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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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7519자, 193매, 96페이지 

가장 짧고 가장 섬뜩하고 가장 강렬하다.

이 책의 뒷면에 쓰여져 있는 문구이다. 보통 띠지나 책 뒷면을 차지하고 있는 문장들은 강렬하고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짧은 시간 내에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 그 책을 구매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말일수록 그 말에 이끌려 고른 책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실망스러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 책은 가장 짧으면서 가장 섬뜩하고 강렬하다는 이 문장의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남는다! 


96페이지의 단편 소설 속에 여러 번의 반전과 섬세한 심리 묘사, 뚜렷한 캐릭터들의 입체적 특성과 인물 간의 갈등 관계가 모두 녹아있다. 사실 전혀 길지 않은 분량이기에 지루하게 느껴질 양이 아니지만 상상 이상의 흡입력과 가독성을 자랑한다.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결정적인 반전 앞에서 맥이 탁 풀리고 만다. 허무함때문이 아니라 작가와 극 속의 인물들- 수전과 마일즈- 에게 놀아났다는 아찔함때문이다. 결말은 있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거짓같은 진실, 진실같은 거짓이 혼재된 상황에서 과연 책 속의 '나'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어떤 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책을 읽는데 소요된 시간은 짧지만 사건의 진실과 책 속의 인물들 자체에 대해 고심해보는데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오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결국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보다는 수전, 마일즈, 그리고 나의 자기중심적인 면모와 악한 본성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나' 에게 복수를 하려던 것이든, 혹은 이용하려고 한 것이든 수전과 마일즈 모두 옳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다. 결국 수전이든 마일즈든 100%의 진실도, 거짓도 말하지 않았다. '나' 를 속이기 위해서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짜 거짓말쟁이들의 비법이니까. 그렇다고 '나' 가 절대적인 희생양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녀가 자신의- 짧은 순간 내에 어떤 사람의 살아온 배경이나 성격, 고민 등을 판단하는- 능력을 과신했기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해 어떠한 의구심도 품지 않았가 때문이다. 그저 자신이 보고 들은대로 판단했을 뿐이다. 여기에 엉뚱한 인터넷 기사 덕분에 수전이나 마일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심리적르로 이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그녀 역시 수전으로부터 한 몫을 단단히 챙기려 했었다. 두 사람에게 약점으로 잡힐만한 사기 행각(?) 을 벌인 것은 그녀 자신이다.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세 사람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했고, 끝까지 자기 합리화를 통해 불온한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던 것뿐이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끝끝내 자기중심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성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인간의 탐욕, 질투, 복수와 같은 악한 면과 '나는 불행하니까 이렇게 해도 되.' 라는 더러운 자기 위로와 남을 향한 공격성. 인간 존재에 대한 씁쓸함과 혐오감, 그리고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렇게 자기 중심적일수 밖에 없기에 영원히 고독한 우울증을 달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숙명에 연민이 자라난다. 짧은 작품 속에 이 많은 요소들을 잘 버무려 놓은 '길리언 플린' 의 능력에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그녀의 놀라운 능력은 언제까지,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장편소설로 얼른 찾아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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