓴 직언을 하기도 하며, 당신을 이해 못 하겠다고 솔직하게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 솔직함이 환자와 의사의 만남을 7년이나 길게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진단이 내려지면 약을 처방해주기 위한 만남일 뿐, 그 10분 동안 누구나 할 수있는 뻔한 말만 늘어놓는 의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와 반대로 끊임없이 이해하려고 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그의 자세가 자못 감동적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김동영 작가님을 응원하게 된다. 올 가을, 혹은 어느 겨울쯤엔 약의 도움 없이도 온전히 평안한 상태를 누릴 수 있게 되길 기도하게 된다. 신경정신과적 질병 뿐만 아니라 그는 너무 빈번히 아픔과 싸워왔기에 이제는 건강한 몸에 깃든 그 상쾌함을 좀 느껴봤으면 싶다. 그럼 자칫 허세로 느껴질 수 있는 우울한 그의 글들도 좀 더 덤덤하게, 혹은 병을 이겨낸 사람 특유의 희망적인 에너지가 담기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불안으로부터 기인하는 감성들이 사라지고 나면 그 사람 특유의 그 허무하고 섬세한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을까 의문이기도 하다. 김병수님의 이 한 마디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신이 깨어 있을수록 긴장의 칼은 날카로워질테고요. 불안이 커지면 감정의 깊이도 커질테니, 불안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할 겁니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는 불행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불안의 축복으로 감성의 깊이를 얻었으니까요. -p. 279

 

불안의 축복으로 얻은 감성의 깊이로 그는 남과 다른 책들을 써냈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물론 김동영 작가님의 약은 좀 줄어들고 건강해지길 바란다 여전히!!) 지금 나에게 주어진 불행과 불안과 긴장과 고독과 분노가 어떤 감정의 깊이를 갖게할런지. 부디 그러한 감정의 깊이로 더 많은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길,그리고 음울할지라도 나만의 감성으로 이어지길 욕심 내본다.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삶에 유의미한 것이며 불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겠다. 내가 느기는 부정적인 감정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나의 한 부분을 이룬다. 무엇이든 배척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그 또한 지나간 자리에 경험과 성숙이라는 흔적을 남기므로.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신이 깨어 있을수록 긴장의 칼은 날카로워질테고요. 불안이 커지면 감정의 깊이도 커질테니, 불안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할 겁니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는 불행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불안의 축복으로 감성의 깊이를 얻었으니까요. -p. 2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